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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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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가스라이팅이 아니다"…무기화된 심리학 용어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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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계 속 낙인찍기 위험성 경고…심리적 학대와 갈등 구별 지침서

    연합뉴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친구들은 우리의 경계를 침범하는 사람이 되었고, 파트너는 싸울 때마다 가스라이팅을 하다가 화해할 때는 러브 보밍(love bombing)을 퍼붓는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전 연인은 당연히 나르시시스트나 사이코패스, 아니면 둘 다였다!"

    커플 치료를 전문으로 해온 임상심리학자 이저벨 몰리는 신간 '그건 가스라이팅이 아니다'(글항아리)에서 과거 치료실 안에 머물던 심리학 용어가 일상 대화 속으로 거침없이 흘러들어와 어떻게 '무기화'되고 있는지 파헤친다.

    저자는 2021년 상담실에서 내담자들이 하나같이 전 연인을 '사이코패스'라고 진단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커플들이 자신 앞에서 심리학 용어를 들이대며 서로를 공격하거나 상대를 특정 장애로 몰아가면서 저자에게 맞는지 확인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상담에서 내담자가 주변 사람들을 진단하려는 시도는 늘 있었지만, 확고한 신념과 정당화된 분노를 품고 그렇게 하는 모습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사람들이 심리학 용어를 빌려와서 다른 사람에게 딱지를 붙이고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무기화된 심리학 용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소셜미디어의 확산, 정신 건강 정보 접근성 향상, 상담 경험의 대중화 등으로 이제 사람들은 정신 건강이나 심리학 용어에 익숙해졌다.

    문제는 자신과 타인의 평범한 감정적 문제나 관계의 어려움을 병리적인 것과 혼동하며 실제 관계 속에서 심리학 용어로 상대를 진단하고 단정 짓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용어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잘못 명명하거나 우리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그것들은 해결책보다는 문제를 더 많이 양산한다."

    저자는 이는 갈등과 그 해결 과정에서 불완전한 나와 상대를 이해하며 성장할 기회를 막고, 상대에게 깊은 상처와 불안을 남긴다고 지적한다.

    동시에 이러한 용어의 과용이나 오용은 '양치기 소년' 효과를 낳는다. 진짜로 심각한 위험이 있을 때 아무도 그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진짜 피해자의 목소리는 묻히고, 별것 아닌 일은 심각한 문제로 포장된다.

    "대부분 파트너나 친구들은 사이코패스도 나르시시스트도 학대자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결함을 지닌 존재일 뿐이다. 불안정하거나, 까다롭거나, 통제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그 외 수많은 형용사로 묘사될 수 있지만, 이러한 특성들 자체는 병리적이지 않다. 그들은 관계를 잘 꾸려나가려고 불완전하나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저자는 흔히 잘못 쓰는 아홉 가지 용어를 다루면서 무엇이 진짜 심리적 학대이고 무엇이 단순한 갈등인지 구별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가스라이팅'과 의견 차이가 어떻게 다른지, '나르시시스트'라고 불리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인지 그저 공감 표현이 부족하고 서툰 것뿐인지, 과한 애정으로 상대를 지배하려는 '러브 보밍'과 정상적인 구애의 차이가 무엇인지 등을 실제 사례와 함께 보여준다.

    "이런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두 가지 함정에 빠진다. 진짜 학대를 그냥 힘든 시기일 뿐이라며 넘기거나, 반대로 작은 실수도 못 참고 괜찮은 관계를 포기해버리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실수를 피하기 위해 상처받을 때마다 즉시 학대라고 외치는 대신, 진짜 위험한 상황은 경계하면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불완전함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균형감각을 가질 것을 조언한다.

    문가람 옮김. 408쪽.

    연합뉴스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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