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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6 (목)

    시스템 경쟁의 시대, 한국은 어디에 설 것인가 [김형렬의 공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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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경제

    신장 톈산 산맥을 관통하는 ‘톈산 승리 터널(22.13㎞)’ 전경. 2025년 말 개통된 세계 최장급 고속도로 터널로, 해발 3,000m 이상 고산 환경에서 시공돼 산악 교통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한 인프라다. 보도에 따르면 이 구간의 산악 통행 시간은 종전 약 7시간에서 약 20분 수준으로 단축됐다고 한다. [사진: 뉴시스/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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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샤댐은 중국 후베이성 양쯔강에 건설된 설비용량 기준 세계 최대 수력발전소다. 1994년 착공해 2012년 전면 가동 체계를 갖췄다. 총 설비용량은 2,250만kW, 연간 발전량은 약 1,000억kWh에 달한다. 양쯔강 상류 약 180만㎢(남한의 약 18배)에 이르는 유역을 관리하며, 중·하류 4천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홍수 조절과 용수 공급 기능을 수행한다. [출처:Wikimedia Commons]



    역사를 돌아보면 강대국의 등장은 언제나 주변국의 선택지를 줄여 왔다. 로마 제국은 군사력보다 도로와 법, 수로라는 시스템으로 지중해 세계를 지배했고, 인접 국가들은 로마의 질서에 적응하거나 그에 따른 비용을 치러야 했다.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부상한 영국은 증기기관과 철도, 해상 교역망을 통해 유럽 각국의 산업 구조와 국가 전략을 재편했다. 20세기 이후 미국 역시 대량생산 체계와 기술 표준, 금융 질서를 통해 동맹국과 이웃 국가들의 산업 선택지를 바꿔 왔다. 강대국의 힘은 무기보다 먼저 시스템에서 나타난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 이 현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계획’을 발표한 이후 중앙·지방 정부 차원에서 AI를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가 2024년 7월 발간한 생성형 AI 특허 분석에 따르면, 2014~2023년 생성형 AI 특허 패밀리 기준 중국의 세계 점유율은 약 70%에 이른다. 이는 개별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라기보다, 국가 차원의 제도 설계와 재정 투입, 규제 조정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로 평가된다. AI는 제조와 물류, 금융, 스마트 도시 운영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중국 산업 구조의 기저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기술이 제도·재정·시장과 결합해 국가 단위의 학습 구조로 환류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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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5 차나칼레 대교는 튀르키예 다르다넬스 해협을 잇는 세계 최장 중앙경간 현수교다. DL이앤씨 및 SK에코플랜트가 참여한 국제 컨소시엄이 시공해 2022년 준공됐다. 중앙경간 2,023m는 공화국 수립 100주년(2023)을, 주탑 높이 318m는 1915년 3월 18일 차나칼레 해전 승리일을 상징한다. 고난도 구조 설계와 안전 신뢰 기반 인프라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 출처: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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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노이드 로봇과 산업용 로봇은 이러한 전략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분야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중국은 2024년 약 29만5000대의 산업용 로봇을 신규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전 세계 신규 설치량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 누적 가동 대수 역시 200만 대를 넘어 세계 최대 규모다. 이들 로봇은 자동차·전자 제조라인을 넘어 물류와 유통 자동화로까지 활용 범위를 넓히며, 중국 제조업의 자동화 수준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고 있다. 대규모 설치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축적되는 운영 데이터와 표준화 경험이 다시 다음 단계의 기술 도약을 촉진하는 순환 구조다.

    하드 인프라 분야에서는 ‘규모의 정치학’이 더욱 선명하다. 2025년 말 개통된 신장 톈산 산맥 관통 고속도로 터널은 총연장 22.13㎞로 세계 최장급 고속도로 터널이다. 평균 해발 3천m 이상의 고산 지형을 관통하는 이 터널은 산악 통행에 약 7시간이 걸리던 이동 시간을 약 20분 수준으로 단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자원 인프라에서도 중국은 총 발전용량 약 22,500MW, 저수량 약 393억㎥의 세계 최대 수력발전 시설인 산샤댐과, 남수북조(南水北調) 프로젝트를 통해 장강 수자원을 베이징·톈진 등 북부 주요 도시로 천 km 이상에 걸쳐 이송하며 국가 단위의 장기 운영 데이터를 축적해 왔다. 이들 사업은 단순한 토목 구조물이 아니라, 기술·운영·데이터가 결합된 장기적 학습 인프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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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행보는 종종 글로벌 주도권 확대 전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중국의 의도가 아니라, 그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압력이다. 중국은 기술·산업·인프라를 하나의 거대한 실험장으로 삼고, 일정 수준의 실패를 감수하면서 학습 속도와 성공 확률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해 왔다. 개별 프로젝트의 완성도보다 시스템 전체의 학습량이 우선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의 조건은 전혀 다르다. 한국은 초고층 건축, 장대 교량, 스마트 건설과 디지털 트윈 등 고난도 인프라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축적해 왔다.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와 튀르키예 1915 차나칼레 대교는 한국 건설·엔지니어링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기술적 완성도만 놓고 보면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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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다. 한국은 안전·공정·투명성을 중시하는 고도화된 규제 시스템을 갖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신뢰의 중요한 기반이다. 그러나 이 시스템은 신기술 실증과 융합 단계에서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공공 발주 시장 역시 검증된 공법과 기존 기준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새로운 기술이 충분히 시험될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 결과 기술적 잠재력에 비해 산업화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나타난다.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학습 구조가 제도적으로 연결되지 못한 결과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생존 전략은 분명해진다. 중국을 규모와 속도로 따라잡겠다는 전략은 한국의 조건에도, 구조에도 맞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한국이 어떤 경쟁에 들어가고 어떤 경쟁을 의도적으로 피할 것인가다. 한국은 스스로를 ‘고난도·고신뢰 인프라 솔루션 국가’로 재정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가장 많이 짓는 나라가 아니라, 가장 실패 확률을 낮추는 인프라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국가다.

    이를 위해 첫째, 규제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 규제는 차단 장치가 아니라 실패를 관리하며 축적하는 학습 장치가 되어야 한다. 규제 샌드박스를 예외적 특례가 아닌 기본 인프라로 전환하고, 공공 건설 발주를 신기술 검증을 위한 테스트 베드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이제 공공 건설은 단순한 비용 집행 수단이 아니라 국가 전략적 학습 플랫폼이 돼야 한다..

    둘째, 건설·AI·로봇·센서·에너지 운영 데이터를 통합하는 공공 데이터 레이크(Data Lake) 구축이 시급하다. 개별 프로젝트 단위의 디지털화만으로는 산업 생산성의 구조적 도약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의 데이터 축적과 표준화, 단계적 개방이 이뤄질 때 한국형 스마트 건설의 경쟁력도 비로소 완성된다.

    셋째, 해외 인프라 시장에서의 역할 전환이 필요하다. 단순 시공 중심을 넘어 운영·유지관리(O&M)와 디지털 플랫폼을 포함한 패키지형 진출 전략으로 이동해야 한다. 계획·설계·시공·운영 전 주기를 통합하는 모델만이 한국의 정확함과 신뢰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제도적 전환이 이뤄진다면, 한국의 인프라와 산업 생태계는 작동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 공공 건설 현장은 완공을 목표로 한 사업장이 아니라 신기술이 실제 조건 속에서 검증되고 데이터로 축적되는 국가 실험장이 된다. 실패는 은폐가 아닌 관리 가능한 비용으로 기록되고, 성공은 즉시 표준과 제도로 환류된다. 건설·로봇·AI·에너지 운영 데이터는 국가 단위로 축적돼 다음 세대 기술 설계를 견인한다. 해외 인프라 시장에서 한국은 더 이상 ‘잘 짓는 시공사’가 아니라 계획·설계·시공·운영·유지관리 전 주기를 책임지는 고신뢰 인프라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제 한국의 선택은 분명하다. 한국이 살아남는 길은 빠름이 아니라 정확함이다. 규모의 경쟁이 아니라 신뢰의 경쟁이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 전략은 선택의 문제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전략이다. 따라잡으려는 순간 경쟁의 좌표는 이미 잘못 설정된다. 기술은 이미 축적돼 있다. 한국은 속도가 아니라 신뢰로 경쟁하는 국가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역량을 국가 전략으로 묶어내는 제도적 결단이다. 그 결단을 미루는 순간, 경쟁의 좌표는 우리 밖에서 설정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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