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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3 (월)

    [fn광장] '패권국 미국'이 우리 國益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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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가 패도정치 하는 것 같지만
    미국은 자국의 세금과 자원 써가며
    전쟁과 테러 일으키는 국가를 향해
    강력한 군사력 투사, 세계경찰 역할
    우리는 패권국 소비시장 수출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어


    파이낸셜뉴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근 우리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국제정치 개념 중 하나가 패권이라는 단어다. 미국을 지칭할 때 글로벌 패권국이라 지칭하고, 미중 경쟁을 패권경쟁이라고 하며, 이란을 중동에서 패권을 노리는 국가로 묘사한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를 패도정치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들 표현 속에 나오는 패권이라는 말은 다 같은 단어지만 그 개념이 사용된 시대적 배경과 이론적 맥락이 다르다. 그래서 언론이나 지식인들이 시대와 이론적 배경 고려 없이 패권 개념을 막 사용하면 지금의 국제정치 현실에 맞지 않아 일반 시민에게 잘못된 국제정치관을 심을 수 있다. 패권 관련 가장 자주 발생하는 문제는 시대적 맥락이 매우 상이한 패권국들을 비교하는 일이다.

    예컨대 국제시장에서 분업과 최첨단 기술로 국가들이 연결되어 있는 현대 국제질서의 패권국을 사회경제적 맥락이 전혀 다른 춘추전국시대의 패권국과 동일하게 비교하게 되면 그 결과물은 국제정치 분석이 아닌 무협지 같은 소설이 나오게 된다. 분석이 소설이면, 처방도 소설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천하통일 패권국을 지금의 국제정치에 같은 개념으로 적용하면, 미국은 천하를 통일하려는 제국주의 패권국이다.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하든, 이란을 침공하든, 혹은 유럽의 지도자들에게 호통을 치든 이는 천하를 손에 넣으려는 패권국의 행태로 이해하게 된다. 당연히 이런 무협지적 패권국에 대해서 사람들은 경계심을 갖고 거리를 두려 할 것이며, 무도한 패권국의 힘은 약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패권국에 의한 패도정치가 물러가고 세계가 다극화되어야 공정한 국제질서가 수립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국의 힘이 약화되는 것을 반기겠지만, 이는 고대나 중세 중국 역사에나 나올 법한 언술이다.

    반면 국제정치학 이론에서 사용하는 패권 개념은 전혀 다르다. 국제질서가 영토전쟁 중심의 전근대적 질서에서 자본주의 시장 중심의 근대적 국제질서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패권국은 영토를 넓히는 제국이 아니라 국제 자본주의 시장질서를 규율하고, 조정하고, 제도를 만들고, 국제치안을 제공하는 근대적 의미의 초강대국이다. 국제질서에서 이러한 패권국의 역할을 국제정치학 이론으로 정립한 것이 바로 패권안정론(Theory of Hegemonic Stability)이다. 이 이론은 여러 줄기가 있지만, 핵심만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수많은 선도산업을 보유한 당대 최고의 시장 경쟁력을 가진 패권국가는 고부가가치 상품을 수출하고, 값싼 생필품을 수입하는 자유무역 국제질서가 자국 국익 달성에 가장 좋은 국제질서이다. 당연히 패권국은 강력한 하드파워나 소프트파워를 사용하여 다른 국가들에 이 질서를 강제하거나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그리고 자유무역 국제질서는 패권국에만 좋은 질서가 아니라 동참하는 다른 국가들도 자유무역 및 패권국의 소비시장에 수출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이루어 낼 수 있는 윈윈의 질서이기에 이 질서에서 패권국은 멀리할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적극 활용해야 할 시장이다.

    그런데 패권국가는 이 국제질서에서 그냥 거대한 시장으로 존재하기만 한다고 국제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질서 유지에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세계경찰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하여야 한다. 이러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패권의 부재 때문에 국가들이 단기적으로 중상주의적 통상정책을 채택해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유명한 킨들버거 트랩(Kindleberger Trap)이다. 그래서 패권국은 불공정무역이나 보호무역을 하지 못하도록 국가 간 합의를 끌어내어 이를 제도화해야 하며, 국제시장에 충격을 주는 전쟁과 테러의 위협이 있으면 강력한 군사력을 투사하여 세계경찰 역할을 해야 한다. 즉 질서의 안정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 국제질서의 패권국은 약화되어야 할 패도정치의 제국이 아니라 공공재를 적절히 제공하도록 협력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대통령의 직설적 화법 때문에 패도정치를 추구하는 제국으로 보일 수 있지만, 내용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다소 극단적이긴 하나 자국의 세금과 자원을 써가며 전쟁 및 테러를 일으키는 수정주의 국가를 통제·정상화하는 세계경찰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 국제질서의 패권국은 패도정치를 하는 전근대 제국이 아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에게는 패권이 사라진 혼동의 국제질서가 아니라 세계경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강한 미국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트럼프의 언어가 아니라 미국의 역할을 보아야 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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