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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6 (목)

    [발언대]종묘, 600년 유산에 드리운 개발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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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 잃고 고립된 유산 전략

    후대에 물려줄 서울 생각해야

    아시아경제

    서울은 세계도시경쟁력지수 6위에 오른 글로벌 메트로폴리스다. 초고층 건물과 첨단 인프라가 도시의 외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지만, 서울을 세계적 도시로 만드는 진정한 힘은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역사에 있다. 전 세계인이 서울을 찾는 이유 역시 단순한 현대성 때문만은 아니다. 600년 조선의 시간이 현재의 도시와 공존하고 있다는 점, 바로 이 독특한 시간의 중층성이 서울의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그 중심에 종묘가 있다. 종묘는 조선 왕실의 사당이라는 기능을 넘어, 유교적 세계관과 자연 질서에 대한 인식이 공간으로 구현된 건축적 결정체다. 직선적 위계를 따르면서도 자연 지형에 순응한 배치는 인간과 자연, 조상과 후손을 하나의 질서 속에 놓으려는 사유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종묘는 단순한 유적을 넘어, 하나의 사상과 문명이 응축된 장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종묘의 가치는 담장 내부의 건축물에만 머물지 않는다. 북한산에서 응봉을 거쳐 종묘를 지나 남산으로 이어지는 공간적 흐름, 즉 거대한 지형적·시각적 축선이야말로 종묘를 온전히 이해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이 축선은 단순한 조망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적 질서이자, 조선 도시 공간 구조의 근간이다.

    유네스코가 1995년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며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당시 유네스코는 종묘의 조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층 건축물의 건설을 제한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는 단순한 권고를 넘어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 조건에 해당한다. 종묘 정전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시각적 통로를 지키는 일은 국제사회와의 약속이자 문화유산 보존의 최소한의 원칙이다.

    그럼에도 최근 종묘 주변을 포함한 도심 지역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고밀도 개발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헌법상 재산권 보호와 비례의 원칙을 근거로 들며 세계유산영향평가 제도를 과도한 규제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문화유산 보존 제도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세계유산영향평가는 행정기관이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무제한적 규제가 아니다. 해당 사업이 세계유산의 가치에 중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을 때에만 작동하는, 제한적이면서도 필수적인 보호 장치다. 개발을 전면적으로 억제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유산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합리적 균형을 도모하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종묘의 조망을 가로막는 고층 건물은 단순한 경관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수백 년에 걸쳐 형성된 공간 질서를 단절시키고, 문화유산의 의미 체계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다. 일시적인 개발 이익은 특정 집단에 귀속되지만, 훼손된 유산은 다시 회복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규제는 사익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공공의 손실을 예방하기 위한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다.

    해외 주요 도시들은 이미 이러한 원칙을 확고히 실천하고 있다. 프랑스는 파리 세느강변의 역사적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완충구역 확대를 적극 추진해 왔다. 영국 런던은 세인트폴 대성당의 돔이 도시 곳곳에서 보이도록 조망 회랑을 엄격히 관리하며, 개발 역시 이를 전제로 이루어진다. 이들 도시는 문화유산 경관 보존이 도시의 품격을 유지하고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서울 역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단기적 경제 이익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역사와 경관이 살아 있는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낼 것인가. 종묘 주변의 무분별한 고층 개발은 단순한 도시계획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이 어떤 도시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종묘가 빌딩 숲에 둘러싸여 맥락을 잃은 '고립된 유산'으로 전락한다면, 이는 단순한 경관 훼손을 넘어 도시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반대로 종묘의 조망선과 경관 축을 온전히 지켜낸다면,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계적 도시로서 더욱 독보적인 위치를 확보할 수 있다.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은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미래 도시의 가치를 설계하는 일이자, 다음 세대에게 어떤 도시를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책임 있는 선택이다. 국가유산청과 서울시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엄정하고 투명하게 시행해야 한다.

    종묘의 경관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을 넘어 인류가 함께 향유해야 할 공동의 자산이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600년의 세월을 품은 이 공간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신웅주 조선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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