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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새해인데 폐업 박스만 쌓여···"당장 어디로 갈지도 막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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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 폐업' 홈플러스 일산·가양점 가보니

    입점 소상공인들 철거 준비 한창

    다이소 등 소수업체만 자리 지켜

    홈플러스 직원도 '전환배치' 불안

    주민들 "주변 마트 사라져 불편"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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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일 경기 고양시 홈플러스 일산점은 평상시라면 영업시간이 한창인데도 음악은 끊겨 있었다. 날카로운 박스 테이프 소리만 적막을 뚫고 울려 퍼졌다. 3일 전 폐점한 이 점포에서 자영업자들은 가게를 철수하기 위해 이삿짐을 꾸리고 있었다. 계산대 근처에 자리 잡은 안경점 사장 A 씨는 진열대를 옮기기 위해 전문 운송 업체와 통화하며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홈플러스 폐점 소식이 들리자마자 이미 정리를 시작했다”면서 “일산 내 다른 곳으로 가게를 옮기려고 장소를 찾는 중이나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10년 간 화장품점을 운영한 B 씨는 “얼굴 익힌 손님과 동료 점주들이 많아 서운하다”면서 “다른 자리를 찾기보다 이번에 아예 가게를 접으려 한다”고 전했다. 약국 앞에도 재고품 상자를 실은 카트가 여러 대 서 있었다. 약사 정 모 씨는 “상호를 그대로 해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됐지만 그래도 5년간 정들었던 곳이라 아쉬움이 많다”고 했다.

    폐점한 홈플러스 점포들에 자리 잡았던 소상공인들은 1년의 마지막 날에도 연말 분위기는커녕 당장 철수 비용 부담부터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같은 날 서울 가양점 1층을 가득 채웠던 입점 업체들 앞에도 대부분 영업 중단을 의미하는 하얀 천이 드리워져 출입이 불가능했다. 재고 정리를 맡은 홈플러스 직원들과 철거 공사를 벌이는 인부들만 말없이 건물 내부를 오갔다. 가벽 너머에서는 식용유나 라면·과자류 박스의 철수 작업이 한창이었다. 손님이 끊긴 건물은 냉기와 음산한 분위기만 가득했다. 현장에서 재고품을 정리하던 한 직원은 “우리도 모두 힘든 상황”이라고 말을 아꼈다.

    다이소를 비롯해 내년 1월까지 영업을 이어가는 소수 업체 직원들도 진땀을 흘렸다. 텅 빈 홈플러스 건물을 찾은 주민들이 “채소는 안 파느냐” “어디가 열려 있느냐”며 당혹스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당 다이소 매장들 역시 폐점이 임박하기는 마찬가지다. 주방용품을 비롯한 매대 일부는 이미 바닥을 드러낸 상태다. 한 다이소 매장 직원은 “재고만 판매하고 있어 필수품은 거의 남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점포 영업이 최종 종료되면 직원들 역시 거주지 등을 고려해 전환 배치를 받게 된다.

    홈플러스 일산점과 가양점은 한국에 ‘대형마트 붐’이 일던 시기에 개장했다. 앞서 프랑스 ‘까르푸’의 매장으로 1996년과 2000년 각각 개장한 뒤 이랜드 계열 ‘홈에버’ 시기를 거쳐 홈플러스가 승계했다. 병원과 약국·식당가 등이 자리 잡으면서 각자 30년 가까이 주민들의 일상을 함께했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상징성이 특히 큰 1세대 점포들로도 꼽혀왔다. 일산점은 폐점 전까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홈플러스 지점으로 남아 있었다. 가양점의 경우에도 전국 매출 상위권을 기록했던 알짜 점포로 평가받았다.

    이 때문에 주민들도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가양점을 찾은 60대 주민 김 모 씨는 “한 달 전 물었을 때만 해도 어찌될지 모른다던 직원의 말이 무색하게 이미 매장이 다 닫혀 있어 깜짝 놀랐다”며 “이 주변은 특수학교가 있어 장애인 가족이 많이 사는데 마트가 사라지면 이분들이 멀리까지 이동해야 해 불편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근처로 가게를 옮긴다는 분들도 있지만 이번에 아예 관두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며 “이 근처에 사는 주민들은 홈플러스가 없어지면 저 멀리 마곡이나 강서까지 가야 해서 아무래도 불편해한다”고 씁쓸해했다.

    홈플러스 입점 소상공인과 직원들은 2026년에도 불안한 한 해를 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경영난이 이어지면서 매장을 계속 폐점하고 있어서다. 12월 폐점한 가양·일산점 등 5곳 외에도 △계산 △시흥 △안산고잔 △천안신방 △동촌점의 영업 중단이 추가로 예정됐다. 이를 포함해 향후 6년간 최대 41개의 부실 매장이 정리 수순을 밟는다. 회사 측이 “인위적인 정리해고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직원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고조되는 분위기다. 최철한 민주노총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은 “인력을 인위적으로 배치하다 보니 그만두는 직원들도 많다”면서 “일례로 주변에 점포가 없는 강릉점을 폐점하게 되면 멀리 삼척이나 춘천·원주를 근무지로 택할 수는 없기에 결국 퇴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했다.

    고양=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박민주 기자 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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