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기항지, 튀니지 수도 튀니스
카르타지의 유적지인 안토니우스 공중목욕탕. 언덕 정상에서 바라보면 넓은 마당과 짙푸른 사이프러스 나무들 사이로 튀니스만의 물결이 보인다. |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어린 시절 꿈이 되살아난다. 신드바드의 모험처럼 양탄자를 타고 멀리 날아다니길 꿈꿨던 그곳. 양탄자 대신 크루즈를 타고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 도착했다.
거대한 크루즈는 지중해 라굴레트 항구(La Goulette port)에 정박했다. 화려한 복장의 남녀 악단이 우리를 반긴다. 그 뒤로 낙타들이 한가로이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익숙했던 유럽 언어와는 달리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환영인사와 환영문구이지만 이방인을 반기는 사막민족의 마음은 따뜻하게 전해진다.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 있는 이슬람 사원 자이투나 모스크(Zaytuna Mosque). 튀니스의 성역이며 가장 유명한 모스크로 색색의 타일로 장식된 모스크는 튀니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사원이다. |
튀니지는 지중해 패권을 장악했던 페니키아, 카르타지, 로마, 비잔티움, 아랍, 오스만 제국, 프랑스 등 열강의 다양한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특히, 1881년 프랑스에 점령되고 프랑스에 의해 근대화 과정을 겪으면서 유럽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그중에서도 수도 튀니스는 ‘북아프리카의 파리’로 불리며 지중해와 사막의 아름다움을 모두 품고 있는 도시이다. 아프리카라고 하지만 사하라사막 북쪽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아랍 민족의 나라들이다. 주민들 대부분도 원주민이었던 베르베르인과 아랍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카르타지 비르사 언덕에 위치한 박물관 내부의 전시물. 카르타지 국립 박물관은 흰색 2층 건물로 다양한 유적들을 볼 수 있다. |
카르타고 한니발 장군의 고향인 카르타지.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 계열의 고대 도시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로마와 패권 다툼을 벌였으며 카르타고의 유적지 카르타지는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
튀니지 면적은 한반도의 4분의 3 정도지만 지중해 풍경과 카르타지 역사, 이슬람 성지, 사하라사막까지 다채로운 모습을 품고 있다. 튀니스는 지중해 해운과 아프리카 육상 교통의 출발지이자 도착지로 고대 카르타고 지배가 드리워진 지역에 있는 최초의 마을 중 하나인 역사 도시이다.
카르타지 비르사 언덕 위에는 비잔티움 양식과 무어 스타일의 커다란 성 루이스 성당이 있다. |
크루즈 선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다. 도시는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평야와 언덕을 따라 뻗어 있다. 튀니스 호수를 따라 20여분을 달리면 현대 개발의 중심인 올드 메디나가 있고 근교에는 고대 카르타고의 유적을 중심으로 로마시대 유적이 많다. 버스는 번잡한 곳에 일행을 내려줬다. 아랍인들에 의해 건설된 튀니스 구시가지이다. 안내판을 든 가이드를 따라 좁은 시장길로 들어선다. 향료와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있는 메디나라는 곳이다. 눈썹이 짙고 눈이 커다란 외모의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상품을 권한다. 커다란 체격과 수염이 낯설다. 내게는 모두 외국인이지만 아랍인들은 지중해 건너의 유럽인들과는 다른 인상을 남긴다.
향료와 지역 특산품을 판매하는 시장이 있는 튀니스 구시가지 메디나. |
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그들 일상이 그대로 전해진다.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며 묘한 향신료 냄새와 음악에 취해 골목길을 따라 시장을 헤맸다. 은으로 만든 화려하고 정교한 액세서리, 손으로 직접 그려 팔고 있는 도자기들과 세라믹 타일, 영화의 소품으로 쓰일 듯한 놋쇠와 구리로 만든 쟁반과 꽃병 등 화려한 색상의 갖가지 세공품들이 눈길을 이끈다. 낙타가죽이라 설명하는 가방과 신발이 카펫과 함께 매장 앞에 진열되어 있다. 이색적인 물건들을 구경하고 시장상인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골목을 따라 이리저리 걸어본다.
시디 부 사이드는 안달루시아의 아랍인들에 의해 세워진 한적한 어촌 마을로 흰 벽에 파란 문의 집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
시장을 벗어나 튀니스에서 20㎞ 떨어져 있는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로 향했다. 안달루시아의 아랍인들에 의해 세워진 한적한 어촌 마을은 흰 벽에 파란 문의 집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듯이 짙푸른 바다와 하얀 사막,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어우러진 마을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 같다. 파란 바다 빛과 눈부신 햇살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허물 듯, 모호하게 어른거린다. 독특한 돔 형태의 지붕, 아치형의 대문과 발코니가 모두 흰색과 푸른색으로 장식돼 있다. 1920년대 프랑스의 화가이자 학자였던 루돌트 데를랑게르 남작이 파란색과 흰색을 주제로 도시를 꾸미는 작업을 시행한 이후, 작은 마을은 지중해와 조화된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해졌다고 한다.
튀니스에서 20㎞ 떨어져 있는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의 카페 데 나트(cafe des nattes). 앙드레 지드와 생텍쥐페리가 자주 들렀던 그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
옛 시가지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돌을 깐 비탈길을 오르다 맞닿은 곳의 카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카페 데 나트(cafe des nattes). 앙드레 지드와 생텍쥐페리가 자주 들렀던 그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생각에 젖어든다. 청색 창틀을 낀 하얀 집과 꽃이 만발한 공원, 그리고 테라스가 달린 카페가 남프랑스의 어느 해안 도시를 연상시킨다. 누군가에게 예술적 감성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곳에서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쓰디쓴 커피 한잔으로 아쉬움을 담고 골목길을 따라 걸으니 엽서에서 자주 본 카페가 보인다. 카페 데 델리스(cafe des Delices)이다. 지나치기 아쉬워 튀니지 맥주 한잔을 주문해 절벽 위에 자리 잡은 해안 도시의 푸른 바다와 햇살을 즐겼다. 이 경치 때문에 많은 예술인이 모여들고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가 보다.
눈썹이 짙고 눈이 커다란 튀니지 사람들. 커다란 체격과 수염이 낯설다. 내게는 모두 외국인이지만 아랍인들은 지중해 건너의 유럽인들과는 다른 인상을 남긴다. |
수많은 인파의 관광객을 시디 부 사이드에 남겨두고 버스는 한니발 장군의 고향인 카르타지로 안내했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 계열의 고대 도시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로마와 패권 다툼을 벌였으며 카르타고의 유적지 카르타지는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고대 유적지인 안토니우스 공중목욕탕과 비르사언덕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향한다. 비르사언덕 위에는 비잔티움 양식과 무어 스타일의 커다란 ‘성 루이스 성당(St. Louis Cathedral)’이 있다. 언덕 정상에서 바라보면 넓은 마당과 짙푸른 사이프러스 나무들 사이로 튀니스만의 물결이 보인다. 푸름을 배경으로 두고 하얀 채색의 집들이 가득한 카르타지 시내가 펼쳐져 있다. 이 언덕에서 카르타고 군대는 3년 동안 로마 군대에 저항하다 처절한 죽음을 맞았다고 한다. 들꽃의 화려함과 푸른 풀들 사이로 덩그러니 흩어져 있는 거무스름한 집터의 잔해는 오래전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카르타지 국립 박물관은 흰색 2층 건물로 다양한 유적들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유적지인 안토니우스 목욕탕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로마 목욕탕이라고 한다.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이 목욕탕은 기원후 165년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가 15년에 걸쳐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거대한 기둥과 둥근 아치형 천장의 잔해만이 남아 당시의 위용을 보여주고 있다.
튀니스의 추억을 타투로 남기는 크루즈 승객. |
한나절의 짧은 여행이지만 첫발을 내디뎠을 때의 낯섦은 어느덧 사라지고 조금은 익숙한 불어도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곶감과 비슷한 말린 대추 야자를 한 봉지 사들고 선상으로 향했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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