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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내가 사랑한 호텔]삼나무 숲에서의 단잠, 불면의 밤마다 생각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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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립공원 안 '빅서 리버 인'

세계적 드라이브코스의 숨은 명소

광고에 등장하는 빅스비 다리가 지척

우리는 이름에 기대 여행을 한다. 예로부터 명성이 높았거나 요즘 핫하고 힙하다는(힙과 핫의 차이는 도통 모르겠다) 곳을 그냥 지나치면 안될 것 같다. 그래서 미국 서부를 여행하면 그랜드캐니언이나 요세미티국립공원을 잠깐이라도 들러야 한다. 2017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취재를 준비하면서도 그랬다. 파이퍼 빅서 주립공원(Pfeiffer big sur state park)에서 하루를 묵는다는 일정표를 보고 의아했다. 수많은 국립공원을 두고 웬 주립공원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편견은 ‘빅서 리버 인(Bigsur river inn)’의 객실 문을 여는 순간 보기좋게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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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중부해안 파이퍼 빅서 주립공원 안에는 유서 깊은 숙소 '빅서 리버 인'이 있다. 빅서강물이 잔잔히 흐르고 삼나무 숲이 우거진 곳에 숙소가 있다. [사진 빅서 리버 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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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는 캘리포니아주 중부 해안도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220㎞ 거리에 있다.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 캘리포니아 1번 주도,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가 빅서를 지난다. 이 고속도로는 어디나 절경을 자랑하지만 빅서에 있는 빅스비 다리(Bixby bridge)가 최고로 꼽힌다. 아찔한 해안절벽 너머로 눈부신 태평양이 펼쳐져 있고 낭떠러지를 아래 두고 다리가 지난다. 자동차 광고의 단골 배경으로 등장할 만큼 드라마틱한 풍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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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대표하는 드라이브 코스인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39;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39;로도 불린다. 내내 태평양을 옆에 끼고 달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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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방문 때도 어김없이 빅스비 다리를 들렀다. 스케일에 압도되어 100컷 쯤 사진을 찍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다리에서 숙소인 빅서 리버 인까지는 불과 15분 거리였지만 먼길을 돌아갔다. 2017년 초 산사태와 토사 유출로 다리 주변 길이 막혀 있어서였다. 고속도로 구간 중에서도 빅스비 다리 주변은 워낙 가파른 절벽이어서 폐쇄되는 일이 잦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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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대표하는 드라이브 코스인 &#39;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39;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빅서 지역 빅스비 다리. 파이퍼 빅서 주립공원이 이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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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했다. 해안지방이라고만 알고 있던 빅서 지역에 이렇게 우거진 숲이 있는지 몰랐다. 객실 열쇠를 받았다. 대부분 전자식으로 돼있는 호텔의 객실카드와 달리 황동색 열쇠가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열쇠고리에 걸려 있었다. 사소한 열쇠 하나에서도 온기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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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로 만든 열쇠고리가 정겹다. [사진 빅서 리버 인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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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 리버 인은 전혀 화려하지 않다. 외관은 한국 휴양림에도 있는 숙소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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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늑한 분위기의 객실. 나무 향이 진해 객실에만 있어도 산림욕을 하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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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로 만든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진한 침엽수향이 밀려왔다. 아마도 이 지역에 많은 삼나무로 만들었을 것이리라.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았지만 객실 의자에 멍하니 앉거나 침대에 퍼져 있기만 해도 산림욕을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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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뒤편 빅서강이 흐르는 잔디에서 요가를 했다. 강물소리, 새소리가 배경음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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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뒤편 빅서강이 흐르는 잔디에서 요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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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후에는 숙소 뒤 빅서강가에서 요가 프로그램이 있었다. 잔디에 요가매트를 깔고 강사의 동작을 따라서 1시간 동안 요가를 했다. 요가 음악은 필요없었다. 잔잔한 강물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정신을 깨웠고 또 차분하게 했다. 세상 어떤 인위적인 소리나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였다. 뻣뻣한 몸은 요가 동작을 힘들어 했지만 지금껏 해본 어떤 요가보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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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피타이저로 나온 오징어튀김. 한치처럼 부드럽고 단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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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가 맛있었던 연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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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애플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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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여서인지 해질녘 스산한 공기가 밀려왔다. 숙소에 딸린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통나무로 지어진 식당 안도 분위기가 아늑했다. 저녁식사는 기대를 훨씬 웃도는 미식 경험이었다. 특히 애피타이저가 인상적이었다. 빅서에서 가까운 몬터레이만(Monterey bay)에서 잡은 오징어를 튀긴 요리였는데 육질이 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게 한치에 가까웠다. 마늘과 치즈, 바질을 토핑으로 얹어서 어딘가 익숙한 맛이었다.

메인요리인 연어구이와 소고기등심도 훌륭했다. 디저트로는 애플파이가 나왔는데 이미 배가 부를 만큼 불렀지만 남김없이 먹었다. 과히 달지 않으면서 신선한 사과향과 고소한 파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맛이었다. 알고 보니 꽤 사연이 깊은 파이다. 사실 이 숙소는 1934년 문을 열었는데 당시 이름이 애플파이 인(Apple pie inn)이었다. 당시 땅주인의 딸 엘런 브라운이 집에서 애플파이를 기막히게 만들어 인기를 끌었고, 이에 힘입어 숙소까지 열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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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식당에서 나오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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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려앉은 밤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이 쏟아질 듯했다. 강가에서 요가를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깨끗한 밤하늘을 봤으니 깊고도 달디 단잠을 자는 건 당연했다. 출장 중 이날 같은 숙면을 취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머리가 지끈하고 일상에 지칠 때면 그날 그 밤, 그 숲이 자주 생각난다. bigsurriverin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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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 스탠드 옆에는 야생화를 꽂아둔 작은 화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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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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