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줄기세포 해외 원정 안 가도록
빗장 일부 풀되 너무 느슨해지진 않게"
'안전성 검증 우선' 원칙 고수 개선안
업계 일각선 여전한 규제 장벽 불만도
편집자주
우주,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등 첨단 기술이 정치와 외교를 움직이고 평범한 일상을 바꿔 놓는다. 기술이 패권이 되고 상식이 되는 시대다. 한국일보는 최신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의 숨은 의미를 찾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하는 '테크 인사이트(Tech Insight)'를 격주 금요일 연재한다.이재명 대통령이 10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2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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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5조 원.' 매년 3만 명 이상의 국내 환자가 줄기세포 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을 비롯한 해외로 떠나면서 발생하는 경제 손실 추정액(정형민 건국대 의대 교수 겸 미래셀바이오 대표)이다. 국내에서 불법이거나 승인이 까다로운 줄기세포 치료가 일본에서는 가능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원정 의료'의 결과다.
환자들이 국경을 넘고 국부가 유출되자 정부가 나섰다. 첨단재생바이오법(첨생법)을 개정해 지난해 2월부터 중대·희소·난치질환에 줄기세포 치료의 길을 터줬고,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해 10월 "안전이 확인된 것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막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추가 규제 완화를 주문했다. 하지만 무작정 빗장을 풀기엔 부담이 적지 않다. 생물학적 위험성과 생명윤리 논란이 얽힌 줄기세포 특성, '황우석 사태'가 촉발한 트라우마를 무시할 수 없어서다.
안전성 확인된 줄기세포 치료 국내에서
'산업 육성론'과 '신중론'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해온 정부가 이 대통령 주문 2개월 만인 지난달 28일 첨단재생의료 규제 개선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난치질환 기준 구체화'다. 난치질환에는 이미 줄기세포 치료가 도입됐지만, 정의가 모호해 현장 혼란이 컸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에서 '보존적 치료에도 통증 등의 골관절염 임상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 등을 난치질환자의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했다. '이 정도는 줄기세포 연구·치료 대상이 될 수 있으니 적극 나서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아울러 △중·저위험 임상연구엔 비임상시험 자료 제출 부담 완화 △해외 임상시험·연구 결과 기반 치료계획 심의 확대도 약속했다. 퇴행성 관절염, 만성 통증 등 일본 원정 수요가 많은 질환은 정부 주도로 임상연구를 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임상연구와 치료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직접 지원해 국내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행 원정치료 수요를 모두 국내로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같은 골관절염 환자라도 치료 순응도나 중증도에 따라 '난치질환' 판정을 받지 못하면 국내에선 여전히 치료 기회가 없다. 반면 일본은 정식 의약품으로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제라도 정부가 인정하는 민간위원회 심사만 통과하면 시술이 가능할 만큼 규제가 느슨하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2019년 일본을 향해 "입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환자에게 판매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정부는 산업 육성은 하되, '안전성 검증 우선' 원칙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무조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되면 국내에서 치료받게 하고, 그렇지 않다면 국민께 알리겠다"고 말했다.
"육성 신호 긍정적" "그래도 갈 길 멀다"
업계는 일단 정부가 줄기세포를 '관리 대상'이 아닌 '육성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걸 반기는 분위기다. 배병준 첨단재생의료산업협회 부회장은 이번 개선안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연구 심의 준비 기간과 행정 소요가 줄고, 중기적으로는 임상연구 건수와 참여 의료기관이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정부 주도 임상과 치료 연계가 본격화하면 일본 원정치료 흡수 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볼멘소리도 여전하다. 자료 제출 부담 완화로 지방·골수 같은 '중·저위험' 연구는 숨통이 트였지만, 배아줄기세포를 비롯한 '고위험' 연구는 여전히 규제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아줄기세포 임상연구를 하려는 기업은 '세포처리시설'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세포를 환자 몸에서 채취하는 과정부터 직접 관리했다는 서류를 내야 한다. 하지만 생명윤리법상 배아줄기세포는 상업 목적으로 직접 만들 수 없게 돼 있어, 기업들은 과거 난임 치료 과정에서 만들어져 국가기관에 이미 등록된 세포를 받아 쓴다. 기업이 애초에 채취할 수 없는 세포에 대해 직접 채취했다는 증명서를 내라는 규제 자체가 모순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첨생법을 만들 때부터 배아줄기세포를 크게 고려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며 "고위험 분야 치료법이 유효성이 높은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규제가 심하다"고 귀띔했다. 배아줄기세포 연구 권위자인 김동욱 연세대 의대 생리학과 교수 역시 "여전히 일본과 규제 차이가 크다"고 진단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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