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각) 영국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산하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는 당장 오는 4월부터 런던에서 승객 탑승 시범 서비스를 시작하고, 9월에는 본격적인 무인 로보택시 상업 운영에 돌입한다. 승차 공유 플랫폼 우버 역시 영국 현지 인공지능 스타트업과 손잡고 로보택시 시장 참전을 선언했다. 자본력과 데이터를 앞세운 빅테크 기업들이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무기로 런던 심장부를 겨냥한 셈이다.
전통적인 블랙캡 기사가 되는 과정은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하고 까다롭기로 악명 높다. 지원자는 평균 34개월 동안 스쿠터를 타고 런던 시내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다니며 길을 몸으로 익혀야 한다. 이들은 런던 중심부 채링 크로스 기점 반경 약 9.6km 내에 위치한 복잡한 도로 2만 5000개와 주요 명소 2만 개 위치를 전부 머릿속에 담는다. 공식 교재 블루북에 수록된 320개 주요 경로도 완벽하게 외워야 한다. 시험관이 임의로 출발지와 목적지를 부르면 지원자는 네비게이션(위성항법장치)이나 지도 도움 없이 즉석에서 가장 빠르고 합법적인 이동 경로를 설명해야 통과할 수 있다. 기출 문제 가운데는 런던의 유서 깊은 인디 밴드 공연장 위치는 정확히 어디인가 같은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문항이 수시로 등장한다. 엄청난 암기량과 엄격한 평가 탓에 이 시험 응시자 가운데 중도 포기율운 66%에 달한다.
이 같은 훈련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2000년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연구에 따르면 런던 택시 기사들의 공간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 부위는 일반인보다 평균적으로 더 크게 나타났다. 도시를 통째로 암기하는 심도 있는 사고 과정이 뇌 구조 자체를 바꾼 셈이다.
다만 이렇게 어려운 진입 장벽 탓에 런던 블랙캡 기사 숫자는 해마다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추세다. 런던교통공사 통계를 살펴보면 2014년 2만 5000명에 달하던 블랙캡 면허 보유 기사는 2026년 2월 기준 1만 6000명대까지 추락했다. 1975년 이후 50여년 만에 기록한 최저치다. 기존 블랙캡 기사들은 점차 고령화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힘든 시험을 견디며 새로 유입되는 청년층은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진입이 비교적 수월한 우버와 볼트 등 차량 호출 플랫폼 소속 사설 구역 개인 면허 기사 숫자는 10만 6000명을 넘어설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런던 정책 연구소인 센터포런던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신규 기사 유입 감소와 치열한 경쟁 상황이 맞물리면서 2045년이면 런던 도로에서 블랙캡이 완전히 멸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영국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 크리스마스 쇼핑객들이 블랙캡 택시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로보택시는 블랙캡 산업이 구조적 위기를 겪는 빈틈을 파고 들었다. 웨이모는 모회사 구글이 지원하는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런던 교통 박물관에서 최신 로보택시 차량을 대대적으로 선보이며 세를 과시했다. 영국 정부 역시 자율주행 차량 산업을 국가 핵심 미래 성장 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릴리언 그린우드 영국 교통부 장관은 “자율주행차가 영국 도로에서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승객 탑승 시범 서비스와 친혁신적인 규제를 통해 웨이모 및 기타 운영사를 지원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영국 정부는 2024년 자율주행차량법을 제정하고, 2027년 전면 시행을 앞두고 있다. 내년부터 런던을 포함한 영국 전역에서 완전 자율주행 로보택시 상업 운행이 전면 합법화된다. 우버 또한 향후 전 세계 15개 도시에 로보택시를 순차적으로 배치할 구체적 계획을 세웠다. 런던은 그 핵심 거점이다.
로보택시는 전문화된 기사가 모는 블랙캡이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를 단숨에 극복할 잠재력을 지녔다. 블랙캡이 인간 기사가 체득한 지식과 숙련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로보택시는 방대한 데이터 연산과 기계 학습 능력을 자유롭게 활용한다. 인공지능은 아무리 오랜 시간 운행해도 피로를 느끼지 않으며 졸음운전이나 음주운전을 할 위험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복이 따르는 인간 신체 기관과 달리, 성능이 일정한 고성능 레이저 센서와 다중 카메라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실시간으로 꼼꼼하게 파악하며 복잡한 도로 상황을 쉼 없이 학습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건비 부담이 사라지면 런던 시민들에게 기존 전통 택시보다 훨씬 저렴한 요금으로 여객 서비스를 제공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우버는 자율주행 차량 운영사들에게 전용 보험, 긴급 출동 서비스, 지도 데이터 수집 등을 하나로 묶어 제공하는 새로운 사업 부문까지 신설하며 거대한 로보택시 생태계 구축을 서두르는 중이다.
로보택시가 악명 높은 런던 시내 도로 주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면 상업용 인간 운전사 시대는 본격적인 쇠퇴 수순으로 접어든다. 블랙캡 기사들이 공식적으로 속한 해크니 캐리지(Hackney Carriage)라는 기업은 17세기 초반(1600년대) 런던에서는 귀족들이 쓰던 마차를 개조해 돈을 받고 승객을 태워주는 마차 영업으로 시작했다. 400년 업력을 가진 이들은 미국 로보택시 기술이 런던 특유의 기형적인 도로 환경을 결코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인공지능이 즉각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좁고 복잡한 뒷골목 주행이나 거동이 불편한 휠체어 이용 승객 탑승을 돕는 섬세한 서비스 영역에서는 여전히 인간 기사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스티븐 맥나마라 런던면허택시기사협회 사무총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웨이모가 주로 운행하던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피닉스와 달리 영국 런던 도로는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거미줄처럼 복잡한 구조”라며 “로보택시가 런던 도로망에서는 어떤 이점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진우 기자(ojo@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