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자료 외면하고 입맛 맞는 수치만 골라낸 업계의 자의적 반박
연구개발비 뒤에 숨은 기형적 마케팅 구조와 고가 복제약 현실
제약업계 실적 상승(PG) |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최근 정부의 약값 인하 정책을 둘러싼 보건당국과 제약업계의 갈등이 통계 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 6일 연합뉴스의 기획보도 내용(2026년 3월 6일)을 설명하는 보도 참조자료를 통해 업계의 수익성이 과장됐다며 반박에 나섰지만, 그 근거로 제시된 수치들은 공인된 공시 자료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산업의 미래를 담보로 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특정 집단에 유리한 숫자만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행태는 정책의 본질을 흐릴 뿐만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크다.
가장 먼저 짚어봐야 할 대목은 제약업계의 영업이익률이다. 협회는 자체 분석 자료를 근거로 약값 인하 정책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업들을 제외한 제약사 83곳의 영업이익률이 5.1%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의 사업보고서를 기반으로 분석한 공식 통계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공신력 있는 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외부감사 대상 법인기업 164개 제약사의 영업이익률은 16.5%로, 전체 제조업 평균인 5.1%보다 세 배 이상 높다. 업계가 정책 반대를 위해 모집단을 인위적으로 축소하고 자신들의 논리에 맞는 기업들만 선별해 통계를 가공했다는 의구심이 드는 지점이다.
판매관리비에 대한 해명 역시 논리적 허점이 뚜렷하다. 업계는 국내 회계 기준상 연구개발비가 판매관리비 항목에 포함돼 있어 겉보기에 마케팅 비용이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는 착시 현상이 발생한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연구개발비를 제외하더라도 우리나라 제약사의 판매관리비 비중은 여전히 기형적이다.
실제 분석 결과 국내 혁신형 제약기업의 매출 대비 판관비 비중은 31.8%이며, 연구개발비를 제외하더라도 28.0%에 달해 주요 다국적 제약사의 평균인 23.5%를 훨씬 상회한다.
여기에 장부상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영업대행사 수수료 등 비가격 경쟁에 투입되는 숨은 비용까지 고려하면 국민이 지불하는 약값의 상당 부분이 환자의 치료가 아닌 제약사들의 영업 전쟁을 위한 실탄으로 쓰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 복제약 가격이 국제적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다는 점이다. 2024년 미국 랜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제네릭 가격은 주요국 대비 1.5배에서 1.8배 높으며, 미국 약값을 100으로 기준 잡았을 때 한국은 190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 비교하면 우리 제네릭 가격은 무려 2.17배 수준이다.
이처럼 높은 약값은 동일 성분의 복제약이 수백 개씩 난립하는 기현상을 낳았다.
실제로 시장 규모가 1천억원 이상인 성분의 경우 성분당 품목 수가 평균 108.1개에 달해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10개 내외의 품목이면 충분하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와 큰 괴리를 보인다.
업계는 약값 인하가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공포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만, 과거의 데이터는 다른 사실을 말해준다.
2012년 대규모 약값 개편 당시에도 업계는 산업 붕괴를 경고했으나, 결과적으로 상위 10대 제약사의 연구개발 투자는 전년 대비 증가했으며 전체 제약산업 일자리 또한 연구직과 생산직을 중심으로 꾸준히 늘어났다. 낮은 약값 환경에서도 혁신적인 경영과 전략적 투자를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이스라엘의 테바나, 독일의 프레지니우스 카비의 사례는 우리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의 이번 약값 인하 정책은 단순히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는 차원을 넘어 제약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고육책이다. 안방에서의 과도한 영업 경쟁과 고가 복제약에 의존해 연명하는 낡은 구조를 혁파하고, 실질적인 연구개발 능력을 갖춘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제약업계는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가공된 숫자로 정책의 정당성을 흔들기보다는, 왜 우리 국민이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의 복제약 값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할 때다. 제약 강국을 향한 길은 자의적인 통계 해석이 아니라 뼈를 깎는 혁신과 투명한 경영에서 시작된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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