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약가 체계의 전면 손질에 나서면서 제약산업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동일 성분 제네릭이 100개를 넘는 품목이 적지 않고, 사용량 대비 급여 비율이 주요국보다 높다는 지적이 이어지면서 가격 구조 전반을 재조정하겠다는 취지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면 문제 제기 자체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문제 인식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동일 성분에서 후발 품목이 반복적으로 등재되는 구조를 효율적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과도한 마케팅 경쟁과 품목 난립이 시장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설득력이 있다. 가격 신호가 왜곡됐다는 지적 역시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책의 강도는 별개의 문제다. 실제로 약가를 낮췄을 때 얼마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산업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어느 정도인지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 가격 인하는 결국 기업의 수익 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투자와 생산 규모에 영향을 미친다. 산업이 입는 손실이 더 크다면 사회 전체로는 순이익이라고 볼 수 없다.
국내 제약사들은 그동안 제네릭 판매로 확보한 수익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해 왔다. 수익 기반이 약화되면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글로벌 임상 3상과 플랫폼 기술 개발, 해외 허가와 상업화 인프라 구축은 모두 장기적이고 위험이 큰 영역이다.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전제돼야 투자가 지속될 수 있다. 약가 인하가 혁신을 자극하기보다는 오히려 연구개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이는 글로벌 경쟁 환경과도 맞물린다. 국내 제약사들은 바이오의약품 생산 역량을 확대하고 기술수출을 늘리며 성장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일부 기업은 글로벌 임상 단계에 진입했고 해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신약 개발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사업이 아니다. 수년간 축적된 투자와 인력, 인프라가 결합해야 결과가 나온다. 수익 구조가 흔들리면 이러한 장기 전략은 불가피하게 조정될 수밖에 없다.
중견·중소 제약사에 미칠 충격은 더욱 직접적이다. 대형사는 일정 부분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기업은 현금흐름 변화가 곧 경영 안정성으로 이어진다. 수익성이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연구개발뿐 아니라 설비 투자와 인력 유지도 부담이 된다. 산업 전반의 투자 축소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질 경우 구조 개선을 목표로 한 약가 개편이 오히려 산업 기반을 약화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공급 안정성 역시 간과하기 어렵다. 가격이 과도하게 낮아지면 기업의 생산 유인은 약화된다. 저가 만성질환 치료제나 소량 생산 품목은 더욱 민감하다. 가격 조정이 반복되면 일부 품목에서 생산 축소나 철수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공급 기반은 한 번 축소되면 단기간에 복원하기 쉽지 않다. 기업의 손익을 넘어 환자 접근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물론 현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동일 성분 수백 개 품목이 경쟁하는 현실은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러나 해법은 충격 요법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에 있다. 단계적·차등적 인하와 함께 연구개발 투자와 공급 기여도에 연동된 보완 장치가 병행돼야 한다. 재정 절감 효과가 산업의 혁신 역량을 약화시키는 방식이라면 정책의 지속가능성 역시 담보하기 어렵다.
약가 정책은 재정 정책인 동시에 산업 정책이다. 재정을 지키겠다는 명분이 산업의 체력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장기적으로는 재정도 안정되기 어렵다. 국가 경쟁력의 한 축인 제약산업의 성장 기반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산업을 지키는 정교한 설계다.
[이투데이/유혜은 기자 (euna@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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