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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5 (목)

    [김도훈의 엑스레이] [110] 하루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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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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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1990년대에는 “하루키를 좋아하세요?”가 작업 멘트 중 하나였다. 꼬실 때 쓰는 문구 말이다. X세대가 정말 그런 낯간지러운 멘트를 썼느냐고? 썼다. 자매품으로 “왕가위를 좋아하세요?”도 있었다. 돌아보니 둘 다 좀 낯 뜨겁다.

    요즘은 어떤 문구로 사람을 꾀는지 모르겠다. 큰 유행이 사라진 시대다. 한 작가가 유행한다고 모두 그의 작품을 읽는 시대는 끝났다. 책도 잘 안 읽는다. 연애도 잘 안 한다. 연애 못 하는 출판사 직원을 만날 때마다 듣는 한탄이다.

    “한강을 좋아하세요?”가 통하던 시기는 있었을 것이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받으면서 끝났다. 취향을 넘어 너무 유명해져 버린 탓이다. 여러분 서재에는 그가 노벨상을 받자마자 구매한 ‘소년이 온다’가 거의 배송받은 상태 그대로 놓여 있을 것이다. ‘이렇게 힘든 소설인 줄 몰랐어’라는 한탄의 먼지를 쓰고 있을 것이다.

    나는 하루키의 노벨상 수상을 고대해 왔다. 대학 시절 교수가 난데없이 “너희 하루키 좋아하지? 그놈 소설은 두부 같은 거야”라며 내 문학적 아이돌을 짓밟은 순간부터였다. 두부가 어때서. 나는 두부의 슴슴, 아니 표준말로 심심한 맛을 좋아한다. 좋은 두부는 양념을 쳐 전골을 끓일 이유도 없다. 하루키가 노벨상을 받는 날 교수 표정을 지난 30년간 상상해 왔다.

    하루키 최근작을 읽다 깨달았다. 교수에게 복수하는 날은 아마도 오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두부처럼 고소했다. 두부는 두부였다. 형식적 실험도 정치적 메시지도 심심했다. 스웨덴 꼰대들은 이렇게까지 목 넘김 좋은 작가를 선호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는 것이 있다. 세대별로 있다. X세대가 나이가 든다는 건 하루키가 여전히 좋긴 하지만 지금까지 낸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기는 힘들겠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물론 하루키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날이 온다면 이 글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뭐, 노벨상에도 개근상이라는 게 있다면 말이다.

    [김도훈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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