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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6 (목)

    탈모, 아직 괜찮다고 방심하다가 한번에 몰락한다 [김진오의 처방전 없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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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오 성형외과 전문의]
    이코노믹리뷰

    ※김진오 전문의는 현재 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 및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로 활동 중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처방전 없는 이야기’에서는 진료실 안팎에서 마주한 순간들을 바탕으로, 의료와 사람, 제도에 관한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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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모를 진료하다 보면, 사람이 얼마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지 느끼게 된다.

    아침마다 세면대에 또 배수구에 보이는 머리카락을 봤지만, 당장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아직은 자신이 생각하는 탈모인이 아니라며 안도했다고 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아직 두피를 보면 빼곡해요"라는 말은 치료의 골든타임을 유예시키는 가장 달콤한 자기 최면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시각은 모낭의 몰락 속도를 결코 따라잡지 못한다.

    인간의 눈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보수적으로 작용하며 자기 기만적이다. 사물이 완전히 변하기 전까지는 이전의 이미지를 관성적으로 유지하려는 뇌의 보정 기능 때문이다.

    의학적으로 인간의 눈이 두피의 빈틈을 명확히 인지하기 위해서는 전체 모발의 30%에서 50%가 소실되어야만 한다. 이것을 모발이식에서의 '50% 법칙'이라고 부른다. 수술을 위해 후두부(뒷머리)에서 수천 개의 모낭을 솎아 내도, 50% 이상 모발이 남아 있으면 그 자리는 수술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풍성함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머리카락은 이토록 처절하게 유실되어야 비로소 어딘가 비어 보인다. 즉, 당신이 거울을 보고 위기감을 느꼈을 때는 이미 전선(前線)의 절반이 무너진 후라는 뜻이다.

    더 교묘한 배신은 '모낭 소형화(Miniaturization)'라 불리는 질적인 쇠퇴에 있다.

    탈모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리카락이 자취를 감추는 실종 사건이 아니라, 마치 성장이 멈춘 나무처럼, 굵고 선명했던 모발이 세포 증식의 동력을 잃고 서서히 솜털처럼 가늘어지는 퇴화의 과정이다. 물리적 법칙에 따르면, 모발의 지름이 단 20%만 줄어들어도 빛이 투영되는 양이 달라지며 전체적인 볼륨감은 기하급수적으로 붕괴한다.

    그러니 어쩌면 지금 당신이 보는 빼곡한 숱은 실은 속이 텅 빈 건물처럼 가느다란 모발들이 버티고 있는 시각적 방어선에 불과할 수 있다. 손가락 끝에 잡히는 머리칼의 질감이 예전 같지 않게 가볍거나 힘없이 흩어진다면, 그것은 거울이 보여주는 가짜 풍성함보다 훨씬 더 정직한 소멸의 전조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흔히 상황이 눈에 띄게 나빠진 후에야 대책을 강구한다. 그러나 탈모 치료는 정비소로 가라는 엔진 경고등이 켜졌을 때 핸들을 꺾어야 하는 게임이다. 도심 한복판에서 차가 멈춰 선 뒤에야 보닛을 열면 수리비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치솟는다.

    2024년의 국제 임상 가이드라인이 강조하는 치료의 핵심은 잔존 모낭의 건강도다. 모낭이 완전히 위축되어 지도에서 사라지기 전, 즉 겉보기에는 아직 멀쩡해 보이는 지금이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으로 미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많은 이들이 이 시기를 조금 더 지켜보겠다는 명분으로 방치하다가, 결국 모발이식 수술밖에는 대안이 없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육안에 의존하는 자가 진단은 과학적이지 않다. 검증되지 않은 샴푸에 기대를 걸거나 혼자서 약국을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행위는 일을 더 크게 키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거울을 치우고 병원에 가서 검사받는 용기다. 검사할 때 현미경으로 보이는 굵은 모발 사이 숨어 있는 연모화된 모발들의 처참한 비율이 숫자로 드러난다. 그 성적표를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풍성한 미래를 위한 가장 첫 번째 단계다.

    탈모를 대하는 태도는 삶의 위기를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 눈앞에 닥친 결과에만 일희일비하며 안도할 것인지, 아니면 물밑 아래에서 진행되는 조용한 침식을 미리 읽어내고 대응할 것인지의 문제다. 겉보기에 괜찮다는 자기 위로에 취해 골든타임을 낭비하는 것만큼 값비싼 비용을 치르는 어리석음은 없다. 담장이 무너지기 전, 소가 한두 마리 사라지는 미세한 기척을 포착해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지금 당신의 손끝에 남은 그 미묘하고 낯선 가벼움은, 거울이 차마 말해주지 못하는 모낭의 마지막 SOS다. 그 신호를 애써 무시하고 덮어버리기엔, 우리가 잃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 김진오 뉴헤어모발성형 외과 원장은 진료와 연구를 병행한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매일 만나며, 국내외 학술지에 연구 논문을 꾸준히 발표한다. 진료실 밖에서는 35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 '뉴헤어 프로젝트', 블로그 '대머리블로그', 저서 '참을 수 없는 모발의 가벼움' · '모발학-Hairology' 등으로 대중과 소통한다. 현재 성형외과의사회 공보이사 및 대한레이저피부모발학회 학술이사로 활동 중이다.

    ER 이코노믹리뷰 연재 칼럼 '처방전 없는 이야기'에서는 진료실 안팎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의학·의료 정책·사람에 관한 생각을 담백하게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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