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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2026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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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당선자 사강은

    한국일보

    삽화=박종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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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경찰이 내 집에 들이닥쳤다

    문을 두드리거나 초인종을 누르지도 않고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내가 할 말을 경찰이 했다 이러시면 어떡해요 분명 내가 해야 할 말 같은데 나를 연행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수갑을 채우고 서로 데려갔다 원래 이런 식으로 이뤄집니다 생각해 보니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랬던 것 같기도 그것들은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니까 이런 식이 맞는 것 같기도 죄는 나의 것이고 벌은 경찰의 것이라 했다 역할은 바뀔 수 없어서 그 사실 역시 바뀌지 않을 거라 했다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해 놓고 나 먼저 말해 보라 했다 아무것도 알려 준 적 없으면서 대답하라 했다 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라 했다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 말해 주지도 않고 알리바이를 성립시키라 했다 나는 드릴 말씀이 없었다 취조는 인정할 때까지 계속됐지만 알지 못하는 일을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불쌍하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자 유리창 건너편에 있던 다른 경찰이 들어오더니 증거가 없어서 풀어 드린다고 원래 법이 그렇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이것도 어딘가 많이 본 장면 같아서 감사합니다 대신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소리가 나왔고 경찰서는 문 닫을 시간이 됐다 조사실 밖 마지막 계단까지 내려가 바닥에 도착하자 더 이상 경찰서가 아니었다 그때 평생 지었던 죄가 모조리 기억났다 손목에는 수갑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내일 자수할 예정이다

    사강은(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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