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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고기 맛은 굽기 전 결정된다…완벽한 스테이크 위한 설계도 [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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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크는 이제 특별한 날의 음식이 아닌, 집에서 직접 구워 즐기는 일상 속 메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한 한 점을 만들기 위해선 고기 선택부터 두께, 조리법까지 고려할 것이 많죠. 20년 경력의 스테이크 전문가 김광중 셰프가〈스테이크 가이드〉를 통해 제대로 굽고 즐기는 법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고기 맛을 좌우하는 숙성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스테이크 가이드] 숙성

    중앙일보

    숙성은 조리 전에 스테이크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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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집 고기 숙성 며칠이나 해?”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맛있는 고깃집을 추천받았을 때 한 번쯤 건네는 질문 아닐까요. 사실 제가 남들보다 고기를 좀 안다고 잘난 척할 때 자주 사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저뿐만은 아니겠죠. 요즘처럼 소비자들이 반(半) 전문가가 되어버린 고기 시장에서, 숙성 기간과 방법은 판매자에게는 특별한 기술로, 소비자에게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늘 먹던 스테이크가 어떤 날은 칼이 들어가는 순간부터 부드럽게 느껴지지만, 어떤 날은 씹는 것 외에는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 갓 도축한 고기는 생각보다 질기고 풍미도 부족합니다. 특히 날고기로 먹는 메뉴가 아닌, 두툼한 두께의 스테이크로 즐긴다면 숙성이 필요하죠. 숙성을 통해 고기의 조직이 분해되면 부드럽고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고기 자체에 존재하는 효소입니다. 이 효소가 단백질과 지방을 서서히 분해하면서 감칠맛과 육즙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다면 숙성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숙성은 고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변화들을 ‘먹기 좋은 방향’으로 정렬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이 고기의 ‘즉각적인 변화’를 만든다면, 숙성은 ‘누적된 변화’를 만듭니다. 불은 표면을 바꾸고 향을 만들지만, 숙성은 고기 안쪽의 식감과 향, 감칠맛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죠. 그래서 숙성을 제대로 이해하면, 맛있는 스테이크를 더 단순하게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1. 숙성은 ‘부드러움’을 만드는 게 아니라 ‘결을 푸는’ 일

    중앙일보

    도축 직후에는 고기가 단단해 먹기 어렵지만, 숙성 과정에서 결이 서서히 풀린다. 사진 김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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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축 직후의 고기는 생각보다 단단합니다. 근육은 원래 ‘움직이기 위해’ 존재하던 조직인데, 이 조직이 생체에서 분리되는 순간 긴장과 경직이 발생합니다. 이 상태의 고기는 아무리 좋은 마블링을 가졌더라도 씹을 때 ‘버티는 느낌’이 남게 되죠. 많은 사람이 숙성이 덜 된 스테이크를 먹기 어렵게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본적인 맛보다 씹는 데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숙성이 진행되면 고기 안의 자연 효소가 천천히 작동합니다. 이 효소는 근육 단백질의 구조를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결을 따라 이어져 있던 ‘단단함의 연결’을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그래서 숙성이 잘 된 고기는 단순히 부드럽다고 표현하기보다 ‘결이 풀린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한 번에 무너지는 부드러움이 아니라, 씹을수록 매끈하게 풀리는 질감. 이 질감이 스테이크를 고급스럽게 느끼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연화’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숙성은 고기를 무르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 아닙니다. 스테이크는 씹는 즐거움이 사라지면 그 가치도 줄어들기 때문이죠. 좋은 숙성은 탄력을 유지한 채 씹는 피로감만 줄여줍니다. 그래서 스테이크하우스들이 숙성을 이야기할 때 ‘부드럽다’기보다 ‘식감이 좋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2. 숙성은 ‘감칠맛의 설계도’를 바꾼다

    중앙일보

    뉴욕의 드라이 에이징 전문점 숙성실에서 에이징 중인 숏로인(티본). 일정한 온도와 습도, 공기 순환 속에서 수분이 서서히 빠지며 풍미가 농축된다. 사진 김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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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성의 진짜 흥미로운 지점은 풍미에 있습니다. 드라이 에이징을 떠올리면 흔히 ‘치즈향, 견과향, 버터향’을 말하지만, 그 본질은 조금 다릅니다. 숙성은 고기 맛의 중심을 ‘단순한 육향’에서 ‘감칠맛과 고소함의 층’으로 옮겨 놓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단백질은 숙성 과정에서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이때 감칠맛의 기반이 되는 성분들이 늘어납니다. 지방 역시 향미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숙성이 잘 된 고기는 굽기 전부터 냄새가 다릅니다. 또 하나의 핵심은 ‘농축’입니다. 특히 드라이 에이징은 수분이 줄어드는 만큼 맛의 밀도가 높아집니다. 이 농축은 단순히 짠맛이나 진함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입의 설득력’을 키웁니다. 씹는 순간 맛이 흩어지지 않고 중심을 갖게 되는 것이죠. 스테이크에서 중요한 것은 육즙의 양이 아니라, 한 입의 맛이 끝까지 유지되느냐입니다. 숙성은 바로 이 지속력을 만들어 줍니다.


    3. 웻 에이징 vs 드라이 에이징, 뭐가 더 나을까?

    숙성에 대한 질문은 결국 방식의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정답은 없지만, 각각의 특징과 장단점은 분명합니다. 웻 에이징이 비교적 깨끗하고 단순한 방식으로 육즙을 보존하며 고기 본연의 맛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면, 드라이 에이징은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풍미가 강해지고, 고소함과 발효된 듯한 복합적인 향이 더해지죠. 흔히 드라이 에이징을 두고 “맛의 기억을 만든다”고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웻 에이징과 드라이 에이징의 차이점

    ▶드라이 에이징 : 시간과 공기로 만드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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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스테이크하우스의 숙성고에 보관된 드라이 에이징 소고기. 공기와 시간 속에서 수분이 빠지며 맛이 농축된다. 사진 김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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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 에이징은 고기를 공기가 잘 통하는 환경에 걸어두거나 선반에 올려놓고, 일정한 온도와 습도, 바람을 유지하며 숙성하는 방식입니다. 이 과정에서 고기의 수분이 서서히 날아가고, 효소 작용으로 근섬유가 부드러워지며 풍미가 농축됩니다. 수분 손실과 함께 먹을 수 없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웻 에이징에 비해 손실이 크다는 점이 단점입니다.

    드라이 에이징은 단순히 오래 둔다고 완성되는 숙성이 아닙니다. 온도는 보통 0~4℃, 습도는 약 80~85%로 유지해야 하고, 공기 순환도 꾸준히 이뤄져야 합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약 28~60일 사이에 숙성이 아니라 부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 가정에서 시도하기는 어렵고, 숙성 전용 냉장고나 전문 시설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기 표면은 딱딱한 껍질처럼 굳고, 안쪽은 버터처럼 부드러워지며 고소한 너티 향이 배어듭니다. 스테이크 마니아들이 드라이 에이징을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없고, 장비와 관리에 비용과 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정통 스테이크하우스들이 이를 브랜드의 특화 기술로 내세우는 것이기도 합니다.

    드라이 에이징이 특히 잘 어울리는 부위는 마블링과 지방이 어느 정도 있는 꽃등심, 채끝, 갈비, 토마호크 등입니다.

    ▶웻 에이징 : 진공 속에서 깊어지는 부드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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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기를 차단한 진공 포장 상태에서 숙성되는 웻 에이징 소고기. 수분 손실을 줄이며 부드러운 식감과 선명한 육향을 만든다. 사진 김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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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웻 에이징은 훨씬 간편하고 대중적인 방식입니다. 고기를 진공 포장해 냉장 보관하면서 숙성시키는 방법으로, 공기를 차단한 상태에서 고기 자체의 수분과 효소 작용으로 숙성이 진행됩니다. 외부 환경에 덜 민감하고 유통과 저장이 용이한 것이 장점입니다. 보통 7~21일 정도 숙성하며, 고기는 자연스럽게 부드러워지고 잡내도 줄어듭니다. 다만 드라이 에이징처럼 농축된 풍미보다는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특징입니다. 육즙과 연한 식감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잘 맞는 방식이죠.

    생산 비용도 상대적으로 낮아 일반 정육점이나 마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트에서 구매하는 냉장 소고기의 대부분은 웻 에이징을 거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냉장 온도만 잘 유지된다면, 진공 포장된 고기를 냉장고에 두는 것만으로도 숙성은 자연스럽게 진행됩니다.웻 에이징은 마블링이 비교적 적은 부위에 특히 잘 어울립니다.


    4. 숙성은 굽는 과정과 결과물도 바꾼다

    숙성은 냉장고 안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그 고기가 그릴 위에 올라가는 순간에도 숙성의 영향은 이어집니다. 숙성된 고기는 표면 반응이 더 또렷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 크러스트가 얇고 균일하게 형성되고, 속의 익힘도 안정적으로 잡힙니다. 흔히 말하는 ‘겉바속촉’ 역시 단순히 화력의 문제가 아니라, 숙성 방식이 함께 작용한 결과입니다.

    셰프들이 숙성을 통해 얻는 가장 큰 이점은 ‘단순화’입니다. 고기 자체가 이미 맛의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과한 소스나 향신료로 덮을 필요가 줄어듭니다. 소금을 치는 타이밍, 레스팅 시간, 사용하는 불의 종류 역시 숙성 상태에 맞춰 조정됩니다. 숙성은 고기 본연의 맛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숙성의 타임라인

    특히 드라이 에이징 소고기는 숙성 시간에 따라 뚜렷한 변화를 겪습니다.



    ▶1~14일: 서서히 연해진다

    이 시기는 고기의 연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구간으로, 약 14일이 지나면 고기의 80% 정도가 연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5~28일: 맛이 진해지기 시작한다

    효소가 본격적으로 조직을 분해하며 단맛과 고소한 맛이 나타납니다. 이 시기에는 온도와 습도 관리가 특히 중요해, 고기가 과도하게 건조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29~42일: 부드러움과 풍미가 최고조에 이른다

    숙성 시간이 길어질수록 효소가 작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고기의 풍미도 더욱 복합적으로 깊어집니다. 지방이 분해되며 치즈를 연상시키는 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조리 전에는 곰팡이가 핀 부분과 석탄 색에 가까운 겉면을 제거하면, 안쪽의 진홍색 고기가 드러납니다.

    맛있는 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기의 숙성은 단순히 오래 두는 일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완성되는 풍미의 예술입니다. 드라이 에이징이든 웻 에이징이든, 각각의 방식에는 시간과 정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한 점의 스테이크를 맛보며 “정말 맛있다”고 느끼는 순간 뒤에는, 이 숙성이라는 시간이 존재합니다. 다음에 고깃집을 찾게 된다면 그 집의 숙성 방식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세요. 같은 한 점의 고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김광중 셰프 cook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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