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섭 (사)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장·항공교통학 박사 |
활주로를 눈앞에 둔 기장에게는 ‘골든 타임’이 있다. 이착륙의 결정적 순간, 판단이 몇 초만 늦어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지난 20여 년간 세계 주요 공항에서 수천 회에 이르는 이착륙을 수행하며 체득한 사실이다.
공항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투자의 적기를 놓치면 되돌리기는 불가능하다. 지금 인천국제공항이 바로 그 골든타임 앞에 서 있다. 최근 정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3개 기관의 통합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에 항공 현장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운영 효율화와 건설재원 마련이라는 명분은 이해한다. 그러나 2024년 국제여객과 화물 모두 세계 3위를 달성하며 글로벌 허브공항으로서 그 입지를 다져 가는 인천공항의 재원이 전국 15개 공항 중 11곳의 만성 적자 보전과 23조 원에 달하는 신공항 건설비로 분산된다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가 경제의 불균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필자가 자주 운항하는 경쟁 공항들의 행보는 매우 공격적이다. 싱가포르 창이, 중국 상하이 푸둥, 홍콩 첵랍콕 공항은 모두 연간 1억 명 이상 수용을 목표로 항공기 3대가 동시에 이착륙하는 활주로 체계를 앞다퉈 구축하고 있다.
반면 인천공항은 여전히 2대만 동시에 이착륙하는 체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공항 건설 특성상 설계부터 완공까지 8∼10년이 소요되므로 지금 이 시점의 결정을 그르치면 되돌리기 매우 어렵다. 적기 투자에 실패하면 노선 경쟁력이 약화돼 항공권 가격은 오르고, 직항이 줄어든다. 결국 우리 국민이 해외 여행을 할 때 중국이나 일본 공항을 경유해야 하는 불편이 늘어날 것은 자명하다.
이웃 일본의 사례는 뼈아픈 교훈이다. 1990년대 지방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국제선을 분산시키자 나리타 공항의 허브 기능이 급격히 약화됐고, 자국민마저 장거리 여행 시 인천공항에서 환승하는 허브 주권 상실의 수모를 겪었다. 일본의 전(前) 국토교통상이 “일본의 허브공항은 이미 인천이 차지하고 있다”고 자인한 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영국도 히스로 공항의 확장 지연으로 환승 수요가 두바이와 이스탄불 공항으로 이탈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등 두 나라 모두 뒤늦게 허브 재집중 전략으로 회귀했다는 교훈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세계 공항서비스평가 12년 연속 1위, 세계 최초 4년 연속 고객경험인증 최고 등급을 획득한 유일한 공항. 세계인이 인정하고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국민의 자부심. 화려한 수식어를 더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인천공항이 대한민국에서 갖는 상징적 의미는 분명하다. 올해 개항 25주년을 맞은 청년 인천공항의 더 높은 비상을 지원하고 견인해야 할 이 시점에 그 경쟁력의 날개를 우리 스스로 꺾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되지 않겠는가?
수만 피트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국경선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글로벌 네트워크뿐이다. 대한민국은 내수가 아니라 수출로 성장한 나라이고, 인천공항은 그 관문이다. 지방공항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인천공항이라는 관문공항의 심장이 건강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경쟁에서 한번 뒤처지면 회복은 매우 어렵다. 조종사로서, 대한민국 하늘길의 안전을 책임지는 한 사람으로서 충분한 공론화와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신중한 정책 결정을 간곡히 기대한다.
이충섭 (사)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장·항공교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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