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미국 국방부(전쟁부)가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5일(현지시각) 공식 지정했다. 앤트로픽과 국방부가 미군의 AI 사용 범위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앤트로픽을 “급진 좌파 기업”이라고 비판하며 퇴출을 결정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앤트로픽은 국방부와 협력하는 기업들과 거래가 제한될 위기에 처했다.
테크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앤트로픽의 기업 고객 기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AI를 살상무기에 사용해선 안된다”는 앤트로픽의 AI 윤리 기준이 일반 소비자를 중심으로 호응을 얻으면서 AI 모델 ‘클로드’ 사용자는 일주일 새 급증했지만, 앤트로픽 매출의 약 80%를 차지하는 기업 고객이 거래를 축소하거나 끊을 경우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은 소비자용 AI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경쟁사 오픈AI와 달리 기업 고객을 확보하면서 빠르게 성장해왔는데, 미 대기업 대부분이 국방부나 정부 기관에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이번 공급망 위험 기업 지정이 큰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앤트로픽에 따르면 국방부는 지난 4일(현지시각)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을 공식 통보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앤트로픽의 AI 도구가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통상 적대국 기업에 적용하는 조치를 내렸다고 설명했다. 또 “군이 핵심 기술의 합법적인 사용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민간 기업이 군 지휘 체계에 개입해 군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급망 위험 기업 지정이 내려지면 국방부와 계약을 맺은 모든 기업·기관은 군에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앤트로픽의 AI 모델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증해야 한다.
앤트로픽은 지난 6일 낸 입장문에서 “국방부가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한 것은 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번 사태는 앤트로픽과 국방부가 지난 한 달간 군용 AI 사용 범위를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불거졌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는 자사 AI 기술이 ‘미국인의 대규모 감시’나 ‘인간 개입 없이도 작동하는 완전 자율형 살상 무기’에 활용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반면, 국방부는 “미군이 합법적인 모든 목적으로 AI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급망 위험 기업 지정은 향후 앤트로픽의 실적과 상장 계획에 변수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앤트로픽은 지난 1~2월 새로운 AI 모델과 도구를 출시할 때마다 업계와 증시를 뒤흔들 정도의 파급력을 보였다. AI 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서비스형 소프트웨어+종말)’ 전망도 앤트로픽이 AI 에이전트 ‘클로드 코워크’를 출시한 이후 등장했다. 앤트로픽은 이같은 영향력과 기업 시장에서의 우위를 기반으로 기업가치를 3800억달러(약 561조3360억원)로 끌어올렸다. 연간 매출은 200억달러(약 29조5680억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회사는 연내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매출 증대와 자금 조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예상 밖의 정책 리스크에 직면해 불확실성이 커졌다. 트럼프 행정부의 눈 밖에 났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신규 고객 확보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앤트로픽은 연간 약 30억달러(약 4조4000억원)의 현금을 소진하고 있어, 만약 정부와 계약을 맺은 기업과의 거래가 중단되면 경쟁사인 오픈AI보다 견고한 사업 모델을 갖춘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일부 방산 기업은 앤트로픽 퇴출에 돌입했다. 록히드마틴은 국방부의 지시에 따라 앤트로픽의 ‘클로드’ 사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WSJ는 “이번 지정은 아마존, 알파벳의 구글 등 앤트로픽과 협력 중이거나 투자한 기업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앤트로픽은 “공급망 위험 기업 지정은 우리 고객사 대다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며 우려를 일축했다. 앤트로픽은 해당 지정의 적용 범위가 기업이 국방부 계약 업무에 직접적으로 클로드를 사용한 경우로 제한된다고 강조했다. 아모데이 CEO는 “공급망 위험 기업 지정의 목적은 미국의 공급망을 보호하기 위함이지, 공급업체를 처벌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며 “국방부와 계약을 맺은 기업이 국방부 계약과 무관한 사업에서 클로드를 사용하는 것까지 막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는 국방부에 공급하는 제품을 제외한 고객용 제품에는 클로드를 포함한 앤트로픽의 AI 기술을 계속 탑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렌 칸 조지타운대 안보·신기술센터(CSET) 선임 연구원은 “앤트로픽의 AI는 우수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이를 군 작전에서 제거하는 과정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앤트로픽의 퇴출을 발표한 이후 이란 공습에서 클로드를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미군은 공습 첫 24시간 동안 1000여개의 표적을 타격하기 위해 팔란티어가 개발한 AI 기반 군사정보 플랫폼인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해당 시스템에는 앤트로픽의 클로드가 탑재됐다. 팔란티어의 경우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에 내장된 클로드를 다른 AI 모델로 대체하고 소프트웨어 일부를 재구축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작업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자국 기업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업계에서 “과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에 반기를 든 기업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려는 ‘본보기식 조치’라고 보고, 이로 인해 기업들이 정부와의 협력을 꺼리게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커스틴 질리브랜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정부와 타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국 기업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중국에서나 볼 법한 일이지 미국에서 기대하는 모습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오픈AI에서 연구 부문 부사장을 지냈던 아모데이 CEO는 “오픈AI가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있다”면서 회사를 떠나 여동생 다니엘라 아모데이와 함께 2021년 앤트로픽을 공동 창업했다. 앤트로픽은 AI 업계에서 드물게 AI 안정성과 윤리를 강조해온 기업으로 꼽힌다. 다리오 CEO는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앤트로픽 퇴출을 결정한 것에 대해 “정치적 보복”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행정부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기부하지 않았고 독재자식 찬사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