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청소년해양센터.(영덕군 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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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국제뉴스) 김충남 기자 = 경북 영덕군의 바다는 여전히 푸르다. 그러나 1년 전 이곳을 덮쳤던 불길은 그 바다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산은 검게 타버렸고, 집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그리고 남겨진 것은 막막함이었다.
(사진=국립청소년해양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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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누군가는 체육관 바닥에서 밤을 보냈고, 누군가는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필요했던 것은 거창한 복구 계획이 아니라, '오늘을 버틸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때 문을 연 곳이 있었다. 바로 국립청소년해양센터였다. 산불 발생 사흘 뒤, 해양센터는 청소년들의 웃음소리로 채워지던 공간을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거처로 바꿨다. 예약돼 있던 일정들은 하나둘 취소됐고, 비워진 방에는 낯선 짐과 사람들의 한숨이 채워졌다.
"괜찮습니다. 여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은 삶이 무너진 사람들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첫 문장이었다.
국립청소년해양센터의 하루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체험 프로그램 대신 식사가 준비됐고, 교육 일정 대신 생활이 이어졌다. 직원들은 운영자가 아니라 '이웃'이 됐다.
특히 식탁은 단순한 끼니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해양센터는 급식에 지역 식자재를 사용했고, 지역 업체들과 협력했다. 누군가의 일상이 무너졌을 때, 또 다른 누군가의 생계도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3개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이곳은 '시설'이 아닌 '마을'이 됐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하나둘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갔다. 임시거주시설의 불은 꺼졌지만, 해양센터의 역할은 그때 끝나지 않았다. 몇 달 뒤, 다시 연락이 닿았다. "잘 지내고 계십니까." 그 인사는 단순한 안부가 아니었다. 잊지 않고 있다는 신호였고,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는 약속이었다.
(사진제공=국립청소년해양센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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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겨울, 해양센터에는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이번에는 피난이 아니라 초대였다. '다시, 꽃 피우는 영덕'이라는 이름의 작은 음악회. 무대 위에서는 노래가 흘렀고, 객석에서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번졌다. 그날의 기억을 공유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여기 있었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기억이 있었다. 그 사이, 또 다른 변화도 있었다. 산불로 위축됐던 지역에는 조금씩 활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해양센터에는 다시 청소년들이 찾아왔고, 바다를 배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올해만 해도 7천 명이 넘는 청소년이 이곳을 다녀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 지역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였다.
국립청소년해양센터 조경래 원장 |
국립청소년해양센터 조경래 원장은 말한다. "재난은 그 순간보다, 그 이후가 더 길고 어렵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지난 1년의 시간이 담긴 문장이었다.
그래서 해양센터는 멈추지 않는다. 쌀을 나누고, 문화를 나누고, 시간을 나눈다.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분명하게.
공공기관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위기 때 문을 여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돌아간 뒤에도 불을 끄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답일지도 모른다.
영덕의 산은 아직 완전히 푸르지 않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로 새로운 싹이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 사람들의 일상도 다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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