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자궁경부 세포검사 민감도 50~70% 불과
국가검진 받고도 암 조기 발견 기회 놓치기도
WHO, 30세 이상 여성에 HPV DNA 검사 권고
일찍 발견할수록 자궁보존 가능한 치료 선택지 늘어
남아 지원 시작한 HPV 백신 접종 정책도 변화 필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년마다 돌아오는 자궁경부암 검진을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생리 기간이 아닌데 출혈이 생기더니 아랫배가 묵직하게 당기고 허리 통증까지 생겼습니다. ”
초등학생 자녀를 둔 워킹맘 서 모(45) 씨는 만 20세부터 국가에서 지원하는 자궁경부 세포검사(Pap smear)를 꼬박꼬박 챙겨 받았다. 다소 번거롭긴 해도 ‘이상 없다’는 결과지를 받으면 안심이 됐다. 생리 주기와 관계없이 하혈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일시적인 증상이라 여겼다. 소변을 볼 때 통증이 느껴지고 소변에 피가 섞여 나오는 혈뇨를 발견한 뒤에야 병원을 찾은 서 씨는 자궁경부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수십 년간 철석같이 믿었던 정상 소견은 암세포가 있는데도 잡아내지 못한 ‘위음성(가짜 정상)’이었다.
자궁경부암은 자궁의 입구인 자궁 경부에 발생하는 여성 생식기 암이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23년 국내에서 새롭게 발생한 28만 8613건의 암 가운데 자궁경부암은 1.1%(3144건)를 차지했다. 2001년 4655명의 환자가 발생해 위암, 폐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에 이어 다빈도 암 순위 6위였던 것과 비교하면 20여년 새 발생률이 급격히 줄었다. 2023년 기준 자궁경부암은 남녀를 통틀어 암 발생 순위 17위, 여성으로 한정하면 11위를 기록 중이다. 연령대별로는 40대가 22.8%로 가장 많았고 50대(22.6%), 60대(19.1%)가 근소한 차로 뒤를 이었다. 자궁경부암 감소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2002년부터 시행된 국가암검진 사업과 2016년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사업에 포함된 사람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이 꼽힌다.
자궁경부암은 99% 이상이 HPV 감염에 의해 발생한다. 대다수 암의 발병 원인이 명확히 밝혀져 있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오히려 페스타(흑사병)나 홍역 같은 감염병에 가깝다. 이러한 유사한 특성 덕분에 백신이 개발돼 있고, 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면 치료 경과도 좋다. 보건복지부 중앙암등록본부에 따르면 암이 자궁경부에만 국한되고 다른 부위로 퍼지지 않은 경우 5년 상대생존율은 94.5%로 폐암(81.5%)·간암(63.5%)·췌장암(47.8%)보다 월등히 높았다. 문제는 서 씨처럼 검진을 성실하게 받았음에도 골든타임을 놓치는 안타까운 사례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현재 만 20세 이상 여성에게 무료로 시행되는 자궁경부 세포검사의 민감도가 약 50~70%에 불과하다는 근본적인 한계에서 비롯된다. 병변이 있어도 정상으로 판정될 확률이 30~50%에 달하다 보니 일찍 암을 발견할 기회를 놓치기에 십상이다. 다수 연구에 따르면 자궁경부암 환자의 약 30~50%는 진단 3~5년 전 Pap 결과가 정상으로 보고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관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고대구로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국가검진을 규칙적으로 받으며 정상이란 결과만 믿고 있다가 진단이 한두 단계 늦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Pap 검사 단독 체계에서는 구조적으로 놓치는 환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마저도 수검률이 60% 초반대에 머물러 있어, 검진 사각지대가 넓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자궁경부의 정상 상피세포가 HPV 감염 이후 자궁경부 상피내암을 거쳐 침윤성 자궁경부암으로 발전하는 데는 수년에서 수십 년이 소요된다. 전암성 병변을 가급적 일찍 발견하는 게 자궁경부암 예방의 핵심이다. HPV 유전자(DNA) 검사를 활용하면 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비정상 세포를 일찍 발견해 치료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이 이사장은 “Pap 검사가 이미 변형이 일어난 세포를 결과로서 관찰하는 방식이라면 HPV 검사는 암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를 원인 단계에서 먼저 검출한다”며 “민감도가 90% 이상으로 세포검사보다 훨씬 정교해 이상 병변을 놓칠 확률이 월등히 낮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1년 40세 이상 여성의 1차 선별 검사로 Pap 검사 대신 HPV DNA 검사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호주·영국·네덜란드 등은 HPV 1차 검사를 국가 표준으로 채택했고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HPV 단독 또는 Pap 병용 전략을 운영 중이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20~30대 젊은 연령층에서 전암 병변이 늘고 있고 검진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국가검진 체계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HPV 검사를 본격적으로 도입하면 병기 분포가 앞당겨지면서 자궁을 보존하는 수술이나 최소침습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환자가 늘어나고, 방사선·항암치료 비율을 줄여 환자의 생식능력과 삶의 질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HPV 검사의 개별 단가가 기존 Pap 검사보다 비싼 편이지만 장기적으로 자궁경부암 발생과 치료 감소로 인한 의료비 및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를 고려하면 오히려 국가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Pap 결과가 정상이라도 성생활이 활발하거나 흡연·면역저하 등 고위험군은 전문가와 상의해 HPV 검사를 추가로 받아보는 것도 고려해볼 만 하다.
검진 체계 개선과 함께 전문가들이 자궁경부암 정복의 또 다른 축으로 강조하는 것은 HPV 백신 접종 확대다. HPV는 자궁경부암뿐 아니라 두경부암·항문암·구인두암 등 다양한 질환을 유발한다. 모성접촉을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남녀 누구에게나 감염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올해부터 만 12세 남아에게도 국가 차원의 HPV 백신 지원이 시작된 것은 의미 있는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다만 지원 대상이 HPV 16·18형 등 4가지 유형만을 예방하는 4가 백신에 한정돼 아쉽다는 반응이 많다. 이 이사장은 “9가 백신 도입과 접종 대상 확대는 20~30년 뒤의 암 발생률과 의료비 부담을 근본적으로 낮추는 투자”라며 “중장기적으로 9가 백신의 국가예방접종 도입, 접종 대상 연령 확대, 접종 기회를 놓친 미접종자에 대한 보완 접종 전략이 순차적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