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150조원. 전례 없는 규모의 정책금융 프로젝트 ‘국민성장펀드’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을 육성하고 침체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정부의 청사진은 웅장하다.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탈(VC) 업계 역시 오랜만에 내린 단비를 반기며 들썩이는 분위기다.
하지만 환호성 뒤편에서는 기대만큼이나 우려의 한숨도 흘러나오고 있다. 펀드 결성의 성패를 쥐고 있는 민간 자본시장의 현실과 정책 펀드의 설계 구조 사이에 깊은 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민간 자금 매칭’에 대한 부담이다. 국민성장펀드의 간접투자 자금 35조원 중 한국산업은행이 첨단산업기금으로 출자하는 금액은 약 7조5000억원이다. 나머지 27조5000억원은 고스란히 민간 자금으로 채워야 한다. 문제는 고금리 장기화와 금융권의 위험가중자산(RWA) 관리 강화 여파로 주요 기관투자자(LP)들의 지갑이 굳게 닫혀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재정을 활용한 후순위 보강 등 유인책을 확대하더라도, 한정된 LP 풀(pool) 때문에 운용사 간 치열한 쟁탈전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LP 네트워크가 탄탄한 대형 운용사만 자금을 싹쓸이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불 보듯 뻔하다. 더욱이 현재 추진 중인 출자사업은 펀딩 기한마저 연내로 못 박아두고 있다. 시간에 쫓긴 중소형 운용사들이 펀드 결성에 실패하고 향후 출자사업에서 페널티까지 떠안게 되는 촌극이 벌어질 우려가 크다.
국가 핵심 기술 육성을 명분으로 내건 ‘초장기기술투자펀드’를 두고서도 펀드 운용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하다. 이 펀드는 최대 20년에 달하는 초장기 만기를 요구하면서도 운용 보수율은 0.35% 수준으로 낮게 책정됐다. 10년 이상 핵심 인력을 묶어둬야 하는 운용사 입장에서, 이처럼 낮은 보수로는 우수 심사역의 이탈을 막을 도리가 없다. 여기에 하방 위험을 방어할 메자닌 투자는 사실상 배제한 채 상환권 없는 주식 투자를 강제한 점 역시 운용사들의 참여 의지를 꺾는 요인이다.
국민성장펀드가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유연한 제도 보완이 필수적이다. 경직된 정책 자금의 출자 비율을 탄력적으로 높여 운용사의 숨통을 틔워줘야 한다. 초장기펀드의 경우 운용역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보수 체계를 마련하고 중간 회수(세컨더리) 시장 연계 등을 통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공해야 한다.
정책 자금은 민간이 감히 뛰어들지 못하는 ‘시장 실패’의 영역, 즉 리스크가 큰 딥테크나 초기 기업에 깃발을 꽂을 때 가장 빛난다. 150조원이라는 숫자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돈이 흘러갈 ‘길’을 제대로 닦는 일이다. 국민성장펀드가 진정한 첨단산업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시장의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궤도를 수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김종용 기자(deep@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