인구 급감 '소멸위기 0순위' 전락
"물 같이 쓰는데 희생은 왜 우리만"
모든 주민 단체 동참 생존권 투쟁
"다른 댐 지역 수준 규제 완화해야"
불합리한 수계기금 운용 개선 요구
청주시 문의면과 현도면 주민들이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기후에너지환경부 앞에서 대청댐 상수원 규제 완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문의면주민자치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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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댐 지어 고향 뺏더니 규제로 숨통 조이고… 이대로는 더 이상 못 살아요”
칼 바람이 몰아친 지난 26일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식당가에서 만난 김재년(59)씨는 대청댐을 바라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문의 토박이인 그는 “정부만 믿고 살아 온 45년 세월이 한스럽다”며 “내 고장을 지키고 잃어버린 권리를 찾기 위해 이제 거리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대청호를 끼고 사는 문의면 주민들이 댐 건설 이후 과도한 규제로 생존권을 위협받고 지역소멸 위기에 처했다며 총궐기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주민들에 따르면 1980년 대청댐이 건설되면서 문의면은 전체 면적의 21%가 물에 잠기고, 주민 57%가 삶의 터전을 잃었다. 남겨진 이들의 삶은 더 가혹했다. 문의면 전역이 상수원보호구역, 특별대책지역 등 중첩 규제에 묶이면서 지역 경제는 사실상 마비된 지 오래다. 제조업은 물론 농산물가공, 민박, 음식업 등 기본적인 경제 활동과 건축 행위가 엄격히 제한되면서 일자리와 정주 여건이 악화한 결과다.
수십 년간 이어진 규제의 결과는 참담하다. 2003년 5,800명에 달하던 인구는 매년 평균 100명씩 줄어 현재 3,500명 선으로 급감했다. 한 때 ‘호반 관광지’를 꿈꾸던 고장은 빈집만 남은 유령마을이 늘어나며 ‘지역소멸 0순위’로 전락했다.
"물은 같이 쓰는데, 희생은 왜 우리만"
아이러니한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대청호를 상수원으로 쓰는 하류지역 450만 명의 식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규제를 만들었지만, 정작 문의면 내 상당수 마을에는 아직 상수도가 보급되지 않는다. 게다가 일부 마을에선 환경기초시설 미비로 생활 오폐수가 대청호로 그대로 유입되는 등 상수원 보호라는 취지조차 무색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분개한 문의면 주민들은 지난 22일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금강유역환경청을 잇따라 방문해 규제 완화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에는 문의면이장단협의회, 주민자치협의회, 노인회, 상가번영회, 부녀회, 자율방범대 등 지역 내 모든 자생 단체가 참여해 총궐기 대회로 치러졌다. 같은 규제 피해를 입고 있는 인근 현도면 주민 단체도 시위에 가세했다. 거대한 규제 틀에 갇혀 숨죽여 지내던 주민들이 생존권을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청주시 문의면 주민들이 지난 22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대청댐 상수원 규제 완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면내 주민 자생 단체가 모두 출동해 총궐기 대회로 치러졌다. 문의면과 같은 처지에 있는 현도면 주민들도 가세했다. 문의면주민자치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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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기금, 피해 주민 지원은 생색내기"
주민들은 특히 금강수계관리기금의 불합리한 운영과 집행 구조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수계관리기금은 하류 지역의 물이용부담금으로 조성해 상수원 수질 개선과 관리지역 주민 지원에 쓰여야 한다. 하지만 기금 집행이 토지 매수나 환경시설 설치에 편중돼 있고, 규제 피해를 보는 상류지역 주민 지원에는 인색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2020년 기준 1,300억원이 넘는 금강수계관리기금 중 주민지원 사업비는 208억원(16%)에 불과하다. 문의면 지원금을 보면 2021년 27억 8,000만원, 2022년 26억 2,000만원, 2023년 26억 1,000만원 등 매년 감소하고 있다. 그나마 충북도에서는 규제 지역 농민들에게 지원하던 사업비를 지난해 전액 삭감하기도 했다.
백승호 문의면 이장단협의회장은 “수계관리기금은 하류 주민이 부담한 물값이자 상류 주민이 감내한 규제와 희생에 대한 최소한의 상호부조”라며 “물이용부담금을 피해 주민의 생계 회복과 자립을 위해 우선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생만 강요하는 낡은 규제 철폐해야"
주민들은 금강수계관리기금의 집행 구조를 전면 재편해 주민지원사업 비중을 확대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또한 기금을 관장하는 수계관리위원회에 지역 주민 대표를 법정위원으로 참여시켜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주민들은 대청댐 상수원보호구역 규제를 다른 댐 지역 수준으로 완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대청댐 상류지역 상수도 공급, 환경정화시설 설치, 문의면 취수탑 이전도 함께 요구하고 있다.
박종안 문의면 주민자치위원장은 “국가와 지자체는 규제만 했을 뿐 상류 주민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제도 개선이나 지원에는 무관심했다”며 “당국이 주민들의 호소를 계속 외면한다면, ‘고요한 희생’을 끝내고 분연히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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