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는 관람용, 보행자는 가장자리로
면적 중심 공개공지 제도, 연속성 중심으로 바꿔야
신용산역 아무레퍼시픽 신사옥 전면부(사진=도시와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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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그 공간을 걸어보면 느낌은 사뭇 달라진다. 신용산역 인근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전면 공간처럼 겉으로는 광활하지만, 실제 보행 동선은 의외로 제한적이다. 잔디를 보호한다는 명목의 초록색 체인과 안내 표지, 각종 경계 장치는 이 공간이 자유로운 통과를 전제로 설계된 곳이 아님을 보여준다. 보행자는 넓은 잔디를 가로지르지 못한 채 가장자리의 보도블록을 따라 우회한다. 시각적으로는 열려 있으나 물리적으로는 닫힌 공간이다. 건축선은 후퇴했지만, 발걸음은 확장되지 못했다. 공간은 넓어졌으나 동선은 오히려 축소되었다.
도시 보행의 본질은 단순한 폭이 아니라 연속성에 있다. 목적지를 향해 직관적으로 이어지는 동선, 멈춤 없이 흐르는 발걸음이 도시 경험의 질을 결정한다. 건축선 후퇴로 확보된 전면 공간이 보행 네트워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실질적인 보행 환경 개선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출퇴근 시간이나 주말처럼 유동 인구가 몰릴 때 그 한계는 더욱 선명해진다. 실제로 걸을 수 있는 구간이 가장자리로 수렴되면서 보행 흐름에 병목이 발생한다. 넓은 잔디를 눈앞에 두고도 사람들은 비좁은 통로에서 서로를 피해 걸어야 한다. 시각적 쾌적함이 보행의 밀도를 감당하지 못해 발생하는 공간적 불일치이다.
잔디보호표지판 (사진=도시와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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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공지는 건축법에 근거한 제도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이 일반에게 개방된 공간을 확보하면 용적률 완화 등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다. 용적률이 상승하면 연면적이 늘어나고, 이는 임대 수익과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건축선 후퇴와 공개공지는 공공성과 경제성이 교환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그 대가로 제공되는 공간은 시민의 실질적 이용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관리 효율성과 경관 유지가 우선되고, 잔디는 관람의 대상이 되며, 보행자는 그 주변을 돌아가는 존재로 남는다.
뉴욕의 POPS(Privately Owned Public Space) 제도는 사유지 내 공공공간을 인정하되 의자 개수, 개방 시간, 접근성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핵심은 면적 확보가 아니라 실제 이용 가능성이다. 공간이 얼마나 넓은가보다 얼마나 자유롭게 접근하고 머물 수 있는가를 중시한다. 반면 국내는 여전히 면적 중심의 판단이 강하다. 건축선이 충분히 후퇴하고 잔디가 넓게 조성되어 있다면 형식적 요건은 충족된다. 그러나 그 공간이 시민의 일상적 동선과 연결되지 못한다면 기능적으로는 단절된 공백에 가깝다.
도시는 전시장이 아니다. 랜드마크의 위용을 감상하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이동과 만남이 축적되는 생활의 네트워크다. 건축선 후퇴로 만들어진 광활한 전면 공간이 단순한 장식적 완충지대에 머문다면, 우리는 보기 좋은 건물을 얻는 대신 걷기 좋은 도시를 잃을 수 있다.
얼마나 물러났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는가다. 공개공지의 평가는 면적이 아니라 보행 연속성과 통과 가능성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비워진 공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작동하는 동선을 설계할 때 비로소 랜드마크와 보행권은 공존할 수 있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사진=도시와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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