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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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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농 속 ‘염처리’된 시신…담배꽁초의 ‘립스틱’이 가리킨 범인은 여성이 아닌 남성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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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시리즈는 굵직한 사건현장을 누빈 베테랑 현장 기자인 유영규 기자의 생생한 경험과 법의학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범죄는 흔적은 남긴다’ 연재물의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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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7월 27일 오후 경남 창원의 한 오피스텔. 연일 이어지는 무더위보다 더 서늘한 공기가 방 안을 감돌고 있었다.

    “301호라꼬예? 벌써 다섯 번째 출동입니더.”

    경찰들의 목소리엔 짜증 섞인 피로감이 묻어났다. 이틀간 같은 신고로 네 차례나 현장을 찾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섯 번째 방문은 달랐다. 열쇠 수리공을 불러 강제로 문을 연 남동생의 비명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인근에서 소주방을 운영하던 A(당시 41세)씨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된 곳은 거실도, 침대 위도 아닌 안방의 ‘장롱 안’이었다.

    시신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상체는 이불에 덮여 있었고 양손은 잠옷으로, 발목은 팬티로 묶여 있었다. 더욱 소름 끼치는 것은 목에 칭칭 감긴 스타킹과 흰색 뜨개용 털실, 그리고 코와 귀를 막고 있는 둥근 휴지 뭉치였다. 마치 전통적인 ‘염(殮)’을 흉내 낸 듯한 이 기이한 처리는 베테랑 형사들조차 고개를 내젓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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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해 보이는 현장, 그리고 엇갈린 DNA

    사건 현장은 살인 현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돈되어 있었다.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고 싱크대에는 갓 식사를 마친 듯한 밥공기 두 개와 과일 접시가 놓여 있었다. 범인은 피해자와 함께 식사를 나눌 만큼 가까운 ‘면식범’일 가능성이 농후했다. 특히 시가 200만원 상당의 다이아몬드 반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은 단순 강도보다는 원한이나 우발적 살인에 무게를 싣게 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세 종류의 남성 DNA를 확보했다.

    시신을 덮고 있던 이불에서 나온 애인 B씨의 DNA, 쓰레기통 속 휴지에서 검출된 신원 미상의 DNA 그리고 결정적 단서인 ‘붉은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에서 나온 또 다른 남성의 DNA였다.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내연남 B씨였다. 그는 사실 시신을 최초로 목격하고도 자신의 불륜 사실이 탄로 날까 두려워 익명으로 신고만 반복하며 수사에 혼선을 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DNA가 이불에서 나오는 것은 연인 관계로서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무엇보다 사건 당일의 알리바이가 명확했다.

    수사는 미궁에 빠졌다. 경찰은 주변 인물 100여명을 저인망식으로 훑었지만 담배꽁초의 DNA와 일치하는 남성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립스틱은 여성의 것인데 DNA는 남성의 것’이라는 이 모순적인 증거는 수사팀을 혼란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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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전화가 가리킨 ‘목소리의 주인공’

    수사의 물꼬를 튼 것은 통신 수사였다. 피해자 A씨가 사망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는 마산의 한 지하상가 공중전화였다. 범인은 그 공중전화에서 A씨를 포함해 총 세 곳의 주점에 전화를 걸었다.

    형사들은 해당 주점들을 돌며 탐문 수사를 벌였다. 그러던 중 한 주점 주인으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진술을 확보했다.

    “여종업원 구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근데 목소리가 좀 이상했어요. 분명 여자처럼 말하는데 어딘가 굵직한 게... 남자 같았거든요.”

    순간 수사팀의 뇌리에 현장에서 발견된 ‘립스틱 묻은 담배꽁초’가 스쳐 지나갔다.

    “범인은 여장 남자, 즉 트랜스젠더일 수 있다!”

    이 가설이 세워지자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냉장고 생수병에서 발견된 쪽지문과 전국 트랜스젠더 관련 범죄 기록을 대조한 결과 제주도에서 선불금 사기로 수배 중이던 C(31)씨의 신원이 특정되었다. 그는 이미 8년 전부터 여성으로 살아온 인물이었다.

    ‘1’로 시작되는 주민번호 뒷자리

    사건 발생 52일 만인 2001년 9월 경찰은 부산의 한 카페에서 C씨를 검거했다. 검거 당시 그는 추적을 피하고자 머리를 짧게 깎고 스님 복장으로 변장한 상태였다.

    C씨의 자백으로 드러난 그날의 전말은 비극적이었다. 성전환 수술 후 사회적 편견에 부딪혀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그는 A씨의 소주방 구인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처음엔 분위기가 좋았다. A씨는 C씨를 친동생처럼 대하며 미역국에 밥까지 차려주었다.

    비극은 고용 계약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제시한 순간 시작됐다. 뒷자리가 ‘1’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본 A씨는 안색을 바꾸며 독설을 내뱉었다. “남자를 쓸 수는 없다. 당장 나가라.” 실랑이 끝에 돌아선 C씨의 등 뒤로 A씨의 마지막 한마디가 비수처럼 꽂혔다.

    “별 XXX 다 보겠네. 세상이 말세다 말세...”

    이 말에 이성을 잃은 C씨는 주방에 있던 과도로 A씨를 위협했고 결국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살해 후 그는 시신의 복부를 훼손하고 코와 귀를 휴지로 막았다. 후에 밝혀진 그 기이한 행동의 이유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피해자의 영혼이 빠져나가 나를 괴롭힐까 봐 두려워 구멍을 막았다”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C씨에게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어린 시절 겪은 사고로 인한 감정 조절 장애와 사회적 차별이라는 성장 배경이 참작되었으나 범행의 잔혹성과 엽기성을 덮을 수는 없었다.

    ‘창원 장롱 시신 유기 사건’은 과학 수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립스틱이 묻은 담배꽁초라는 사소한 흔적 속에서 남성의 DNA를 찾아내고 그것을 트랜스젠더라는 특수한 정체성과 연결 지은 수사팀의 통찰력이 없었다면 이 사건은 영구 미제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정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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