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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7 (금)

    파시즘은 어떻게 독일을 장악했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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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 판타지 (클라우스 테벨라이트 지음, 글항아리 펴냄)

    서울경제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연합국 측으로부터 대대적인 군비 축소를 요구받고 수백만 명 규모의 군 병력은 10만 명 이하로 줄어든다. 하지만 독일 군부는 연합군의 감시를 피해 별도의 준(準) 군사집단을 조직했는데 당시 이를 ‘자유군단’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영국이나 프랑스 등 외국 압력에 저항하는 동시에 국내의 좌파 세력을 탄압하는 수단이 됐다. 무자비한 폭력성으로 ‘자유군단’은 해산됐지만 구성원들은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에 흡수됐다.

    20세기 새로운 극우 운동이자 파시즘, 또는 나치즘의 기원으로 부각된 자유군단에 대해 그동안 많은 분석이 이뤄졌다. 신간 ‘남성 판타지’는 이들에 대한 심리학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선행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77년 독일에서 첫 출간된 이후 이번에 50년 만에 국내에 소개됐다. 영어판이 1989년, 일본어판이 2005년에 나온 것에 비하면 한글판은 한참 늦은 셈이다.

    책은 독일의 젊은 학자 클라우스 테벨라이트(1942~ )가 자유군단 소속 군인 7명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벌인 결과를 집대성했다. 저자는 “이들이 남긴 자서전, 체험담, 이들을 다룬 소설 등을 토대로 언어와 행적을 추적해 의식·무의식 속에서 폭력적인 남성성과 파시즘의 기원을 파헤쳤다”고 말한다. 이 책이 문화비평과 남성성 연구, 정신분석학, 젠더 연구의 고전으로 꼽힌 배경이다.

    놀랍게도 저자의 아버지 역시 파시스트였다. 능력 있는 파시스트였고 인간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좋은 사람이 어떻게 파시스트가 될 수 있는지를, 그의 아들이 평생에 걸쳐 추적한 탐색과 고민의 흔적이 책에 담겼다.

    책이 앞선 연구와 다른 점은 파시즘을 단순한 정치 운동으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히틀러 등 위로부터 선동의 결과만으로는 파시즘을 설명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연구에 나섰다. 오히려 개개인의 내면으로부터 발현된 무언가에 주목했고, “살인을 통해 자기 생식과 자기 보존을 이루려는 강박이 파시스트 운동의 핵심”이라고 봤다. 이러한 강박을 만들어낸 심리적 기원을 파헤치기 위해서 파시스트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갖는 인식이나 여성과 맺는 관계에 주목했다. 저자는 군인들의 텍스트에서 여성과 관련한 언급에 담긴 “양면적인 정서”, 즉 “강렬한 관심과 냉정한 무관심, 공격성과 숭배, 증오, 공포, 소외와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부분에 흥미를 느껴 분석을 시작했다고 밝힌다. 이들은 여성을 ‘장한 어머니’나 ‘희생적인 간호사’와 같은 무해하고 순결한 이미지와 남성성을 위협하는 여전사나 창녀와 같은 이미지로 극명하게 나누고 이분법적인 환상을 갖는다. 남성을 거세하는 여성성에 대해 느끼는 공포, 그리고 자아의 파편화와 붕괴를 막기 위한 몸부림은 결국 폭력적인 파시즘으로 이어진다.

    반세기 전에 쓰였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극우 정치세력이 부상하고, 여성혐오 등을 기반으로 한 극단적인 폭력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통찰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6만 8000원.

    최수문 선임기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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