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05 (목)

    월가 덮친 ‘사모대출’ 공포… AI 쇼크에 한국 금융주도 ‘휘청’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장부상 수익률의 함정… 블랙스톤 환매 중단이 드러낸 ‘사모대출’의 민낯

    해외 사모대출 잔액 17조원 ‘육박’… 금감원도 긴급 리스크 점검 착수

    최근 들어 한국과 미국의 주요 금융주가 일제히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AI)발 공포와 미국의 사모 대출(은행이 아닌 회사가 투자자들에게서 돈을 모아 기업에 직접 대출하는 방식) 시장의 연쇄 부실 우려가 겹친 탓이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지정학적 갈등과 글로벌 대형 펀드의 환매 도미노 우려까지 맞물리자 결국 우리나라 금융 당국도 긴급 리스크 점검에 나섰다.

    조선일보

    FILE PHOTO: The company logo for Jefferies Financial Group Inc. is displayed on a screen on the floor of the New York Stock Exchange (NYSE) in New York, U.S., July 30, 2025. REUTERS/Jeenah Moon/File Photo/2026-02-28 00:57:24/<저작권자 ⓒ 1980-2026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월가 덮친 MFS 파산과 AI 쇼크

    미국 뉴욕 증시에서 글로벌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의 주가는 지난달 27일 9.31% 폭락했고, 지난 3일에도 2%가량 하락했다. 올해 초만 해도 60달러를 훌쩍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이 밖에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27%)와 웰스파고(-13%) 등 대형 금융주도 연초보다 크게 떨어졌다.

    이 같은 하락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달 말 수면 위로 떠오른 영국계 부동산 담보 대출 업체 ‘마켓파이낸셜솔루션스(MFS)’의 파산 사태다. 이 업체가 이중 담보 설정 등의 의혹 속에 무너지면서, 자금을 댄 월가 대형 금융사들이 거액을 떼일 위기에 처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바클레이스와 아폴로 등이 MFS에 20억파운드(약 3조9246억원) 이상의 대출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이른바 ‘AI 파괴론’도 악재로 작용했다. AI 기술 혁신이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수익성을 잠식해, 결국 관련 기업 대출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사모펀드들이 소유한 데이터 기업들이 AI의 위협으로 현금 흐름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로이터통신은 “무명에 가까운 MFS의 붕괴로 월가 대출 기관들이 큰 충격을 받았으며, 호황을 누리던 사모 신용 산업에 더 많은 ‘바퀴벌레(숨겨진 부실)’가 있다는 경고를 되살렸다”고 분석했다.

    조선일보

    블랙스톤 CI.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200조 사모 대출의 반란… 블랙스톤도 ‘회수 도미노’

    시장의 불안감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스톤의 대표 사모 대출 펀드인 ‘BCRED’의 환매 사태로 나타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BCRED에는 전체 자산의 7.9%에 달하는 환매(투자금 반환) 요청이 쏟아져, 펀드가 자체적으로 설정해 둔 분기별 환매 한도(5%)를 훌쩍 넘겼다. 환매 요청 액수는 총 38억달러(약 5조6000억원)에 이른다.

    이번 환매 사태는 규제에 빗겨난 상황에서 몸집을 불려 온 사모 대출 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모 대출은 비상장 기업에 자금을 대는 특성상 주식이나 공모 채권처럼 매일 시장 가격이 산출되지 않는다. 장부상으로는 자산 가치 하락이 즉각 반영되지 않아 수익률이 좋게 보이지만, 실상은 다를 수 있다. 고금리 장기화와 실적 악화가 겹치며 한계에 몰린 기업들의 채무 불이행 리스크가 위험 수위에 올랐다는 게 월가의 진단이다.

    이처럼 투자자들이 ‘장부상 착시’를 파악하고 펀드 수익률이 공식적으로 반 토막 나기 전에 앞다퉈 자금 회수에 나서는 ‘펀드런(대규모 환매)’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쏟아지는 환매 요구를 맞추기 위해 펀드들이 보유 자산을 헐값에 내다 파는 이른바 ‘파이어 세일(Fire Sale)’에 내몰릴 경우, 글로벌 사모 신용 시장 전체가 연쇄 부실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조선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금융주로 번진 악재… “폭탄 숨긴 지뢰밭”

    글로벌 매체와 전문가들도 이번 사태가 단발성 충격에 그치지 않고 사모 대출 시장 전반의 연쇄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전 핌코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일이 1조 8000억달러(약 2654조원) 규모의 글로벌 사모 신용 시장의 ‘탄광 속 카나리아(위험을 알리는 전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 역시 “사모 대출 시장은 폭탄을 숨긴 지뢰밭과 같다”고 지적했다.

    미국발 악재는 국내 증시로 전이되고 있다. 해외 사모대출 부실에 직접 노출되지는 않았으나, 글로벌 신용 시장의 위험 회피 심리가 우리나라 같은 신흥국 대형 금융주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이후 4일까지 8거래일 동안 코스피시장에서 KB금융(-18.4%), 신한지주(-12.9%), 하나금융지주(-19.6%), 우리금융지주(-22.1%) 등 국내 4대 금융지주는 모두 큰 폭으로 주저앉았다.

    ◇ 국내 증권사 판매 잔액 17조 돌파… 금감원 “리스크 고도화”

    우리나라 금융당국도 지난 4일 주요 증권사 임원들을 소집해 해외 사모대출펀드 관련 간담회를 개최했다. 금감원 집계에 따르면 국내 12개 주요 증권사가 해외 사모대출펀드를 판매한 잔액은 2023년 말 11조 8000억원에서 지난해 말에는 약 17조원으로 불어났다. 특히 개인 판매 잔액은 2023년 말 1154억원에서 작년 말 4797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금감원은 이 자리에서 해외 사모 대출 펀드의 3대 리스크로 △정보 불투명 △위험 과소평가 △국내 통제력 한계를 꼽았다. 사모 대출 특성상 유동성 리스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으며, 국내 증권사들이 주로 재간접 방식으로 투자해 위기 시 핵심 의사 결정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게 금융 당국의 지적이다.

    다만 증권업계는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며, 과도한 불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에 판매되는 해외 사모 대출 펀드는 기본적으로 높은 등급의 자산을 기초로 삼는다. 국내 신용평가사의 까다로운 평가를 한 차례 더 거쳐 등급 분류 후 설정된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감독 당국이 일정 등급 이상의 요건을 엄격하게 요구하고 있어, 해외에서 문제가 된 고위험 구조의 상품이 국내에 여과 없이 들어오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곽창렬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