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1990년 ‘머라이어 캐리’ 데뷔 앨범 발매
천상의 목소리 호평…새로운 디바로 자리매김하며 발표하는 곡마다 공전의 히트 기록
2000년대 이후 불어난 체형으로 ‘한 물 간 디바’ 프레임…그가 택한 진짜 ‘자기 관리’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뚱뚱해진’ 머라이어 캐리의 체중 변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화됐고, 이를 조롱하는 2차 콘텐츠로 반복돼 온라인 전역으로 퍼졌다. “왜 저렇게 뚱뚱해?”, “살 찌더니 예전 같지 않네”, “자기관리도 안하는 가수”, “나이 먹고 한 물 갔네”같은 표현들이 때로는 외설적인 형태로까지 따라붙었다. [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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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자기관리’라는 말은 언제부터 외모 평가의 다른 이름이 됐을까. 살이 찌지 않았는지,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지, 여전히 무대 위에서 ‘보기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지가 그 사람의 성실함과 뮤지션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판단하는 기준처럼 쓰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특히 여성 뮤지션에게 이 단어는 음악적 성취나 성찰, 역량이나 기량보다 먼저 외모를 호출하는 잣대로 변질돼왔다.
대중음악 산업에서 이 왜곡은 더욱 노골적이다. 노래를 귀로 듣지만 평가는 눈으로 내려진다. 뮤지션의 테크닉이나 감성보다 외모와 몸매가 먼저 화제가 되고, 퍼포먼스의 밀도나 완성도보다 자극적인 사진 한 장이 더 빠르게 소비된다. ‘자기관리 실패’라는 말은 그렇게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 한 인간의 존재를 축약하는 단어처럼 사용된다.
이같은 프레임 앞에서 수많은 여성 뮤지션들은 설명을 요구받았고, 해명을 강요받았으며, 때로는 조롱의 대상이 됐다. ‘천상의 디바’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뮤지션의 자기 관리는 정작 무엇이며 우리는 무엇을 실패라고 낙인찍고 있을까.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은 과연 음악을 향해 있었을까.
“I was wayward child
With the weight of the world that I held deep inside
Life was a winding road
And I learned many things little ones shouldn‘t know”
(나는 다루기 쉽지 않은 아이였어
마음 속 깊이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삶은 굽이굽이 이어졌지
그 작은 아이가 알아서는 안되는 것을 배워왔어)
- 머라이어 캐리 ‘눈을 감으면’(Close My Eyes) 中 -
MTV의 등장은 음악을 듣는 행위에서 ‘보는 행위’로 이동시켰고, 이후 디지털 플랫폼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그 흐름을 가속화했다. 음악은 점점 짧아졌고, 이미지는 즉각적이어야 했으며, 평가는 곡이 끝나기도 전에, 아니 때로는 시작하기도 전에 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음악은 점점 ‘청각으로 증명되는 예술’이 아니라 ‘시각으로 판단되는 상품’에 가까워졌다. [게티이미지/Photo by Houston Chronicle/Hearst Nespaper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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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객전도
대중음악은 애초부터 ‘보이는 음악’과 함께 발전해왔다. 무대, 퍼포먼스, 스타성은 산업의 일부였고 때로는 필수적일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수트를 입고 기타를 치는 비틀즈의 젠틀하고 세련된 스타일,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 마돈나의 이미지 전략까지, 시각적 요소는 언제나 음악의 전달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기능해왔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여성 뮤지션에게 가혹하게 작동했다. 외모는 선택 사항이 아닌 의무가 됐고, 몸은 표현의 일부가 아닌 관리 대상으로 변질됐다. 노래가 아니라 외적 요인, 이를 테면 외모와 몸매가 기사의 헤드라인이 되었고 보컬의 컨디션 보다 드레스 코드와 사이즈가 먼저 회자됐다. ‘자기관리’란는 말은 음악적 태도가 아니라 외모 규율을 시각적으로 만족스럽게 지키고 있는지에 대한 감시 언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 기준은 애매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다. 젊고, 마르고, 오래 유지될 것. 이 조건에서 벗어나는 순간 뮤지션은 곧바로 ‘자기관리 실패’라는 딱지를 달고 평가 대상이 된다. 이 판단은 음악적 실패와 인과관계를 갖지 않음에도 당연한 연동처럼 소비된다. 이 지점에서 평가는 비평을 넘어 학대에 가까운 조롱으로 변질된다.
대중음악 산업이 만들어낸 이 왜곡된 잣대는, 결국 한 인간의 존엄을 음악보다 앞세워 재단한다. 노래를 잘 부르는가, 감성을 선명하게 표현해내는가가 아닌, ‘여전기 보기 좋은가’를 묻는 구조. 머라이어 캐리를 향해 쏟아진 조롱은 개인을 향한 공격인 동시에 이 산업이 얼마나 오래도록 왜곡된 기준을 정상처럼 유지해왔는지를 드러내는 장면에 가깝다.
With the world surrounding me
Wandering through the misery
But now I am free
I am free”
(한때, 나는 내 안에 갇힌 죄수였어
세상에 둘러쌓여 비참하게 방랑했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유로워
나는 자유롭다네)
- 머라이어 캐리 ‘나는 자유롭다네’(I Am Free) 中 -
살찐 여가수의 체중 변화는 곧 실력 저하로 등치되었고, 외모 변화가 음악적 몰락의 증거처럼 소비됐다. 이 시기 대중은 머라이어 캐리를 ‘노래하는 사람’이 아닌 ‘살찐 여가수’로 기억하고 판단하고 재단하기 시작했다. 공연 사진 한 장, 무대 위 실루엣 하나가 십여년간 쌓아온 커리어 전체를 덮어버리는 방식이었다. 그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보다, 얼마나 달라보였는지가 더 중요해진 순간이 된 것이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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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찐 여가수’
1990년대 초반, 데뷔와 동시에 ‘천상의 디바’로 불리며 완벽한 뮤지션에 가까운 이미지로 소비됐던 머라이어 캐리는 2000년대 중반 이후 급격한 체중 변화와 함께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음악보다 몸이 먼저 언급됐고, 음역보다 외형이 더 자주 회자됐다. 특히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뚱뚱해진’ 머라이어 캐리의 체중 변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화됐고, 이를 조롱하는 2차 콘텐츠로 반복돼 온라인 전역으로 퍼졌다. “왜 저렇게 뚱뚱해?”, “살 찌더니 예전 같지 않네”, “자기관리도 안하는 가수”, “나이 먹고 한 물 갔네”같은 표현들이 때로는 외설적인 형태로까지 따라붙었다.
문제는 사실 여부가 아닌 연결 방식이다. 살찐 여가수의 체중 변화는 곧 실력 저하로 등치되었고, 외모 변화가 음악적 몰락의 증거처럼 소비됐다. 이 시기 대중은 머라이어 캐리를 ‘노래하는 사람’이 아닌 ‘살찐 여가수’로 기억하고 판단하고 재단하기 시작했다. 공연 사진 한 장, 무대 위 실루엣 하나가 십여년간 쌓아온 커리어 전체를 덮어버리는 방식이었다. 그가 어떤 노래를 불렀는지보다, 얼마나 달라보였는지가 더 중요해진 순간이 된 것이다.
하지만 프레임은 결정적인 질문을 의도적으로 회피한다.
머라이어 캐리의 전성기 시절 보컬, 극단적인 초고음과 정교한 멜리스마가 시간이 흐르며 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체중이든 외모든 외형적인 ‘관리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20대 초반부터 혹사에 가까운 보컬 운용을 이어온 가수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변화에 가까웠다. 오히려 현지 보컬 전문가들은 이 시기 그의 라이브가 붕괴된 것이 아닌, 음역 선택과 곡 구성 방식이 달라졌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머라이어 캐리는 무대에서 데뷔 초반과 같은 초고음을 무리하게 반복하기보다 중저음 중심의 안정적인 라인과 호흡 조절에 집중했다. 스튜디오 음원과 동일한 퍼포먼스를 강박적으로 재현하기보다는, 자신의 현재 컨디션 안에서 가능한 최선의 표현을 선택했다. 즉, 보컬은 망가진 것이 아니라 방식이 바뀐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미 음악이 아닌 외형이 먼저 기준이 되는 구조 속에서, 대중은 라이브의 세부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 몇 차례 있었던 불안정한 무대는 곧바로 ‘한 물 갔다’는 증거로 소비됐고, 오랜 시간 유지해온 가창력의 총체는 ‘살찌고 나이 많은 여가수’라는 단일 변수로 축소됐다.
“So when you feel like hope is gone
Look inside you and be strong
And you‘ll finally see the truth
That a hero lies in you”
(희망이 사라져버렸다고 느껴질 때
너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강해지렴
넌 마침내 진실을 보게 될거야
네 안에 영웅이 숨쉬고 있다는 걸)
- 머라이어 캐리 ‘히어로’(Hero) 中 -
대중음악 산업에서 여성 뮤지션이 스스로를 해명하고 대중의 기준에 맞춰 기대를 증명하지 않은 채 침묵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중에게 해명하지 않으면 그는 곧 ‘인정’으로 읽히고, 반박하지 않으면 ‘포기’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머라이어 캐리는 자신의 몸와 나이를 둘러싼 해석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외형을 기준으로 삼는 평가 구조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증명이자, 음악 외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겠다는 존엄의 유지로 평가받는다.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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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과 증명
머라이어 캐리가 선택한 방식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조롱과 평가 앞에서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았고, 체중 변화에 대한 해명이나 자기관리 논쟁에 개입하지도 않았다. 외모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밝히거나 깆준을 재정의하려 애쓰지 않았으며, 대중의 기대에 맞춰 자신을 다시 증명하려 들지도 않았다.
이는 무기력의 결과가 아닌, 태도의 선택에 가까웠다. 머라이어 캐리는 외형을 둘러싼 논쟁이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과 무관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었고, 그 논쟁에 응답하는 순간 스스로를 그 기준 안으로 끌어들이게 된다는 점 또한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 질문의 전제 자체를 고정하고 인정하게 되는 셈이었다.
머라이어 캐리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이미지’가 아닌 자기 자신의 위치였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의 자리, 보컬리스트로서의 경력, 그리고 십수년간 축적해온 음악적 신뢰를 외형 평가의 언어로 환원시키지 않겠다는 선택. 이는 대중의 시선을 무시하는 오만함이 아니라, 논쟁의 축 자체를 옮기지 않겠다는 분명한 태도에 가깝다.
대중음악 산업에서 여성 뮤지션이 스스로를 해명하고 대중의 기준에 맞춰 기대를 증명하지 않은 채 침묵을 선택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대중에게 해명하지 않으면 그는 곧 ‘인정’으로 읽히고, 반박하지 않으면 ‘포기’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머라이어 캐리는 자신의 몸와 나이를 둘러싼 해석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는 외형을 기준으로 삼는 평가 구조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증명이자, 음악 외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하지 않겠다는 존엄의 유지로 평가받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침묵은 시간이 흐르며 더욱 분명한 메세지가 됐다. 조롱은 사라졌고, 프레임은 낡아갔으며, 결과적으로 남은 것는 여전히 그의 노래였다. 외형은 소비되지만 음악은 축적된다는 사실, 그리고 진짜 커리어는 이미지 논쟁을 통과해내지 않아도 유지된다는 점을, 머라이어 캐리는 결과로 증명해냈다.
머라이어 캐리가 보여준 것은 ‘보여지는 자기관리’가 아닌 자기 경계의 관리였다. 무엇에 응답하고 무엇에 거부할 것인가, 어떤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선 긋기. 외모를 둘러싼 소음 속에서도 자신을 규정하는 언어를 끝까지 음악 안에 남겨 두는 방식이었다.
외형을 둘러싼 논쟁은 휘발됐고, 남은 것은 그의 노래와 커리어다. 대중의 시선은 빠르게 이동하지만, 음악은 축적된다는 사실. 그리고 진짜 자기관리는 아름다운 외형을 유지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는 기준을 끝까지 지켜내는 힘이라는 점은 머라이어 캐리의 사례를 통해 분명해진다. [게티이미지/Photo By Kevin.Mazu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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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라이어 캐리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자기관리’라는 말의 오용과 왜곡이다. 관리란 본래 자신의 능력과 조건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지속 가능하게 선택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러나 대중음악 산업에서 이 단어는 어느 순간부터 외모 규율을 성실히 따르며 대중의 눈요기 기준에 맞추고 있는 지를 감시하는 언어로 변질됐다. 음악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보다,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먼저 평가되는 구조 속 ‘관리’는 음악과 무관한 잣대가 됐다.
머라이어 캐리는 그 잣대를 거부한 몇 안 되는 사례다. 해명하지 않은 채, 조롱에 응답하지 않으며 기대된 이미지로 자신을 되돌리려 애쓰지도 않은 여가수. 그는 자신의 현재 상태에 맞는 보컬 운용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했고, 음악을 중심에 둔 태도를 유지했다. 이는 포기나 방관이 아닌 ‘자신의 영역’을 구분하는 선택이었다.
결과적으로 외형을 둘러싼 논쟁은 휘발됐고, 남은 것은 그의 노래와 커리어다. 대중의 시선은 빠르게 이동하지만, 음악은 축적된다는 사실. 그리고 진짜 자기관리는 아름다운 외형을 유지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는 기준을 끝까지 지켜내는 힘이라는 점은 그의 사례를 통해 분명해진다.
‘자기관리’는 결국 무엇을 관리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몸무게인지, 이미지인지, 아니라면 자신의 언어와 정체성인지. 머라이어 캐리는 그 질문에 오래전부터 답해왔다. 그는 자신의 음악성을 관리했고,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경계를 지켰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까지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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