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라 국제투자분쟁과장이 24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판결 선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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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배상해야 한다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 소송에서 승소했다. 중재 판정 취소 인용률이 3%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정부는 약 1600억원 규모의 국고 부담을 피하게 됐고, 소송 비용도 환수할 수 있게 됐다. 재판부가 ‘국민연금은 국가 기관이 아니다’라는 우리 정부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 결정적이었다.
조아라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장은 24일 정부과천청사 브리핑에서 “전날(23일) 중재 판정을 취소하는 데 성공했다”며 “환송 중재 절차가 남아 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승소를 통해 국민연금공단이 국가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국제법적으로 명확히 했다”며 “국민이 납부한 소중한 노후(자금)인 연금 보험료가 모여서 운용되는 국민연금기금이 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수사’ 계기… 엘리엇, ISDS 제기
엘리엇은 2015년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삼성물산 주주였다.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이뤄진 합병에 반대했다.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은 합병에 찬성했다.
엘리엇은 2018년 7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해 ISDS를 제기했다. 계기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였다. 당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청와대 등의 압박으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을 수사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됐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이 찬성 결정이 정부의 부당한 개입에 따른 것이라며, 이로 인해 1조원대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정부에 배상을 청구했다.
◇ 정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국가 조치 아냐”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중재판정부는 2023년 6월 20일 엘리엇 측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한국 정부에 약 690억원과 지연 이자를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정부는 산정 오류를 지적해 배상액을 593억원으로 낮췄으나, 지연 이자까지 합하면 약 160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같은 해 7월 18일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은 국가기관의 조치가 아니며 한미FTA상 ISDS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취지였다.
PCA가 관할권을 벗어난 판단을 했으므로 판정은 취소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한·미FTA가 예정하고 있지 않은 개념을 중재판정부가 인위적으로 도입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영국 법원은 2024년 8월 각하 판결했으나 정부는 불복했다. 영국 항소법원은 작년 7월 정부가 주장하는 취소 사유는 적법하다며 1심 판결을 깨고 1심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정부는 1심 환송심에서 사건을 중재 절차로 환송했다. 법무부는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기존 중재판정은 유지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을 상대로 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중재 판정의 영국 법원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것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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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11.1조 인정... “국민연금, 국가기관 아냐”
정부는 중재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위를 ‘당사국’에 의해 이뤄지는 행위로 제한한 한미 FTA 제11.1조(적용 범위)를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은 정부와 별개의 법인격을 보유했다 ▲공적연금기금 운용은 치안, 국방 등 국가의 핵심 기능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민연금공단의 일방적 의사 결정이 정부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다는 정부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기존 중재판정 중 국민연금이 국가 기관임을 전제로 한 판단 부분을 취소하는 데 성공했다. 조 과장은 “한미 FTA 제11.1조가 ‘관문 조항’으로 기능한다는 국제법 법리를 명확히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다만 환송심 재판부는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국민연금 의사 결정 과정에 개입한 행위는 한미 FTA 제11.1조의 ‘관련성 있는 조치’에 해당한다고 봤다. 국민연금은 국가 기관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청와대·보건복지부의 행위만으로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는지를 판단하는 사건이 중재 절차로 환송됐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전주 본사 전경 |
한편 정부는 지난해 11월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관련 ISDS 중재 판정 취소 소송에서도 승소했다. 당시 쟁점은 적법 절차(Due Process) 위반 여부였다. 정부가 참여하지 않은 국제상업회의소(ICC) 중재 판정을 근거로 삼은 것은 절차 위반이라는 정부 주장이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총 4000억원 규모의 배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됐다.
손덕호 기자(hueyduck@chosunbiz.com);이유경 기자(ly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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