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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week&] 바다를 품은 동굴, 내가 알던 사이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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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쿠버다이빙 여행지로 각광

저비용 항공 취항 후 인기 급상승

다이빙 포인트마다 색다른 매력

태평양의 미국령 섬 사이판은 예로부터 유명한 가족 휴양지였다. 푸껫·발리 등 동남아시아 인기 휴양지보다 비행시간(4시간)이 짧은 데다 치안도 좋고, 웬만한 호텔에는 한국인 직원이 있어 영어 한마디 못해도 부담이 없다. 그래서 아이를 동반한 부모는 물론 할머니·할아버지에게도 인기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역동적인 해양 스포츠 천국으로 탈바꿈했다.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이들이 급증해서다.

한국인 다이버 한 해 7000명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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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에 있는 미국령 섬 사이판은 가족 휴양지인 동시에 스쿠버다이빙 명소이기도 하다. 바다가 맑아 시야가 좋고 독특한 지형을 감상할 수도 있다. 사진은 수중동굴 다이빙을 즐길 수 있는 그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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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을 포함한 북마리아나제도를 홍보하는 마리아나관광청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방문 목적이 ‘스쿠버다이빙’이라고 답한 한국인이 2013년 1734명에서 2016년 3853명으로 늘었다. 2017년 1~9월에만 5873명에 달했고, 연말까지 70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2016년까지는 ‘골프’가 더 많았지만 올해 골프의 인기를 넘어섰다.

다이버들이 사이판으로 몰려드는 건 저비용 항공 덕분이다. 2013년까지는 아시아나항공만 사이판을 오갔는데 2014년부터 제주항공·진에어·이스타항공·티웨이항공이 연달아 취항했다. 한국인 방문객은 2013년 14만 명에서 2016년 23만 명으로 늘었다. 2017년 1~9월 방문객은 이미 25만 명을 넘어섰다. 정종윤 마리아나관광청 한국사무소 차장은 “비용 부담이 낮아지면서 미식과 해양스포츠 등 체험을 즐기는 여행객이 확연히 늘었다”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게 스쿠버다이빙”이라고 말했다.

사이판 바닷속을 탐험하고자 10월 16일 비행기에 올랐다. 늘 바닷속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자격증이 없어 깊은 바다를 보지 못해 아쉬웠는데 비로소 기회를 잡았다.

출국 전 인터넷을 통해 현지 다이빙업체 다이브Y2K가 진행하는 ‘오픈워터 코스’를 신청했다. 세계적 다이빙 교육회사인 PADI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스쿠버다이빙 입문자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코스다. 자격증을 따면 수심 18m까지 다이빙을 할 수 있다.

초보는 마스크 벗기도 어렵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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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암 절벽 안에 숨어 있는 그로토. 스노클링이 아니라 다이빙을 해야 진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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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 아침 사이판 최대 번화가인 가라판에 있는 다이브Y2K 사무실로 갔다. 다이빙 채비 중인 여성들이 보였다. 서울서 온 전민정(34)·오지은(30)씨는 사이판에 묵는 엿새 중 나흘 동안 다이빙을 즐길 계획이란다. 가녀린 인상이라 초보자인가 싶었는데 둘 다 오픈워터보다 단계가 높은 어드밴스드와 레스큐 자격증 보유자였다. 송정학 다이브Y2K 강사는 “사이판을 찾는 한국인 다이버의 주축이 30대 여성”이라고 거들었다.

이날 오픈워터 교육생은 혼자였던 터라 황제 강습을 받게 됐다. 권대희 강사와 사이판 서쪽에 있는 슈거도크로 이동했다. 수심 1~2m 얕은 바다에서 간단한 이론과 장비 사용법, 수신호 등을 익혔다. 자격증이 필요 없는 체험 다이빙과 달리 응급대처 훈련이 많았다. 권 강사는 “자격증을 따놓고도 장비 사용법을 금방 잊는 사람이 많다”며 “기초부터 제대로 익혀야 안전한 다이빙을 즐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스크 벗었다 다시 쓰기’가 가장 어려웠다. 물속에서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천천히 숨을 쉰 뒤 눈을 뜨고 다시 마스크를 찾아 착용하는 훈련이었다. 눈이 따끔거려도 호흡은 그대로 하면 되는데 긴장을 해서인지 콧속으로 짠물을 쭉쭉 들이켰다. 두세 번 해본 뒤에야 적응이 됐다.

라오라오 해변으로 이동해 장비를 착용하고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바다에 설치된 줄을 잡고 잠수하니 금세 수심이 깊어졌다. 온갖 열대어가 노닐고 있었고, 초록거북도 보였다. 슈거도크에서 배운 내용을 수심 10m 바다에서 다시 연습했다. 마스크를 벗었다 쓰고, 호흡기 고장에 대비해 버디(동료 다이버)의 보조 호흡기를 사용하는 훈련을 했다. 공기통 2개를 쓰며 바다를 드나드니 금세 일정이 끝났다.

다이빙숍에서 건네준 교육 자료와 시험지를 챙겨 호텔로 돌아왔다. 몸이 노곤했지만 자격증 취득을 위해 쓴 커피를 연거푸 마셨다. 교육 영상을 보고 한국어로 쓰여 있는 시험 문제 50문항을 다 풀었다. 다행히 ‘패스’였다.

다이버의 버킷리스트 그로토 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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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의 다이빙 명소 라오라오 해변. 일본인 60~70대 다이버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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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태풍 때문에 밤새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다. 자격증이고 뭐고 물 건너갔다 싶었는데 다이빙숍에서 문자가 왔다. “라오라오 해변은 괜찮습니다. 곧 출발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온 30대 부부, 강사 두 명과 함께 해변으로 향했다. 다행히 파도는 높지 않았지만 태풍 영향으로 시야가 탁했다. 멀리 전갱이 떼가 보였지만 조류 때문에 다가갈 수 없었다.

물 밖으로 나왔다. 강사들이 분주해졌다. “바다가 완전히 뒤집어졌네요. 어쩌죠?” “다른 데를 알아보자.” 공기통 하나만 쓰고 장소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송정학 강사가 입을 열었다. “그로토는 괜찮다고 합니다. 원래 오픈워터 수준에선 갈 수 없는데 대안이 없네요. 강사가 둘이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로토는 동굴 3개가 이어진 독특한 지형으로, 다이버 사이에서는 한 번쯤 가봐야 할 버킷리스트로 꼽힌다. 최근 여기서 스노클링을 하는 이가 많은데 물위에 둥둥 떠서는 진짜 매력을 알 수 없다.

그로토는 진입로부터 험난하다. 무거운 장비를 이고 100개 이상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야 한다. 난간을 잡고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뎠다.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그로토는 장엄했다. 촤촤. 깎아지른 석회암 절벽 아래 감색 바다가 너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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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라오 해변에는 전갱이 떼가 자주 출몰한다. [사진 다이브Y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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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바위에 올라 호흡을 가다듬고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풍덩. 라오라오 해변과는 달리 물이 맑아 멀리까지 내다보였다. 강사를 따라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동굴의 웅장한 형상이 또렷했다. 바위 틈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모습도 장관이었다. 내 숨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적막이 내려앉았다. 물속이 어두워서인지 물고기와 산호는 많지 않았다. 대신 바위 틈에 사는 랍스터를 봤다. 물이 깊어서일까? 공기가 예상보다 빨리 떨어졌다. 30분 만에 물 밖으로 나왔다. 이로써 오픈워터 강습을 무사히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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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판


송 강사가 수중시계를 보며 그날 다이빙 기록을 알려줬다. “수온 29도, 평균 수심 13.5m, 최대 수심 21.9m, 시야 15m. 오늘은 진짜 시야가 안 좋은 편이에요. 좋을 땐 40m까지 나오거든요.”

이튿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오는 내내 바닷속 세계가 머리에 맴돌았다. 다이버들이 열병처럼 또 바다로 뛰어드는 이유를 알 만했다.

◆여행 정보
인천~사이판 노선에는 아시아나항공·제주항공 등 5개 항공사가 취항한다. 숙소는 2016년 7월 개장한 켄싱턴호텔(kensingtonsaipan.com)을 추천한다. 숙박비에 세끼 식사와 레저시설 이용권이 모두 포함된 올인클루시브 호텔이다. 다이브Y2K(divey2k.com)는 자격증 없는 사람을 위한 체험 다이빙(70달러), 자격증 보유자를 위한 펀 다이빙(80달러), 오픈워터 교육(400달러)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자세한 여행 정보는 마리아나관광청 홈페이지(mymarianas.co.kr) 참조.



사이판(미국)=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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