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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1 (일)

    "가성비 신화 끝났다"…경차 시장 축소의 구조적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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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가성비차이자 사회초년생의 첫차로 불리던 경차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 짙어진 SUV 선호 현상과 안전·편의 사양 확대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차를 선택할 이유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기아 모닝·레이와 현대차 캐스퍼 외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고, 수입차 역시 가격 장벽으로 시장 진입을 꺼리고 있어 경차 시장의 하락세는 앞으로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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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사진=이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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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경차 신차 등록 대수는 7만4600대로 전년 대비 24.8% 급감했다. 한 해 판매량이 7만대 수준까지 내려온 것은 최근 20년 내 처음이다. 2012년 20만대를 웃돌던 시장 규모는 10여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경차 부진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가격이다. 그동안 경차는 세단이나 SUV보다 확연히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경쟁력을 확보해왔지만, 최근에는 주요 트림 가격이 2000만원 안팎까지 올라 소비자들에게 '싼 차'라는 인식을 주기 어려워졌다. 일부 풀옵션 모델은 소형 SUV나 준중형 세단과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 소비자 입장에서는 더 넓은 공간과 안전성을 제공하는 차종으로 눈을 돌릴 유인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경차 가격 상승을 구조적으로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고 있다. 차체 강성 보강,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다중 에어백, 충돌 안전 규제 대응 등 안전 사양이 대폭 강화되면서 기본 원가가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디지털 계기판, 커넥티비티 기능 등 편의 사양이 기본화되며 차량 단가가 전반적으로 높아졌다. 경차 가격 상승은 제조사의 가격 정책이라기보다 안전 기준 강화와 소비자 요구 수준 변화가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다.

    생산 구조 역시 가격 인상 요인으로 지목된다. 경차는 전용 라인이 아닌 위탁 생산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아 생산 효율성이 떨어지고 물량 변동에 따른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다. 시장 규모 축소로 규모의 경제 효과가 약화된 점도 원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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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 EV [사진= 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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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차 수요 위축의 배경에는 'SUV 열풍'으로 재편된 시장 구조 변화도 자리하고 있다.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SUV 판매량은 87만4728대로 전년(81만4389대)보다 6만339대 늘며 7.4% 증가했다. SUV 판매 증가분만으로도 경차 연간 시장 규모에 육박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시장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용성과 안전성, 넓은 실내 공간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 확산 속에서 SUV는 패밀리카를 넘어 일상용 차량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반면 공간 활용성과 주행 성능에서 한계가 있는 경차는 소비자 선택지에서 밀려나는 모습이다. 가격 격차마저 크게 좁혀진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조금 더 보태 더 큰 차를 사는' 선택을 하고 있으며, 이는 경차 시장 축소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정적인 모델 선택지도 경차 시장 위축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경차는 현대자동차 캐스퍼와 기아 모닝·레이 등 3종에 불과하다. 2024년 쉐보레 스파크 단종 이후 시장은 사실상 현대차그룹 중심으로 재편됐으며, 당분간 뚜렷한 신차 출시 계획도 없어 소비자 선택 폭은 더욱 좁아질 전망이다.

    공급 확대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캐스퍼 EV는 차량 인도까지 최대 25개월, 가솔린 모델도 17~19개월의 대기 기간이 발생하고 있으며 레이 또한 수개월 대기가 이어지고 있다. 위탁 생산 체제 특성상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 물량을 신속히 확대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수입차의 진입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경차급 모델을 들여오더라도 물류비와 인증 비용, 환율 부담 등을 고려하면 국내 경차 가격대에 맞추기 어렵다"며 "현실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한된 모델 구성, 생산 확대의 제약, 대체 공급 부재가 맞물리면서 경차 시장은 반등 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중고차 업계는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지난해 중고차 시장에서 경차 판매량은 27만6751대로 신차 판매량의 약 4배에 달했다. 가격이 신차 대비 30~50% 수준에 형성되면서 실속을 중시하는 소비자 수요가 중고차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차 수요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더 저렴한 대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경차 시장 축소는 단순한 차종 선호 변화가 아니라 자동차 소비 기준과 산업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chanw@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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