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화물터미널에 컨테이너들이 보관되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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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현지시각) 미국 외교 정책과 국제 관계에 초점을 맞춘 싱크탱크 외교협회(CFR)는 이번 판결로 트럼프 행정부가 입은 가장 뼈아픈 타격으로 ‘속도 상실’을 꼽았다. 류쭝위안 CFR 연구위원은 “경제 외교에서 위협이 작용하려면 그 효과를 신뢰할 수 있고 빠르며, 즉각적으로 피해가 확장되야 하는데,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 유연성을 축소했다”고 했다.
당장 오는 4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앞둔 백악관은 가장 강력한 무기를 하나 잃은 채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류 연구위원은 “중국 지도부가 이번 판결을 전술적 이점으로 간주할 것”이라며 “합의안 이행을 지연하는 전술을 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 측 경제 제재가 국제적으로 논란일 뿐 아니라, 미국 국내에서조차 불법이라는 명분을 얻어 선전을 강화할 발판을 마련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무효 판결 직후 궁여지책으로 빼든 무역법 122조 역시 현실과 맞지 않는 논리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킴벌리 클라우징과 모리스 옵스펠드 연구원은 이 조항을 발동하려면 미국이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 상태여야 하는데, 지금 미국 경제 구조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50년 넘게 달러화 환율을 시장에 맡기는 변동환율제를 유지해 왔다. 달러 가치가 오르내리면 수출과 수입 규모도 자연스럽게 조정된다. PIIE는 “과거처럼 환율을 고정해 두던 고정환율제 시절 위기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최근 달러 약세 역시 “외국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생긴 문제가 아니라, 관세를 수시로 바꾸는 정책 혼선과 연방준비제도를 향한 금리 인하 압박이 시장 불안을 키운 결과”라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존 사우어 법무장관(왼쪽)과 함께 2026년 2월 20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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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조가 지닌 ‘비차별성’은 나라 별로 협상해 온 백악관 발목을 잡는 또 다른 덫으로 꼽힌다. 이 법안은 전 세계 모든 국가에 일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개별 국가를 상대로 한 거래가 이전 일대일 협상 형태보다 훨씬 어렵다. PIIE 연구진은 “과거 고율 관세 위협에 짓눌려 억지로 합의를 맺었던 국가들이 이제 이행을 늦추거나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영국 정부는 이미 자국을 위한 특별 예외 조치를 받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
결국 150일짜리 122조 관세는 더 강력한 제재를 준비하기 위한 시간 벌기용 임시 가교에 불과하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CFR 제니퍼 힐만 선임연구원은 행정부가 이 기간을 활용해 불공정 무역을 겨냥한 301조와 국가 안보를 내세운 232조 조사를 광범위하게 밀어붙일 것으로 예측했다. 류쭝위안 연구위원은 1949년 이후 80여년 가까이 쓰인 적 없는 1930년 관세법 338조까지 부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역 전쟁이 즉흥적인 결투에서 벗어나 법적 테두리 안에서 치러지는 규제 시합으로 전문화되었을 뿐, 지정학적 경쟁과 산업 정책 충돌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은 조금도 잦아들지 않았다는 평가다.
사법부 철퇴는 미국 내 산업계에도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올 전망이다. 힐만 선임연구원은 헌법상 무효가 된 관세에 대해 수입업체들이 이자를 포함한 환급을 요구할 권리가 분명히 있다고 짚었다. 하지만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수입 신고를 최종 확정하기까지 통상 314일이 걸린다. 여기에 방대한 서류 작업이 몰리면 실제 환급까지는 극심한 행정 지연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PIIE 연구진은 “통상 정책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로비력이 뛰어난 대기업은 예외 조항을 챙기는 반면, 연줄이 없는 중소기업은 고스란히 비용을 떠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만들어졌다”고 비판했다.
경제 분야에서 핵심 권력을 잃은 대통령이 위기 돌파구를 미국이 아닌 바깥에서 찾을 것이란 불길한 관측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월터 러셀 미드 칼럼니스트는 “무역 권한 제한과 지지율 하락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이목을 붙잡아 둘 새 지렛대를 찾도록 자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선 돌리기를 위해 인위적으로 지정학적 위기를 고조시킬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란을 겨냥한 대대적인 군사 행동 가능성,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물리적 충돌, 쿠바 봉쇄를 뚫으려는 러시아 유조선 억류 등 미국 권력을 과시할 수 있는 돌발 변수가 상주하고 있다고 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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