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중국의 한 고위 공직자가 부정부패로 무려 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 공직자는 이미 처자식을 캐나다로 이민 보낸 상태였다는 점이 주목을 끌었다. 부정 축재 재산이 해외로 반출돼 가족들은 호의호식할 것이고 피의자도 출소 후 해외로 도피할 수 있다는 여론이 크게 들끓었다.
이 사건 발생 뒤 ‘벌거숭이 공무원’이라는 뜻의 중국어 뤄관(裸官)이라는 신조어가 널리 회자됐다. 뤄관은 원래 가족들을 해외로 유학이나 이민 보내고 헐벗듯 홀로 남아 뒷바라지하는 공직자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 사건이 터지고 며칠 뒤에 안후이성 우후시 정치협상회의 상무위원 저우펑안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 부패 관료가 벌거벗은 채 관직을 맡고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공개 비판을 계기로 수많은 뤄관들이 악마화의 대상이 됐다.
뤄관 규제에 시동이 걸린 것은 배우자와 자녀 모두 해외로 보낸 공직자를 등록하게 한 2010년 후진타오 국가주석 시절부터다. 2012년 시진핑 주석 집권 후에는 반부패 운동과 맞물려 뤄관 숙청 바람이 불었다. 2014년에 개정된 공산당의 ‘당정 영도간부 선발임용 공작조례’에 따라 뤄관은 승진에서 배제됐다. 지난 몇 년 사이에는 해외 유학한 자녀를 졸업 후 6개월 내 귀국시키지 못한 장관급 인사들을 전보 조치하는 규정도 생겼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뤄관으로 알려진 정협 경제위원회 부주석 이강, 중국인민대학장 린상리 등 고위 인사 다수가 낙마했다. 근래에는 배우자를 국내에 두고 자녀만 해외로 보낸 반(半)뤄관도 감시 대상에 올랐다고 한다. 그 여파가 민간 부유층 기러기 아빠인 ‘뤄상(裸商)’에 미치면 중국계 유학생·해외 취업자가 급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인 유학생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 대학들과 인공지능(AI) 인재 확보 범위를 중화권까지로 넓힌 우리 산업계에 악재다. 유학생 유치와 AI 인재 확보에 차질이 없도록 중국 정부의 해외 유학·이민 감독 추이를 주의 깊게 살피며 정교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민병권 논설위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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