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군함파견 요구에 국론 분열 우려
트럼프, 불참 국가 불이익 시사
美 무역법 301조 근거한 조사 진행
정부 “동맹 협력·국민보호 종합 고려”
군함 파견 시 교전 가능성 제기
‘이라크 파병 논쟁’ 재연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 구성과 관련해 7개국에 참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전날 한국·중국·일본·영국·프랑스 등 5개국에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구한 데 이어 하루 만에 참여 대상국을 더 늘린 것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트럼프, 불참 국가 불이익 가능성 시사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에서 워싱턴DC로 복귀하는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긍정적 반응을 보인 나라도 있고 관여를 꺼리는 나라도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국가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중국을 언급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석유의 90%를 들여온다”며 협력을 압박했다. 그는 또 이란 군사력이 크게 약화된 상황이 “다른 나라들이 참여하기 좋은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연합 전력이 구성되는 대로 작전이 곧바로 시작될 것”이라며 참여 여부를 지켜보겠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불참 국가에 대한 불이익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이란 간 대화 가능성에 대해 “아직 준비가 완전히 된 것 같지는 않다”고 언급하면서 이란 지도부 상당수가 사망해 협상 상대조차 불분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트럼프 행정부가 이르면 이번 주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 구성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라고 미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 정부에 적지 않은 외교·안보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요청과 관련해 “동맹 협력과 우리 국민 보호, 중동 정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중하게 검토하고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16일 “한미 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며 “한미 간 긴밀하게 연락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 파병 관련 보도를) 외신에서 나오는지 살펴보고 있는 중인데 정확한 진위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군함 파견이 단순한 해상 보호 임무를 넘어 사실상 군사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군함을 보내는 순간 교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고 그렇게 되면 사실상 참전 상황이 될 수 있다”며 “파병 여부는 국회 동의 등 절차적 논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 역시 “군함 파견은 단순한 외교적 메시지가 아니라 실제 군사적 의미를 갖는 조치”라며 “우리 군이 수행하게 될 임무의 성격과 교전 가능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밝혔다.
동맹 압박·통상 압박 동시에
군함 파견 문제는 국회 비준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헌법은 국군의 해외 파병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어 실제 파병이 추진될 경우 정치권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은 과거 해외 파병 문제를 둘러싸고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3년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이다. 당시 정부는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자이툰 부대를 이라크에 파병했지만 국회 비준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전국적으로 대규모 반대 시위가 이어지는 등 사회적 갈등이 장기간 지속됐다.
호르무즈 해협 문제 역시 이미 한 차례 국내 정치 논쟁을 겪은 사안이다. 2020년 정부가 소말리아 해역에서 해적 퇴치 임무를 수행하던 청해부대의 작전 반경을 호르무즈 해협 인근까지 확대했을 때도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미국 주도의 해상 연합 작전에 참여하는 것 아니냐는 논쟁이 제기됐다. 당시 정부는 공식 파병 대신 ‘작전 지역 확대’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자주통일평화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의 파병 요구를 규탄했다. 이들은 “미국은 유조선 호위와 해상 안전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동맹국들을 침략 전쟁의 돌격대로 내몰고 있다”며 “주권 국가로서 단호히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했다.
청해부대 39진 임무를 수행한 충무공이순신함이 아덴만 인근 해상에서 기동하고 있다. (사진=합참)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번 사안은 군사 문제에 더해 통상 압박까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2일 한국을 포함한 60개 경제주체를 대상으로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조사를 착수했다. 각국이 강제노동으로 생산된 상품의 수입을 충분히 금지하거나 집행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다. USTR은 하루 전에도 한국 등 16개국을 대상으로 제조업 과잉생산 문제와 관련한 별도의 301조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이틀 연속 301조 조사가 진행된 것이다.
최영진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요청에 대해 한국 정부는 군사적·전략적 타당성을 충분히 검토한 뒤 국익과 한미동맹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동맹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안보상 치명적 약점을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조치를 취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제승 한국국가전략연구원장은 “군사적으로는 현재 해군 전력 중 상당수가 호르무즈 해협의 고위험 환경에서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방어 능력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면서 “만일 우리 해군이 작전에 참여한다면 직접적 위협이 있는 해역보다는 연결된 인접지역서의 호송 지원 임무나 안전 확보 임무 등 제한적 역할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