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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4 (화)

    [현장의 시각] 선악 이분법에 매몰된 증시 정책… 디테일 빠진 ‘거여’의 입법 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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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비즈

    연선옥 기자.




    “주가 조작하면 패가망신”이라는 발언으로 시작된 정부와 여당의 증시 활성화 정책은 지수 반등의 강력한 트리거가 됐다. 이 대통령이 코스피 지수가 “조정다운 조정 없이 6000 중반까지 올라 매우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라고 토로할 정도다.

    한껏 고무된 정부와 여당은 팔을 걷어붙였다. 증시 활성화 정책은 점점 ‘속도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은 정부와 거대 여당은 증시 활성화 관련 법안을 처리하는 데 거침이 없다. 주가 조작에 활용된 원금도 몰수하겠다는 엄포가 나왔고, 소액 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려는 상법 개정안이 줄줄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상장사의 자사주는 의무 소각 대상이 됐고, 중복상장에 대한 규제도 조만간 한층 강화될 예정이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자본시장 관련 입법이 속도를 낼 수 있는 비결은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해진 선악(善惡) 구도 덕분이다. 주가 조작 세력과 소각 없는 자사주 매입, 쪼개기 상장 등 소액주주의 가치를 훼손해온 주체들이 시장 왜곡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반면 경영권 방어 수단을 요구하는 기업의 목소리는 주주 권익을 도외시하는 기득권의 저항으로 치부됐다.

    소액 주주 보호와 상장사의 잘못된 지배 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을 멈추자는 얘기가 아니다. 주주 자본주의로의 급격한 체제 전환이 기업의 경영 안정성과 장기 투자 재원 확보라는 또 다른 주주 가치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주주 환원에만 매몰되어 기업의 투자 동력을 꺾는다면, 이는 결국 주주 가치를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런 시각에서 상대를 절대 악을 규정하고 강력한 처벌에만 몰두하는 여당의 입법 성향은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불공정거래를 엄단해야 한다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처벌 위주의 정책은 시장 참여자들이 합법적인 거래조차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경영적 판단으로 이뤄지는 블록딜이나 주식 거래 등 일반적인 거래도 위축될 수밖에 없고 처벌 중심의 규제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자금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은 ‘절대 악’으로 규정된 소각하지 않는 자사주와 중복상장 역시 기업 나름의 경영 판단의 결과인 경우가 상당수다.

    지금 추진하는 정책의 최종 목표는 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우리 증시가 우상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이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당정의 입법이 포퓰리즘으로 이어지지 않고, 과도한 규제가 부작용을 낳지 않도록 정교하게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는 야당은 좀비화됐고, 관료들은 정책 설계 과정에서 전문성으로 여당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체질 개선은 거창한 입법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감시 기제가 작동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밸류업이라는 장기 과제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도록, 이제는 입법의 속도보다 정책의 밀도를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연선옥 기자(actor@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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