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하순 당대회는 과업 마무리 못 했단 신호"
"트럼프 방북으로 김정은 하노이 트라우마 해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북한 노동당 제9차 당대회가 2월 하순으로 예정된 데 대해 "당대회는 지난 5년을 총화하는 자리"라며 "정확히 5년 만에 열지 못하고 미뤄졌다는 건 과업이 계획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는 신호"라고 강조했다. /수서=박헌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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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수서=김정수·정소영 기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의 이력은 남북관계사 압축판에 가깝다. 그는 8·15 광복 이후 부모 등에 업혀 만주와 북한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왔다. 분단은 그가 태생부터 몸으로 겪은 현실이었다. 정 전 장관은 박정희 정부 시절 공산권연구관으로 출발해 전두환 정부의 남북대화운영부장, 노태우 정부의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 김영삼 정부의 대통령 통일비서관을 거쳤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통일부 장·차관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다시 통일부 장관을 맡았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활동했다. 그를 향한 '원로 관료'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이런 배경 탓인지, 북한 제9차 당대회가 2월 하순으로 예정된 데 대해 정 전 장관은 '왜 하순인가'라는 시기 문제부터 짚었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더팩트>와 만난 그는 "당대회는 지난 5년을 총화하는 자리"라며 "정확히 5년 만에 열지 못하고 미뤄졌다는 건 과업이 계획대로 마무리되지 못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당대회 일정 지연을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보지 않았다. 북한이 이번 당대회를 통해 내놓을 성적표의 성격이 이미 드러나 있다는 판단이다. 그는 "군사력은 보고할 게 많지만 경제는 그렇지 않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현지지도를 다니며 간부를 문책·해임하는 장면이 잦아진 데 주목했다. 이어 "마지막 단계에서 현장을 점검해 보니 성과가 신통치 않아 본때를 보이는 방식으로 기강을 잡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정 전 장관은 또 김 위원장이 내세우려는 핵심 성과로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지목했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은 2024년부터 10년 동안 매년 20개씩 전국 시군에 공장을 지어, 10년 뒤 200개 공장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경제발전 5개년 전략과 지방발전 20×10 정책을 하나의 성과 이야기로 엮어야 한다"며 "당대회에서 '지난 5년 동안 이런 성과를 거뒀고 20×10 정책도 2년 차까지 이 정도 성과를 냈다'는 식으로 정리해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앞으로 2030년까지 지방 발전을 이런 방향으로 끌고 가겠다는 장기 청사진을 비교적 장황하게 제시하려 할 것"이라며 "자신에 대한 존경과 체제 정당성을 경제 성과로 확보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공장 건설'이 곧 '가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 전 장관은 "공장을 짓기만 하면 뭘 하느냐. 원부자재와 원료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 내부 조달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지난 10일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성과로 포장하려면 결국 밖에서 원부자재가 들어와야 하는데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은 미국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수서=박헌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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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장관의 결론은 '대외 조달'이다. 그는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성과로 포장하려면 결국 밖에서 원부자재가 들어와야 하는데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은 미국밖에 없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상반기 중 끝날 것 같은데 그러면 러시아로부터의 지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벌써부터 (러시아) 파병군 기념관을 만들며 빚 독촉을 하지 않나"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당대회에서 향후 5년 발전 청사진을 제시할 때 '이 부분은 미국이 아니면 해결이 안 된다'는 대목이 드러난다면 김 위원장이 3~4월 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접촉을 모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지난 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1718위원회)가 보류해 온 17개 대북 인도적 지원 사업을 둘러싼 움직임에 대해서도 북미 간 재접촉을 염두에 둔 신호로 해석했다. 다만 인도적 지원만으로는 북한을 움직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해법을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찾았다.
그는 "북한이 미국에 바라는 건 그 정도(인도적 지원)는 아니다"라며 "북한이 핵 개발을 하는 것 등은 미국이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앞세워 언제 어떤 핑계를 대고 우리를 공격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북미대화 해법을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찾았다. 정 전 장관은 "싱가포르 회담을 했을 때 김 위원장의 합의를 받아냈다.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며 "여기서 평화체제는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다자 협정이 될 수밖에 없고, 2007년 노무현 정부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이 그 협상의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북미 대화 재개와 관련해 <더팩트>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하는 모습. /박헌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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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전 장관은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미국이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는 방식도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2019년 하노이에서 열렸던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트라우마가 김 위원장에게 있다"며 "이에 김 위원장 입장에선 미국의 대통령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북한 땅으로 들어오는 장면 자체가 큰 의미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또 "그동안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오가고 판문점에도 왔었지만 이제는 미국이 먼저 찾아와 대접하는 형국이 되면 '우리가 위대한 나라가 됐다'는 메시지를 내부에 줄 수 있다"며 "그것 자체가 중요한 인센티브가 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당대회에서 대남 메시지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적대적 두 국가 방침을 당장 포기하긴 어렵고, 괜히 어설프게 언급했다가 남쪽이 다가오면 복잡해진다"고 짚었다.
아울러 정 전 장관은 한반도 비핵화도 현실적인 관리와 구조 전환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핵무기는 방어적 억지 수단일 뿐 실제로 쓰일 수 없는 무기"라며 "수천 개의 핵을 가진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쓰지 못하고 있고, 중국도 핵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관계 개선을 못 할 이유는 없다"며 "핵을 가진 중국과도 수교했고, 교류와 협력을 해왔다는 점을 정확히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미·중이 평화협정을 체결한 뒤 이를 일본과 러시아까지 포함한 주변국들이 함께 보장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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