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남자 친구에 학대·성폭행 당해
피해자, 지속적 낙태 의사 밝혀
아르헨 정부 늑장 대응, 병원 합작...'제왕절개' 출산
병원, 낙태에 회의적 "태아 성장 위한 비타민 투여"
(사진=게티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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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8일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린 사건이 온라인을 달궜다. 흔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로 익숙한 아르헨티나에서 11세 여아가 강제로 제왕절개 출산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비극은 할머니와 함께 살던 루시아(가명·11세)가 할머니와 동거 중인 그의 남자 친구(65)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시작됐다. 물론 루시아는 본명이 아니며 당시 아동 신원 보호를 위해 쓰인 가명이다.
세 사람은 4년 전부터 같이 살았다고 한다. 부모의 불화로 이들이 친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불쌍한 손녀를 끔찍이 아꼈다. 하지만 루시아가 본인 남자친구에게 지속적으로 학대 당하고 성폭행 당해 임신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딸을 만나러 온 엄마가 “몸이 안 좋다”는 루시아 말에 아이를 병원에 데려갔다가 그가 임신 중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엄마의 신고로 범인은 빠르게 체포됐다. 바로 할머니의 남자친구. 그런데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 채 차일피일 시간이 흘러갔다. 바로 루시아 배 속의 아기를 지우는 일이었다.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는 낙태에 대해 굉장히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나라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일단 법률상으로 성폭행이나 임신부의 생명,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이유로 하는 경우는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루시아에게 좀처럼 낙태가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루시아가 입원해있던 병원이다. 병원 측은 처음부터 낙태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사진=Hospital Eva Pern 페이스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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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낙태에 굉장히 회의적이던 병원 측에서는 수술을 위한 행정 절차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루시아에 중절 수술을 해주지 않았다.
일단 엄마는 친권을 상실한 상태였고 할머니는 피의자인 그의 남자 친구와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법정 후견인 자격이 박탈됐다. 이에 둘 다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할 수 없으므로 수술해 줄 수 없다는 게 병원 측 입장이었다.
루시아 측 변호인에 따르면 병원 관계자들은 오히려 태아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 비타민제를 투여했다. 또 반(反) 낙태 주의자들을 병동에 들어오도록 해 루시아에게 “아기를 낳지 않으면 다시는 엄마가 될 수 없다”며 두려움을 조성했다.
변호인단은 응급 소송을 통해 루시아의 중절 수술을 진행하려 했지만 이번에는 의료진이 변수가 됐다. 루시아를 가까이서 돌보며 수술에 참여해야 했을 의료진들은 “11살 여자아이에게 아기를 낳게 한다는 건 양심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수술실 입장을 거부했다. 루시아를 위한 마음이었겠지만 당시 루시아에게는 그를 도와 줄 의료진이 필요했다.
루시아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낙태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받지 못하는 등 입씨름이 오가는 사이 5주라는 시간이 흐르며 어느새 임신 23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루시아는 그사이 두 번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고작 열한 살의 아이가 감당하기에 삶의 무게가 얼마나 버거웠을지 먼나라의 어른이지만 매우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결국 투쿠만주 보건 당국은 가정법원 측 결정을 따르라고 책임을 넘겼다.
이에 병원은 “더 이상 출산을 미루면 임신한 태아까지 위험해질 수 있고 낙태를 하면 산모의 목숨이 위험하다”며 외부 의사와 간호사를 불러 제왕절개를 강행했다. 아이러니한 건 병원은 결국 이 수술에 엄마나 할머니 등 누구의 동의 서류도 받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를 낳았다. 아기는 너무 미숙아였기 때문에 바로 중환자실 인큐베이터로 옮겨졌다. 그토록 출산을 밀어붙인 의료진은 사실상 아기가 생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봤다. 아기는 얼마 후 사망했다.
병원은 “가정법원이 ‘산모와 아기 둘 다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해라’”고 결정했기 때문에 수술을 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판결문을 확인한 결과 두 명의 생명을 구하라는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헌법재판소 앞에서 낙태 합법화 요구하는 시위대 (사진=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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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아 사건은 아르헨티나 낙태 합법화 논란에 불을 붙였다. 낙태 찬성론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녀는 어머니가 아니다(Girls, not mothers)’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시위를 확산했다.
길거리에는 시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가방에 흰색 리본이 그려진 초록색 손수건을 매달고 나왔다. 손수건에는 큼지막하게 “낙태, 법이 되어라!” “합법의, 무상의, 안전한 낙태”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인권 단체와 낙태 옹호 단체들은 소녀에게 일어난 일이 ‘고문’에 해당한다며 투쿠만주 보건 당국을 맹비난했다.
이 사건은 아르헨티나 낙태 정책 변화의 대표적 사례가 됐고 2020년 ‘임신 14주까지 낙태 합법화’를 이끌어내는 데 원동력이 됐다.
그러나 2023년 말 취임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하며 아르헨티나의 분위기는 또 달라졌다. 그는 강력한 낙태 반대론자로 낙태 합법화 폐지와 예산 삭감을 병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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