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운은 인왕산, 건강은 설악산, 시험은 대둔산
관악산 가면 운빨? 세조는 피부병에 자손 요절
출세를 하려거든 인왕산에 올라라 |
총명했던 광해군도 즉위하자 서쪽에 새 왕이 날까 두려워 파주 교하로 수도를 옮기려 했다. 수도 이전이 신하들의 반대로 틀어지자 승려 성지의 말에 따라 인왕산 아래에 경복궁보다 훨씬 큰 인경궁을 짓기로 하고 공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공사 도중에 새문동(현 서대문역 인근)에 왕기가 있다는 설이 나돌자 광해군은 그곳에 살던 이복동생 정원군의 집을 빼앗아 헐어버리고 경희궁을 세웠다.
정원군의 셋째 아들 능창군은 "왕기를 타고났다"고 의심해 역모죄를 뒤집어씌워 죽였다. 훗날 정원군의 장남 능양군이 삼촌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바로 인조다. 인왕산에 얽힌 서왕기 설이 적중한 셈이다.
◇ 남산 풍수는 재운, 남대문시장과 한남동에 돈 몰려
인왕산이 관운의 산이라면 남산은 재운이 서린 곳으로 유명하다. 남산은 조선 시대 나무가 빽빽이 들어찬 산이라는 뜻의 목멱산(木覓山)으로 불렸다.
태조 이성계는 남산의 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하고 제사를 지내도록 목멱신사를 세웠다. 목멱산은 왕궁과 한강을 잇는 요지에 자리 잡고 있어 자연스럽게 팔도의 사람과 물산이 모였다. 태종 시대에 이 일대에 형성된 시장이 오늘날의 남대문시장이다.
사람과 물자가 모이려면 물길이 있어야 한다. 풍수에서는 이를 수관재(水管財), 즉 물이 재물을 관장한다고 설명한다. 조선 시대 그 물길의 관문이 한강진, 지금의 한남동이다. 오늘날 이곳이 한국 최고 부촌으로 꼽히는 것도 어쩌면 이런 지세와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자식을 위해 비나이다" 팔공산 갓바위 앞 모심 |
◇ 팔공산 시험운 강해, 관봉 갓바위에 합격기원 인파
대구 팔공산과 대둔산은 시험운이 강한 산으로 거론된다. 특히 팔공산 관봉 정상의 '갓바위'가 단연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갓을 쓴 형상의 석조여래좌상은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전설로 유명해 수능 시즌이면 꼭두새벽부터 수험생과 가족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충남 금산과 전북 완주를 굽어보는 대둔산은 봉우리들이 붓끝처럼 솟은 문필봉(文筆峰)의 형세다. 대둔산의 문필봉은 학문과 시험 운을 상징하는 산세로 여겨져 과거시험을 앞둔 선비들이 합격의 기운을 받으러 자주 찾던 곳이었다.
◇ 건강이 최고라면 설악산에 가라, 생기와 양기 품어
건강과 치유의 산으로는 서울 수락산과 도봉산, 설악산이 꼽힌다. 풍수에서는 물을 생기(生氣), 바위를 양기(陽氣)로 보는데, 세 산 모두 물과 바위가 어우러져 있다. 풍수에선 이런 산은 기운이 왕성해 심신의 기혈을 깨우는 산으로 여긴다.
설악산의 울산바위가 대표적이다. 설악산은 산 정상의 거대한 화강암 바위와 깊은 계곡물이 내뿜는 활기(活氣) 때문에 치유와 참선을 하려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세상을 잠시 잊고 마음을 다스리려던 그들이 머문 자리가 백담사였다.
관악산이 길산? 역사를 보면 아닌데 |
◇ 풍수는 산세 해석, 역술인 한마디에 관악산 열풍
산의 기운을 출세, 제물, 시험, 건강으로 나누는 것은 전통 풍수의 정설이라기보다 풍수가와 역술가들이 산의 형세에 기대어 붙인 해석에 가깝다. 바위가 많고 산세가 험하면 '팔자를 고칠 산'이라 하고, 물이 맑고 숲이 깊으면 '병을 고칠 산'이라 하는 식이다.
그런데 최근 한 젊은 역술인이 "운을 바꾸려면 관악산에 오르라"고 말하면서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가 소원을 비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유감스럽지만, 풍수에서 관악산을 길산(吉山)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위가 많고 봉우리들이 불처럼 보이는 화형(火形)이라 기복이 심한 기가 센 산으로 보는 이가 대다수다.
◇ 관악산 비운의 역사, 세조 피부병에 죽고 자손 요절
역사를 돌아봐도 관악산은 슬픔과 어둠의 산이었다. 아버지 태종이 양녕대군을 폐세자하고 동생인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낙담한 차남 효령대군은 관악산에 들어가 예불로 여생을 보냈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이 된 세조도 업보를 씻고자 연주대에 올라 소원을 빌었지만, 돌아온 것은 번뇌와 아픔뿐이었다. 그는 불면증과 악몽, 피부병에 시달리다 고통 속에 죽었고, 장남(의경세자)과 차남(예종)은 요절하고 세손(인성대군)은 두 살도 안 돼 죽었다.
세조의 비참한 말년이 보여주듯 산이 운명을 바꿔줄 것으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역술가의 말을 믿고 팔자를 고치겠다며 험산을 오른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자리를 넘보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지만, 먹고살기 힘들어진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하면 마냥 탓할 일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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