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호 (사)케이썬 이사장/미래학회 고문
최근 글로벌 인공지능(AI) 패권 경쟁에서 아랍에미리트(UAE)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세계 최대 AI 기업들이 앞다퉈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데이터센터를 세우고 있다. ‘팔콘(Falcon)’으로 알려진 UAE의 오픈소스 AI 모델은 출시 직후 글로벌 벤치마크에서 메타, 구글의 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주도하는 기술 혁신의 틈바구니에서, UAE가 어떻게 이런 일을 해낸 것일까. 그 뒤에는 두바이미래재단(DFF: Dubai Future Foundation)이 있다.
2016년 셰이크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의 “두바이를 다른 도시보다 10년 앞서게 하라”는 칙령과 함께 탄생한 이 기관은 통상적 싱크탱크가 아니다. 싱크탱크가 보고서를 도서관 서가에 쌓는 동안, DFF는 그 보고서를 각 부처 장관의 ‘KPI(핵심성과지표)’로 전환한다. 미래를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원하는 미래 시점을 먼저 설정한 뒤 현재의 규제와 예산과 인사를 뜯어고치는 ‘백캐스팅(Backcasting)’ 전략을 국가 운영의 기본값으로 삼는 것이다.
DFF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규제 연구소(Regulations Lab)’다. 자율주행, 드론 배송, 가상자산 거래소가 두바이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된 이유는 기술력이 뛰어나서가 아니었다. 법적 마찰 계수가 0에 수렴했기 때문이다. RegLab은 입법 절차를 기다리는 대신 특정 구역 내에서 법적 효력을 정지시키고 임시 허가를 즉시 발급하는 권한을 갖는다. AI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럽이 AI법을 두고 수년간 논쟁하는 사이, UAE는 AI 장관을 임명하고 모든 정부 부처에 최고 AI 책임자(CAIO)를 배치하며 ‘AI 유니버설 블루프린트’라는 정부 전체의 실행 체계를 가동했다. DFF의 미래 연구 결과물이 곧 정부 부처의 실행 명령서가 되는 구조다.
이것이 UAE AI 굴기의 본질이다. 탁월한 엔지니어가 있어서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국가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하려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려는 조직이 행정 시스템 안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에겐 훌륭한 연구기관과 유능한 관료가 있다. 그러나 ‘미래를 설계하는 기능’은 없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 자문기구는 있지만 이들의 연구 결과가 부처의 KPI로 전환되는 일은 거의 없다. 5년 단임제 아래에서 정부는 태생적으로 임기 내 성과에 집착한다. 저출생, 연금 개혁, AI 전략 모두 ‘이미 닥친 위기’에 대한 허둥지둥한 대응이지, 20년 뒤를 내다보며 현재를 설계하는 작업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AI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100조원 투자, 인프라 확충, AI 3강 도약이라는 목표는 방향성으로 맞다. 하지만 투자 금액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전략을 지속적으로 설계하고 조율하는 기능이 정부 안에 있느냐이다. 대통령직속위원회 형태의 상징적 기구가 아니라,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규제와 예산과 인재 배치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실행 권한을 가진 미래설계 기능이 필요하다.
DFF의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자는 말이 아니다. 왕정의 효율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민주화가 장기적인 국가 미래전략의 실종으로 이어진 것은 국가 기능의 후퇴라고 할 수 있다. AI로 상징되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5년 단임제의 정치 사이클에 갇혀 정권교체기마다 국가 전략이 혼돈에 빠지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정부 주도의 장기 국가미래전략 상설기구, 혹은 대통령 임기를 초월해 연속성을 갖는 미래설계 독립기관을 만드는 일은 정파를 넘어 합의되야 할 의제다.
UAE가 AI 강국으로 떠오른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10년 전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한 결과다. 한국이 10년 뒤에도 AI 강국이 되길 원한다면, 지금 당장 미래를 설계하는 기능을 정부 조직에 심어야 한다.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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