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수십 년 동안 기술 업계의 음과 양처럼 대비되는 존재로 여겨졌다.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은 와이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단정히 채운 채 조직에 순응하는 전형적인 기업 직장인을 위한 도구로 묘사됐고, 애플 제품은 권력에 맞서고 진실을 추구하는 반항적 개인을 위한 상징이었다.
이 같은 진부한 구도는 두 회사의 창립자이자 CEO에게도 그대로 투영됐다. 스티브 잡스는 체제에 저항하는 혁신가로, 빌 게이츠는 냉철한 비즈니스 중심의 기업형 경영자로 그려졌다.
그러나 현재 이런 이미지는 완전히 뒤집혔다. 애플 CEO 팀 쿡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우호적 태도를 보이는 기술 업계 인사로 꼽힌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특유의 조용한 방식으로 필요할 때는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사실상 유일한 빅테크 수장으로 남았다.
반항의 아이콘에서 아첨하는 기업이 된 애플
스티브 잡스는 2가지 방식으로 애플의 신화를 구축했다. 하나는 아름답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곧 반항과 자유, 창의성을 상징하는 일처럼 느끼게 만드는 광고 캠페인이었다. 애플을 선택하는 행위는 답답한 기성 질서에 맞서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증명하는 일로 포장됐다.
당시 가장 유명했던 광고는 매킨토시를 처음 공개한 슈퍼볼 1984 광고였다. 화면에는 빅 브라더와 세뇌된 군중이 등장하고, 망치를 든 한 젊은 여성이 이를 산산이 부수는 장면이 펼쳐졌다. 메시지는 노골적이었다. 곧 출시될 매킨토시는 조직에 순응하는 기업형 인간과 무미건조한 윈도우 PC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용자를 해방시킬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1997년, 애플은 이 메시지를 한층 더 강화했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 광고 캠페인을 통해 기성 질서에 맞섰던 혁신적 반항아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마틴 루서 킹과 마하트마 간디 같은 인물이 등장했다. 메시지는 1984 광고와 다르지 않았다. 매킨토시를 사용하는 것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유로운 사상가이자 반항적 창조자임을 증명하는 일이라는 선언이었다.
시계를 현재로 돌려보면, 애플 CEO 팀 쿡은 더 이상 반항과는 거리가 먼 인물임을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와 그가 상징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지지를 드러내기 위해 쿡은 2025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섰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트럼프를 만나 회동했으며, 트럼프의 “리더십과 혁신에 대한 집중”을 공개적으로 치켜세웠다. 화려함을 선호하는 트럼프의 취향을 잘 아는 듯, 24캐럿 금이 상당 부분 사용된 선물을 공개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기도 했다.
더 심각한 일도 있었다. ICE 요원이 미네소타에서 알렉스 프레티를 무방비 상태로 바닥에 엎드린 채 등에 10발을 쏴 사망에 이르게 한 지 불과 몇 시간 뒤, 팀 쿡은 백악관에서 열린 멜라니아 트럼프 다큐멘터리 갈라 시사회에 참석했다. 시사회에서는 장갑을 낀 웨이터가 쿡을 포함한 모든 참석자에게 기념 팝콘 박스와 액자에 담긴 상영 티켓을 전달했다.
보수 성향 정치 전략가 릭 윌슨은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이 정권과 같은 자리에 앉을 의지가 있는 CEO라면 오늘 밤 ‘주주 가치’라는 변명은 피로 얼룩진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후 쿡은 “긴장 완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프레티의 죽음에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고, 이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와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쿡은 단순히 트럼프를 치켜세우고 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쿡의 리더십 아래 애플은 ICE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애플은 사용자가 ICE 요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단속이 진행될 때 이를 알려주는 ‘아이스블록(ICEBlock)’과 같은 앱을 앱스토어에서 금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해당 앱의 삭제를 요청하자 애플은 신속히 이를 수용했다. 애플은 아이스블록 개발자인 조슈아 애런에게 보낸 서한에서 해당 앱이 “불쾌감을 주거나, 명예를 훼손하거나, 차별적이거나, 악의적인 콘텐츠”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삭제됐다고 설명했다.
과거 마틴 루서 킹이나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인물을 찬양하던 기업의 행보라고 보기에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트럼프에 맞서는 마이크로소프트
팀 쿡 체제의 애플과 달리, 사티아 나델라가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는 트럼프에 맞서는 태도를 보였다. 나델라는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쿡과 달리 트럼프의 환심을 사려는 제스처도 취하지 않았다. 금으로 만든 선물도, 멜라니아 다큐멘터리 갈라 행사 참석도 없었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트럼프의 압박으로 인해 1억 2,500만 달러(약 1,820억 원) 규모의 무료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합의한 로펌 심슨 대처 앤 바틀릿(Simpson Thacher & Bartlett)과의 관계를 정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해당 결정을 내린 배경을 분명히 했으며, 대체 로펌으로는 트럼프 행정부에 굴복하는 대신 소송을 제기한 제너 앤 블록(Jenner & Block)을 선임했다.
이어 트럼프는 마이크로소프트 글로벌대외협력부문 사장으로 임명된 리사 모나코의 해임을 요구했다. 모나코는 바이든 행정부 출신 인사로, 법무부 부장관으로 재직하며 기밀 문서 오남용과 2020년 대선 결과 전복 시도와 관련한 트럼프 기소를 총괄했던 인물이다.
트럼프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모나코를 해임하지 않을 경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연방 정부 계약을 철회할 수 있다는 취지의 압박을 가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부패하고 극단적으로 트럼프를 증오하는 리사 모나코가 매우 민감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고위직인 마이크로소프트 글로벌대외협력부문 사장으로 충격적으로 채용됐다”라며 “모나코가 그런 접근 권한을 갖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며 허용돼서는 안 된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가 미국 정부와 맺고 있는 주요 계약을 고려할 때 그는 미국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적었다.
그러나 나델라는 트럼프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모나코는 여전히 사장직을 유지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의 연방 정부 계약 역시 철회되지 않았다.
정체된 애플
스티브 잡스 시절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위치가 뒤바뀐 또 다른 지점도 있다.
2000년대 초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가 회사를 이끌던 시기, 마이크로소프트는 뚜렷한 혁신 없이 정체 상태에 빠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로운 획기적 기술을 내놓기보다는 윈도우를 ‘현금 창출원’으로 활용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잡스 체제의 애플은 혁신의 상징이었다. 아이폰, 아이패드, 아이팟과 같은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기술 업계를 넘어 세상 자체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요즘에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히려 혁신 기업의 역할을 맡고 있다. 오픈AI에 투자하고, 코파일럿을 통해 챗GPT를 자사 제품에 통합하며 생성형 AI 혁명을 주도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반면 팀 쿡 체제에서 애플은 단 하나의 획기적인 신제품도 내놓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애플은 아이폰을 확실한 ‘현금 창출원’으로 활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시장은 애플 인텔리전스가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지 여전히 기다리는 중이다.
역사는 사티아 나델라를 침체에 빠졌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되살린 인물이자, 필요할 때 트럼프에 맞섰던 경영자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팀 쿡에게는 그만큼 관대한 평가가 내려지지 않을 것이다. 기술적 혁신이 정체된 가운데에서도 애플의 수익성을 유지한 관료형 경영자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쿡이 트럼프에게 여러 차례 고개를 숙였던 장면 역시 함께 남을 것이다.
쿡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달래기에는 멜라니아 트럼프 기념 팝콘 상자 하나로는 역부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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