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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관통한 관세와 수출 규제, 자원 무기화 흐름이 2026년에도 이어지는 가운데, 고려아연이 국제 핵심광물 공급망 논의의 중심에 섰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 2월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에너지기구(IEA) 각료이사회에서 '핵심광물 공급망' 세션 의장을 맡아 공급망 집중 완화와 동맹 기반 협력 필요성을 공식 제시한 것이다. 국내 기업인이 IEA 각료이사회에서 해당 세션을 주재한 것은 이례적인 사례로, 고려아연이 글로벌 공급망 논의에서 민간 파트너로서 위상을 드러낸 장면으로 평가된다.
이번 회의는 핵심광물이 단순히 가격이 비싸고 물량이 제한된 자원을 넘어, 산업 경쟁력과 국가 안보를 동시에 좌우하는 전략 자산으로 격상됐음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미중 패권전쟁과 중일 무역 갈등 속에서 중국의 핵심광물 수출 통제가 반복되며, 공급망 안정은 개별 국가 차원을 넘어 국제적 해결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에서 공급망 안보로 무게 옮긴 IEA
고려아연과 IEA의 만남은 이러한 국제 환경 변화와 맞물린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IEA는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글로벌 석유 공급망 위기 대응을 위해 설립됐지만, 최근에는 핵심광물 분야에서도 공급 차질에 대비한 공동 대응 체계를 본격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파티 비롤 IEA 사무총장은 지난해 9월 타임지 기고문을 통해 "오일 쇼크는 IEA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비상 석유 비축과 공동 관리 체계를 만들었다"며 "핵심광물 공급 차질 역시 국제 협력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실제로 이번 각료이사회에서도 공급망 복원력 강화와 협력의 제도화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번 IEA 각료이사회에서도 '공급망 복원력'과 '협력의 제도화'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국제기구와 정부가 기준과 틀을 마련하면, 이를 실물 공급과 투자로 구현하는 역할은 민간 기업이 맡아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됐다. 고려아연이 현장에서 정부·산업계 공동 토론 세션을 주재한 것도 민간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공식화한 장면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공급망 파트너로 부상한 고려아연
IEA가 고려아연을 주목하는 배경에는 고려아연이 그간 구축해온 사업 포트폴리오가 있다. 고려아연은 수년 전부터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불리는 중장기 성장 전략을 통해 핵심광물과 자원순환, 에너지 전환 분야에서 사업 기반을 확장해 왔다. 동시에 대미 투자 기조를 강화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역할도 키워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미국 제련소 투자 프로젝트다. 고려아연은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온산 제련소와 유사한 규모의 제련소를 건설해 안티모니 등 11종의 핵심·전략 광물을 대규모로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의 반도체, 방산, 우주항공 등 핵심 산업 공급망이 중국에 높은 의존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해당 투자는 미국의 전략 자원 공급망 안정성을 강화하는 사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안티모니의 경우 중국 의존도가 7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역시 자국 내 공급망 재건을 시도했으나 채산성과 환경 규제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공급망 안정화의 주요 민간 파트너로 부상한 것이다. 고려아연이 전략광물 생산에 활용하는 원료 조달 구조 역시 호주와 남미 등지에 기반한 탈중국 공급망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올해 1월에는 최 회장이 직접 미국 현지를 방문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공급망 협력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최 회장은 1월 27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애틀랜틱 카운슬 주최 '광물 안보를 위한 동맹 파트너십 모델' 대담에서 "미국이 핵심광물 분야에서 중국 지배력에 대항하거나 상쇄하기 위해 완전한 장악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다자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국이 가공 단계에서 강점을 갖고 있지만, 채굴 단계에서는 인도네시아, 콩고, 인도 등 다른 국가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짚으며, 미국이 동맹국과의 투자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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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최 회장의 시각은 IEA가 추구하는 공급망 다변화·협력 전략과 궤를 같이한다. 미국 희토류 정보 제공 업체 '레어 어스 익스체인지(REE)'는 "IEA가 이번 각료회의를 계기로 핵심 광물 안보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격상시켰지만, 산업 역량 확충이 결정적인 변수"라고 분석했다.
IEA가 정보 공유와 모의훈련, 시장 모니터링을 통해 조정 역할을 수행할 수는 있지만, 실제 채굴과 정제, 물량 확보는 기업의 몫이라는 의미다.
결국 검증된 생산능력을 지녔으면서도 중국의 영향권에서 자유로운 산업체가 핵심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다. 비철금속 세계 1위 점유율을 자랑하는 고려아연이 업계의 주목을 받는 이유다.
공급망 안보·기업 수익 동시 보장해야
물론 현재로선 양측이 공감대를 확인했을 뿐이다. IEA의 공급망 가이드라인 아래 회원국들의 장기적, 국제적 정책 기준 확정이 뒷받침되는 것이 우선이다. 회원국들이 먼저 '탈중국 원료 조달'과 '안정적 제련 기술'을 가진 기업에 손을 내미는 기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시장에서는 고려아연의 탈중국 공급망 전략을 두고 기대와 함께 검증이 필요하다는 시선도 공존한다. 핵심광물 산업은 정책 변화와 지정학 리스크, 가격 변동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규모 설비 투자 이후에도 안정적인 물량 공급과 장기 수요처를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느냐가 향후 평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공급망 안보의 전략적 가치가 기업의 실질적 수익성과 어떻게 맞물릴지가 고려아연이 넘어야 할 다음 단계라는 분석이다.
역시 최근 미국과의 현지 투자 프로젝트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최 회장은 애틀랜틱 카운슬 대담에서 "미국 정부는 핵심광물 11종을 확보하고, 고려아연은 성장과 미국 시장 진출 측면에서 '퀀텀 리프'를 하게 되는 호혜적인 결정"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지분 투자와 금융 지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고려아연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수익 기대감을 증폭시킨 셈이다.
국가 공급망 안보와 기업 수익이 서로 윈-윈하는 구조가 형성될 때 IEA의 공급망 가이드라인도 본격 파급효과를 낼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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