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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5 (수)

    [논현논단_홍준형 칼럼] 부럽기만 한 美의 ‘사법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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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공법학

    연방대법 관세 판결 권력분립 확인
    대통령 뜻 거스르며 법치근간 세워
    ‘韓 사법개혁’ 헌정 신뢰 깰까 우려


    이투데이

    미국 연방대법원이 국가별 ‘상호관세’를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리자 트럼프 대통령은 노발대발 격노했다. 그는 무역법 122조에 따른 대항조치로 응수했다. 지구상 모든 국가들에 10% 임시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을 즉시 발효시키더니 하루 만에 관세율을 15%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을 발동해 기존 상호관세 등을 대체하겠다고도 했다. 광분 폭주의 모양새다. 150일 시한부인 이 임시조치 역시 불복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 전도가 불확실하다.

    그는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을 비애국자, 나라의 수치, 바보, 졸개(lap dog)라고 부르며 외국의 이해에 휘둘렸다는 등 거의 욕설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격노하는 대통령? 요즘 부쩍 자주 접했던 광경이다. 현실 풍자의 쇼츠가 아니라 그 자체가 현실 정치의 민낯이다.

    이 판결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따른 상호관세 부과는 법적 근거가 없어 위법이란 것이지만 실은 사법부가 대통령의 권력을 제한한 것이 핵심이다. 법의 지배를 위한 승리라는 평이 나오는 까닭이다.

    권력분립이란 국가의 기능을 입법·행정·사법으로 분립하여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는 헌법 제도이자 원리이다. 권력이 집중되면 필경 전제와 폭정이 빚어진다. 그러므로 권력을 기능별로 떼어 놓아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여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사법부의 독립이 핵심 중의 핵심으로 중시되는 이유이다. 몽테스키외, 존 로크 등이 나오는 교과서적 얘기지만, 권력분립은 전제와 폭정의 쓰라린 악몽을 교훈 삼아 인류가 고안해 낸 문명적 처방이었다.

    권력분립은 법치주의의 근간이고 민주헌정의 불가결한 토대가 된다. 하지만 대중은 국가권력 간의 갈등과 대립을 참아내기 어려운 나머지 종종 이 헌법의 근본정신을 잊거나 경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권력을 쥔 자는 권력에 중독되어 권력분립 훼손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 국민이 제일이고 국민이 직접 뽑아준 선출직이 최고라는 천박한 서열주의가 동원되기도 한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등장으로 보수화되어 권력견제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 와중에 이번 판결이 나왔다. 대세를 바꿀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끝없이 추락하던 미국 민주주의가 살아날 실낱 같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제3세계 후진국에서나 볼 법한 이민세관집행국(ICE)의 무자비한 진압작전으로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광경, 곳곳에서 벌어지는 시민들의 시위, 책임자들이나 연방법무장관이 나서 되레 사태를 정당화하려고 광분하는 모습을 보며 실망했던 지구촌은 그나마 희망을 추스른다. 열린 판도라 상자에 찌그러져 있던 그 희망을.

    확연한 보수로 분류되었던 대법관들이 위법 판단에 가담한 것도 고무적이다. 자신을 임명해 준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는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은 많지는 않아도 결코 드물지도 않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얼 워런 대법관을 두고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후회했다고 한다. 그럴 수 있기에 또 그런 이유에서 사법의 독립이 정당성을 가지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떤가. 미국 연방대법원의 ‘독립선언’(NYT)에 감탄할 겨를이 없다. 사법개혁 3법이 당장 발등의 불이다. ‘이재명 정부의 빌런들’로 지목된 여당 법사위원들이 중심이지만 대통령의 뜻과 무관하다 여길 이는 없을 것이다.

    법왜곡죄 신설방안은 말처럼 쉽지 않고 실효를 거두기도 어렵다. 폐해가 더 클 수 있다. 재판소원 도입안은 대법원의 주장처럼 반드시 위헌으로 볼 일은 아니고 숙의를 거쳐 그 요건을 엄격히 정해 시행하면 폐단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재판기관들의 소송부담이나 법률비용 증가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대법관증원 역시 사법의 신뢰 회복에 보탬이 될지 의문스럽다. 사실 대법관 증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는 법조계에서도 작지 않다. 증원 규모와 속도가 문제일 뿐.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중 대법관 26명 중 22명을 임명하게 돼 대법원의 인적 편향에 대한 우려가 깊고 크다. 하지만 입맛에 맞는 인물을 대거 대법관으로 포진시켜 새 판을 짠들 그 기대가 충족될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중요한 재판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법원 규모 확대에 따른 법원 조직, 인사 등 부담이 적지 않다. 얻는 것은 당리지만 잃을 것은 헌정시스템의 신뢰기반이다. 교각살우의 우가 되진 않을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길이 자손들에게 건강한 헌정시스템을 물려 줄 생각은 하지 않는가.

    [이투데이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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