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문학성·역사성 동시에 인정
노벨상 이어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받으며 '세계적 거장' 재입증
소설가 한강 |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한강은 역사적 비극이 남긴 인간 내면의 상처를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문장으로 그려내는 데 탁월한 한국 문학의 거장이다.
26일(현지시간) 전미비평가협회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s) 소설 부문을 한국 작가로는 처음 수상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영어제목 'We Do Not Part')는 제주 4·3의 상흔을 문학의 언어로 되살려낸 작품이다. 역사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호평을 받았다.
작별하지 않는다 |
◇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를 묻는 작품
2021년 문학동네에서 나온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인 주인공 경하와 그의 친구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인선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경하는 어느 날 사고를 당해 입원한 인선의 부탁을 받고 그의 제주도 빈집에 내려가게 된다.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가 환상 속에서 4·3 피해자인 인선 어머니의 아픈 과거사를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다.
한강은 단순히 비극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해야 했던 침묵과 상실, 그리고 끝나지 않은 애도의 시간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폭력에 훼손되고 공포에 짓눌려도 사랑과 애도의 감정을 끝까지 끌어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오롯이 드러낸 작품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룬 이 작품은 동시에 미학적 성취도 인정받았다.
역사의 비극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선연한 이미지와 유려하고 시적인 문장에 실려 압도적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4·3 다룬 한강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 책의 추천사에서 "작가가 소재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강은 하게 만든다. '5월 광주'에 이어 '제주 4·3'에도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이 있었다고 믿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만한 고통만이 진실에 이를 자격을 준다는 듯이, 고통에 도달하는 길은 고통뿐이라는 듯이. 재현의 윤리에 대한 가장 결연한 답변이 여기에 있다"고 추어올렸다.
한강이 2024년 노벨문학상을 받을 당시 한림원이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비중 있게 논평한 작품도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한강은 2024년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 강연에서도 이 작품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인선의 어머니인 정심이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 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질문을 던졌다.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노벨문학상에 앞서 한강은 이 작품으로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 문학상과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같은 작품으로 전미비평가협회상도 거머쥐면서 명실공히 세계적 거장임을 다시금 입증했다.
소설가 한강 |
◇ 시로 등단했다 소설로 방향 틀어…부커상 받으며 세계적 주목
한강은 1970년 11월 전라남도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익히 알려진 바대로 저명한 소설가 한승원이다. 이후 서울로 올라온 그는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그는 1993년 '문학과사회'에 다섯 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소설가로 데뷔한 것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다.
이후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작품은 2007년 창비에서 출간된 '채식주의자'다.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안긴 작품이다. 어린 시절 폭력의 트라우마로 육식을 거부하게 된 여자가 극단적인 채식을 하면서 나무가 되기를 꿈꾸며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주로 인간의 고독과 소외 등 개인의 내면을 탐구해온 한강은 2014년 펴낸 '소년이 온다'에서 역사적 사건을 다루며 작품 세계를 확장한다.
이 작품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다 죽음을 맞은 중학생과 주변 인물의 참혹한 운명을 그렸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제3세계의 특수성으로만 조명하지 않고, 역사적 배경을 넘어 인간 보편의 문제로 다루며 세계적 공감을 끌어냈다.
그리고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문학적 성취의 절정을 맞았다.
한강의 후속작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 그의 최근작은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산문집 '빛과 실'이다.
지난해 4월 나온 이 책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을 포함해 미발표 시와 산문, 정원 일기 등 총 12편의 글이 실렸다.
한강의 차기작인 '겨울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 언제 나올지도 관심사다.
다만 문학동네 관계자는 "원고를 기다리고 있다. 책이 언제쯤 나올지는 언급하기 어렵다"고 했다.
kihu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