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여, 도시브랜드 자산 변모
도시 퀄리티, 국가 경쟁력 직결
공공기여, 이익 환수수단 머물러
美·日도 마케팅 도구로 활용
편집자주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7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습니다. 집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이자, 가장 가깝고 아늑한 곳입니다. 집에 묶여 살면서 집을 사고파는데 필요한 정보를 전해드립니다. 아시아경제는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과 함께 필요한 지식을 채워드리기 위해 3주에 한 번씩 [집테크]를 싣습니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이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방탄소년단(BTS)의 화려한 컴백 무대가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생중계됐다. 서울 한복판이 글로벌 문화 무대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자 K컬처라는 강력한 소프트웨어가 도시의 물리적 공간이라는 하드웨어와 결합할 때, 얼마나 경이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전 세계에 증명했다. 역사적인 무대를 가능하게 한 것은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뿐만이 아니었다. 수십만 인파를 수용할 수 있는 광화문 광장과 이를 에워싼 세종대로의 탄탄한 인프라가 배경이 됐다.
방탄소년단(BTS)의 'BTS 컴백 라이브: ARIRANG' 공연이 21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다. 아시아경제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목할 점은 광화문 광장 자체는 공공 예산으로 조성됐으나 광장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주변 오피스나 상업 빌딩의 가로 공간은 민간 개발 과정에서의 공공기여로 개방됐다는 사실이다. 담장을 허물고 녹지를 조성한 광화문 KT 빌딩의 사례처럼 민간의 기여가 공공의 광장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 된 것이다. 이제 공공기여는 단순한 개발 규제의 부산물이 아니라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결정짓는 전략적 자산으로 재정의돼야 한다.
대한민국 도시는 현재 저성장 기조와 급격한 인구 구조 변화라는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주택의 양적 공급과 도로·상하수도 같은 기초 기반시설 확충이 최우선 과제였다. 하지만 이제는 시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도시의 퀄리티가 곧 국가 경쟁력이다. 서울은 글로벌 K컬처를 선도하는 공간적 자산으로서 그 위상을 정립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정작 도시를 만들어가는 핵심 기제인 공공기여 제도는 이러한 변화를 발 빠르게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공공기여는 용적률 상향이라는 혜택의 대가로 도로·공원·공공청사 등 물리적 시설을 내놓는 일종의 이익 환수 수단에 머물러 왔다. 현장에서는 민간개발과 공공시설이 분리된 채 숙제처럼 기부채납이 이루어지다 보니, 이용도가 낮고 도시맥락과 단절된 공간들이 양산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사업자는 비용 절감을 위해 최저가 위주로 시공사를 선정하고, 공공은 관리 인력이 부족해 설계나 시공 과정의 디테일을 놓치기 쉽다. 결국 입주 시점에는 주민에게 외면받는 부실한 시설이 생겨난다. 지자체는 인구는 줄어드는데 관리해야 할 낙후 시설만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도시 경쟁력을 고민하는 글로벌 선진 도시에서는 이미 공공기여를 주변의 품격을 높이는 앵커 시설이자 강력한 마케팅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뉴욕의 허드슨 야즈 MTA 소유의 철도차량기지 상부 공중권 개발업자는 약 2억 달러를 투자해 공공 조형물 '더 베슬'과 광장을 조성했다. 개발지 내 공공 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한 것으로, 한국의 기부채납 방식과는 다소 다른 형태지만 민간 개발사가 대규모 공공시설에 자발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주변 오피스와 주거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본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는 초고층 복합 빌딩 저층부에 공립초등학교를 통합해 민간 개발과 공공 교육 인프라를 결합했다. 도시재개발 기여의 일환으로 공간을 제공한 이 방식은 도심 공동화 현상을 해결하고 직주근접의 완성도를 높였다. 프랑스 파리의 리인벤트 파리는 시유지 공모 방식으로 입찰 가격이 아닌 혁신적인 콘텐츠를 제안한 팀에 개발권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옥상 도심 농장이나 저소득층 공유 주방 같은 운영 중심의 공공 가치를 이끌어 내면서 공공성의 기준을 시설 면적이 아닌 콘텐츠와 운영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사례는 하드웨어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운영의 가치에 집중한 게 공통점이다.
우리도 이제 공공기여의 양이 아니라 질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우선 전문적인 건설관리(PM·CM) 시스템을 의무화해서 계획 단계부터 민간의 효율적인 시공 능력과 공공의 공익적 가치가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전문가 그룹이 품질을 통제해야 한다. 그래야만 공짜로 내놓는 시설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시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공간이 된다.
기여 방식도 유연하게 해야 한다. 천편일률적인 시설 기부에서 벗어나 지역 특성에 맞는 운영 서비스나 유지관리를 위한 기금 적립 등 소프트웨어 중심의 기여를 전폭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시설만 덩그러니 짓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을 채울 콘텐츠가 지속할 수 있게 작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전협상제의 내실화와 전문 조정자 양성도 필요하다. 지자체와 개발자가 산술적 계산을 넘어 해당 시설이 20년 뒤에도 지역의 가치를 지탱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도록 전문적인 조정자의 역할이 절실하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많은 건물을 짓느냐가 아니라 어떤 공간에서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성숙한 사회에 살고 있다. 사회 구조 변화에 발맞춘 공공기여 제도의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공공기여가 민간에는 사업의 품격을 높이는 기회가 되고 공공에는 지속 가능한 도시 운영의 마중물이 될 때, 서울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광화문 광장이 서울의 얼굴이 됐듯 우리 집 앞의 작은 공공기여 시설 하나가 도시의 미래를 바꾸는 시작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KB국민은행 스타자문단 김효선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