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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5 (수)

    기생부터 공주·식모까지…한국사 속 숨은 여성의 목소리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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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진 여성 사학자 7명, '역사 속 여자, ○○하다' 시리즈 선보여

    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남성 중심으로 기록된 역사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지만, 이미 쓰인 역사에 새로운 관점을 부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다. 과거 절대다수의 여성이 문맹이었던 탓에 여성사마저도 상류층 남성과 가부장적 국가가 작성한 사료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출판사 푸른역사가 '역사 속 여자, ○○하다'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4권의 시리즈는 '여성사가 한국사를 보는 관점과 방법으로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가'라는 문제 의식을 공유한 신진 여성 사학자 7명이 합심해 선보인 책이다.

    저자들은 사료 속에 몇 줄, 길어야 몇 쪽으로 담긴 여성들의 기록을 섬세하게 추적해 그동안 역사의 전면에 선 적 없던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되살렸다. 사료의 공백을 저자들이 일부 메워 넣는 '허구적 재구성'을 통해 이야기에 생생함을 더했다.

    1권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장지연·윤민경 지음)에선 고려시대 절부(節婦) 조씨와 조선 숙종 무렵 함흥 기생 가련의 삶을 복원했다.

    조씨는 고려 문관 이곡(1298∼1351)의 문집 '가정집'(稼亭集) 속 '절부 조씨전'의 주인공으로, 몽골과의 전란 속에 아버지, 시아버지, 남편을 차례로 잃고 홀몸으로 자녀와 손주까지 키워 낸 인물이다. 저자는 조씨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사회상을 그리면서 '절부 조씨전' 텍스트 너머에 있는 기록자 이곡의 개인적 욕망까지 읽어낸다.

    가련의 이야기도 조선 남성 문인들의 손으로 기록돼 전해졌다. 저자는 이건창(1852∼1898)의 '가련전'을 중심으로 가련의 삶을 되살리면서 남성의 글로나마 자신이 기억되길 열망했던 가련의 숨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연합뉴스

    2권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황향주·이민정·한보람 지음)에선 고려 의종의 둘째 딸 안정궁주, 조선 후기 인조의 후궁 조 귀인, 그리고 남편을 따라 자결한 함양 박씨와 덴동어미 등을 다뤘다.

    3권 '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윤민경·항보람 지음)의 주인공들은 '참지 않는' 여성들이다. 가문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변절한 손자와 절연한 조선 남인 명문가 출신 장씨 부인 등 주어진 역할에 안주하지 않은 여성들이 그려진다.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전 남편을 절굿공이로 때려 죽인 여성 등 19세기 말 20세기 초 재판기록 '사법품보'에 담긴 여성 범죄자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마지막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이아리·권혁은 지음)에선 근현대로 넘어와 노동시장에서 고군분투한 여성들을 그려낸다.

    일제시대 이후 '행랑어멈', '오모니', '하녀' 등으로 불리며 가계를 부양해온 식모들과 남성 위주 일터에서 생존해야 했던 '커리어 우먼'들의 이야기를 과거 언론 기사 등을 통해 조명한다.

    장지연 대전대 교수는 기획의 변에서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 가운데 한국사라는 거대서사에 기록될 만한 이들은 없다"며 "지금도 그렇듯 과거의 여성들도 이만큼 다양했다는 점, 다양한 시대와 사회적 조건 속에서 그들 모두가 각자의 꿍꿍이를 가지고 자기 나름의 전략을 구사하며 열심히 살았다는 점을 보여 주려는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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