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기능식품.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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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TV=이슬비기자] K-뷰티가 아마존을 점령하고 K-푸드가 10년 연속 수출 기록을 갈아치울 때, K-건강기능식품(건기식)은 여전히 셋방살이 신세다. 식품 산업에 속하고, 화장품처럼 ‘기능성’이라는 차별화를 앞세울 수 있는 분야임에도 K-콘텐츠가 만든 글로벌 파고에 끝내 올라타지 못했다.
글로벌 K-뷰티 시장 규모는 2024년 약 123조 원에 이르렀고, 2032년에는 216조 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K-푸드 역시 10년 연속 성장세를 이어가며 지난해 수출액 19조 원을 돌파했다. 식품과 화장품은 지난해 처음으로 한국 10대 수출 품목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은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이 희미하다. 2023년 기준 글로벌 보충제 시장 점유율은 미국이 34.8%로 압도적 1위이고, 중국·서유럽·일본 등이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는 '기타 아시아(3.9%)'로 묶일 정도로 비중이 작다.
국내 건기식 시장은 내수 매출이 수출의 10배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내수 시장은 2022년, 성장세가 꺾였다. 글로벌 확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과제가 됐다. 업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내수시장에 켜진 빨간불을 감지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여전히 대표주자급 K-건기식은 보이지 않는다.
기자는 그 원인을 ‘브랜딩 부재’ 이전에 ‘정체성 부재’에서 찾는다. K-뷰티는 ‘깨끗한 피부 표현’, K-푸드는 ‘건강하거나 맛있는 매운 맛’이라는 명확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반면 K-건기식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묻는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렵다. 정의 자체는 분명하다. 정부가 인체적용시험 등을 통해 기능성을 과학적으로 인정한 식품이 건강기능식품이다. 그러나 식품과 건강기능식품 사이를 가르는 '기능성'이라는 경계가, 실제 시장에서는 흐릿하다. 소비자교육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80% 가량은 일반식품과 건강기능식품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했다.
오인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응답은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 성분을 함유한 원료를 사용해서(27.8%)'였다. 현 제도가 이 혼선을 가중하고 있다. 기능성을 입증하지 않은 일반식품은 의약품 성분명을 제품명에 사용할 수 있지만, 정작 기능성을 입증해야 하는 건강기능식품은 의약품 성분을 활용할 수 없다. 최근 인기를 끈 멜라토닌, 알부민 제품 상당수는 실제 기능성이 검증되지 않은 일반식품이다. 소비자가 관심을 갖는 제품일수록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역설적인 구조인 셈이다. 이 상황에서 ‘기능성’을 정체성으로 삼아야 할 건기식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기능성에 대한 인지도를 확보하려면 '신뢰도'가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데, 현재 수출용 건강기능식품은 내수용과 달리 신뢰를 담보할 수 없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수출용 건기식은 건기식 인증 성분과 무관한 이름(의약품 성분 포함)을 제품명으로 사용할 수 있다. 비타민 B군으로 기능성 인증을 받아놓고, 제품명에는 ‘알부민’을 내세우는 식이다.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로 믿고 구매한 해외 소비자가 기대한 효과를 얻지 못한다면, 그 실망은 개별 기업이 아니라 K-건기식 전체의 신뢰 훼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 제품들이 면세점을 통해 국내로 역유입된다는 점도 문제를 키운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지금의 규제는 기능성을 보호하기보다, 기능성을 가장한 혼선을 방치하는 쪽에 가깝다. 정부가 고민해야 할 것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규제 재설계다. 차라리 의약품 성분 저농도 활용 권한을, 기능성을 입증한 건강기능식품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의약품 이름을 붙인 기능성 식품을 판매하고 있으므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재고해야 할 문제다. 물론 까다로운 안정성과 기능성 입증이 전제돼야 한다. 또 수출용 건강기능식품도 내수용과 마찬가지 기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기초 체력이 마련된 이후의 과제는 기업 몫이다. K-뷰티와 K-푸드가 걸어온 길을 참고할 수 있다. K-콘텐츠와 결합해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만들고, 인체적용시험이나 연구 결과를 시각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정신 건강, 피부, 수면처럼 글로벌 수요가 분명한 영역에서 K-건기식만의 언어를 만들어야 한다.
K-건기식이 못 큰 이유는 해외가 몰라서가 아니다. 한국 스스로 ‘기능성’을 무엇으로 정의할지 일관된 답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규제로 지켜야 할 것은 시장이 아니라 신뢰다. 이 선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K-건기식은 끝내 ‘성공하지 못한 K’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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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비 기자 drizzl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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