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엘리엇과 ISDS서 1600억 배상 책임 취소 이끌어
"유사분쟁 예방·재정 위험 최소화 위해 시스템 정비해야"
조아라 국제투자분쟁과장이 24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판결 선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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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에서 ‘국민연금은 국가기관이 아니다’라는 중재지 영국 법원의 판단을 끌어내며 1600억원 배상 책임을 뒤집는 취소 결정을 끌어냈다. 다만 '패소를 면했다'는 결과를 넘어, 론스타와 엘리엇같은 해외 사모펀드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손쉽게 소송을 벌이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내부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4일 오전 법무부는 ‘엘리엇 ISDS 취소판결 선고 브리핑’을 열고 “23일 저녁 7시 30분 영국 1심 법원이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임을 전제로 정부의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 판정을 일부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재지인 영국 법원은 본안 쟁점이었던 ‘대한민국 정부의 행위와 엘리엇의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다시 판단하게 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법원은 △국민연금이 대한민국 정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조직인 점 △엘리엇이 주장하는 연금 징수 및 기금 운용은 치안과 같은 핵심적인 국가 기능으로 볼 수 없는 점 △국민연금의 일상적인 의사결정이 대한민국 정부에 완전히 종속되지 않는 점 등을 이번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
법무부는 “국민연금이라는 연결고리가 빠진 상태로 정부의 행위가 엘리엇의 손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 인과관계를 다시 판단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앞으로 이어질 환송 중재 절차에서 해당 인과관계가 전부 부정되면 정부 배상금은 0원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과거 삼성물산 주주였던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은 2015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을 문제 삼으며 2018년 정부를 ISDS에 제소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이 약 3:1로 삼성물산에 불리했는데도,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삼성물산 주요 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에게 찬성투표 압력을 행사하면서 엘리엇을 비롯한 삼성물산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2023년 6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약 16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정했지만, 한국 정부는 곧장 한미 FTA 내 조항을 근거로 들어 ‘관할권이 없는 사건을 PCA가 판정한 것’이라며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냈다. 사건의 쟁점을 따지기 전에 그 전제조건이 되는 '관할 적정성' 자체를 문제 삼으며 소송 진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영국 1심인 고등법원은 2024년 8월 '영국 중재법상 관할 문제에 관한 재판권은 없다'는 취지로 정부의 취소 소송 자체를 각하했지만, 2심인 항소법원은 정부가 근거로 삼은 한미FTA 11.1조가 중재법상 관할 문제의 전제로 해석될 수 있다며 2025년 7월 한국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여 사건을 다시 1심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법무부는 “중재 관련 소송에서 영국 법원의 취소 인용률은 3%인데 그 벽을 넘어선 성과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승소에도 불구하고 유사 분쟁을 예방하고 국가 재정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관련 시스템을 보다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2012년 론스타를 시작으로 2018년 엘리엇과 메이슨, 2021년 이란 다야니 가문 등 대형 해외 투자세력은 우리 정부를 상대로 지속적인 ISDS을 분쟁 사건을 접수하고 있다.
국제분쟁 사건을 다수 맡은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해외 펀드들은 국제분쟁 사건에서 주로 우리나라에서 작성된 국회 의사록, 재판 기록 등의 문서를 유리한 증거로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적인 관점에서 경제적인 사건을 이용하는 듯한 양상에서 벗어나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의 원칙을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론스타 사건 당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이 형사 재판에 기소됐고, 엘리엇 사건에서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관련 형사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 이런 사실관계가 국제분쟁에서 정부에 불리한 정황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오현석 계명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역시 "사모펀드가 막연히 나쁘다고 인식하기보다는 정상적인 투자 활동을 하는 주체로서 FTA 협정 조항을 근거로 ISDS에 제소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장기적으로 정부의 ISDS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외부 로펌에 의존하기보다 법무부 국제투자분쟁과 인력의 자체적인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도 전했다.
[이투데이/박꽃 기자 (pgot@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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