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경제 위기 등 수급이 불안한 상황일 때 경유 가격은 휘발유보다 더 민감하게 움직인다. 경유는 화물, 선박, 건설 등 국가 경제 기반이 되는 산업 전반에 핵심 동력원으로 쓰여 사용량을 급격히 줄이는 게 어렵다. 반면 휘발유는 대부분 승용차 연료로 쓰여 운행량 통제로 수요를 조절하는 게 가능하다.
그래픽=정서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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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30분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856.30원, 경유는 1863.66원으로 집계됐다. 전국 주유소에서 평균적으로 경유가 휘발유보다 리터당 7.36원 비싸게 팔리고 있단 의미다.
국내 기름값은 싱가포르 현물시장의 국제제품가격(MOPS) 등을 반영해 매일 결정된다. 국제 휘발유 가격은 미국의 대이란 공습 전날인 지난달 27일 배럴당 79.63달러에서 이달 4일 99.66달러로 25.15% 상승했다. 같은 기간 국제 경유 가격은 배럴당 92.90달러에서 145.13달러로 56.22% 뛰었다.
원유에서 나오는 석유 제품의 비율은 정해져 있다. 경유와 같이 수요가 공급을 웃돌면 가격이 오르게 된다. 보통 원유 한 배럴을 정제하면 휘발유가 25%, 등·경유를 만드는 중간 유분이 35~40% 나온다. 정제 과정에서 휘발유를 안 만들고 경유만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경유는 주로 화물 트럭, 버스, 선박, 건설 장비, 발전기 등 산업 전반에 쓰인다. 전시 상황이 발생하면 탱크, 장갑차 등 군용 장비에 막대한 경유가 필요하다. 공급이 불안정해져도 사용량을 줄이기 어려운 특성이 경유 가격에 반영되는 셈이다.
최근 중동 국가는 원유만 파는 게 아니라 중간 유분을 직접 만들어 전 세계에 수출하는 핵심 공급 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중동 지역에서 등·경유를 만드는 중간 유분을 많이 수출하는데,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서 수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5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유류 가격이 표시돼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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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에도 국제 경유 가격이 폭등한 적이 있다. 러시아는 세계 3대 원유 생산국으로, 유럽은 경유의 60%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경제 제재로 경유 공급망이 막히자, 국제 경유 가격이 뛰었다. 국제 경유 가격은 러·우 전쟁 전 배럴당 90~100달러 선에서 움직였으나, 2022년 6월에는 180달러 선까지 폭등했다. 휘발유도 150달러 선까지 올랐다.
국제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배럴당 30달러 정도 비싸게 거래되면서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2022년 6월 당시 국내 주유소에서 거래되는 휘발유 가격은 2100~2140원, 경유는 2150~2160원이었다.
보통 국제 시장에선 경유가 휘발유보다 더 비싸게 거래된다. 수요 대비 정제 시설의 공급량이 적어 제품 가격이 높게 형성된다. 경유 정제 과정은 휘발유보다 훨씬 복잡하기 때문이다.
원유를 정제할 때 경유는 250~350℃ 구간에서 추출되며, 친환경 규제를 맞추기 위해 황 성분을 제거하는 고도의 수소화 정제 과정이 필요하다. 휘발유는 30~140℃의 낮은 온도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추출되는 편이다.
이와 달리 내수 시장에서는 유류세로 인해 경유가 휘발유보다 더 저렴하게 유통돼 왔다. 과거 1970~1980년대 휘발유는 사치품으로 여겨진 자동차의 연료로, 경유는 국가 경제 부흥에 필수인 산업용 연료로 인식됐다. 이에 정부는 휘발유에 붙는 세금을 경유보다 높게 책정했고, 현재도 이런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유류세는 휘발유가 리터당 763원, 경유는 523원이 붙는다. 유류세에는 교통에너지환경세·교육세·주행세 등 합산해 매겨진다. 특히 교통에너지환경세 차이가 크다. 석유는 337.5원, 휘발유는 492원으로 리터당 154.5원 차이가 난다. 이 격차로 인해 그간 주유소에선 경유 가격이 더 저렴했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는 “미국, 캐나다는 휘발유보다 탄소 배출량이 높은 경유에 더 많은 환경세를 매기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휘발유에 더 많은 환경세 성격의 세금이 붙는다”며 “과거 경제 성장기에 쓰이던 에너지 정책이 아직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인아 기자(inah@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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