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라스 "유럽이야말로 번영과 자유의 세계 기준 제시"…뮌헨안보포럼 폐막
유럽, 연일 자강론 설파…美국무 '톤 다운' 연설에 유럽 안도도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 대표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
(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연합(EU) 외교 수장이 유럽 문명이 이민자 수용 등에 타격을 받아 쇠퇴하고 있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지적에 반박했다고 dpa 통신 등이 전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15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 마지막 날 기조연설에서 유럽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뛰어난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다면서 유럽이야말로 번영과 자유의 세계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칼라스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일부에서 '정치적으로 각성(woke)하고 타락한' 유럽이 문명적 소멸에 직면해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인류 진보에 기여한 유럽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럽 때리기'가 특정 정치권에서 유행이 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칼라스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유럽이 이민, 문화적·종교적 변화, 출생률 감소 등으로 '문명 소멸' 위험에 처해 있으며 20년 내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아 최근 미국이 펴낸 33쪽 분량의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 대한 반박 차원으로 풀이된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전날 뮌헨안보회의 연설에서 미국과 유럽이 한 뿌리임을 언급하면서도 유럽이 문명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이주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와 비슷한 시각을 드러냈다.
에스토니아 총리 출신의 칼라스 대표는 또한 극우정당에 대한 유럽의 규제를 놓고 미국이 '표현의 자유 억압'이라고 비난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그는 에스토니아가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을 언급하면서 "언론 자유에 대한 비판을, 이 목록에서 58위의 나라로부터 듣는 것은 흥미롭다"고 비꼬았다. 미국은 실제로 최근 RSF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57위에 머물렀다.
칼라스 대표는 유럽이 번영과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캐나다인의 40%가 EU에 가입하고 싶어 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4년을 꽉 채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서 러시아에 양보를 압박해야 한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유럽 방위는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된다. 전쟁이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유럽 안보가 좌우된다"면서 러시아 군사력에 상한을 두고, 전쟁 피해에 대한 배상과 전쟁범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러시아를 냉정히 보자면 '초강대국'이 아니라 '망가진 상태'"라고 평가하면서 "현재 러시아가 제기하는 최대 위협은 전장에서 얻은 것보다 (종전)협상테이블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뮌헨안보회의에서 손흔드는 젤렌스키 대통령 [AP=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하지만, 칼라스 대표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문제와 관련해서는 EU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특정한 날짜를 제시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면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발언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날 미국 측에 러시아와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최소 20년간 안전보장이 필요하다고 촉구하면서, 유럽을 향해 EU 가입을 위한 명확한 시한을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에 선을 긋는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러시아와 전쟁 발발 이후 EU 가입을 신청했고, 최근에는 2027년까지 가입하기 위한 준비를 마치겠다며 종전협정에 가입 날짜를 못 박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올해로 62회째를 맞은 뮌헨안보회의는 칼라스 대표 등의 연설 등을 마지막으로 사흘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세계 최대 규모 안보포럼으로 꼽히는 뮌헨안보회의는 전통적으로 미국과 유럽이 안보 협력을 논의하는 자리로 여겨진다. 그러나 지난해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로는 미국이 새로 짜는 국제질서를 둘러싸고 양측의 신경전 무대가 됐다.
특히나 올해는 트럼프 대통령이 덴마크 자치령 그란란드에 눈독을 들이면서 유럽과 미국의 대서양 동맹이 깨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유럽을 휩쓴 직후에 열린 터라 미국과 유럽의 기 싸움이 어떻게 전개될지가 관전 포인트 중 하나였다.
14일 뮌헨 안보회의에서 연설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등 유럽 측 주요 인사들은 연일 유럽 자강론을 설파하며 유럽이 쇠퇴하고 있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비판을 반박하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
미국을 대표해 연설에 나선 루비오 장관은 1년 전 같은 자리에서 유럽을 향해 적대적인 독설과 훈계를 쏟아낸 JD 밴스 부통령과는 달리 대서양 동맹의 분열보다는 화합을 강조하는 듯한 발언으로 유럽 측에 어느 정도 안도감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화해를 지향하는 듯한 어조와는 달리 내용 자체는 '미국의 이익에 맞게 세계 질서를 재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에 동참하라'는 메시지로 유럽을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경계를 늦출 수 없다는 지적도 유럽 일각에서 나왔다.
볼프강 이싱어 뮌헨안보회의 의장은 폐막 연설에서 EU는 평화 유지와 분쟁 예방에 있어 공동의 책임을 더 크게 떠안을 준비가 돼 있다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연설이 아닌 계획과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차기 뮌헨안보회의 의장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전임 사무총장인 옌스 스톨텐베르크 노르웨이 재무장관이 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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