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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friday] 시뻘건 석쇠 위… 전라도 '손맛'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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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불고기] 맛깔나는 전라도 식당 5곳

맨손으로 굽는 돼지고기… 얇게 썬 목전지·삼겹살 손으로 뒤집어가며 구워

윤기 좔좔 '간장 구이'… 두툼하게 썬 돼지갈비 양념 졸인 후 불맛 입혀

군침 도는 '빨간 양념'… 고춧가루와 매실액으로 깔끔한 매운맛 선보여

조선일보

나주 ‘송현불고기’ 주인 김안자씨가 연탄불에 놓인 돼지고기를 맨손으로 뒤집고 있다. 그의 아들을 비롯한 나머지 직원들은 목장갑과 고무장갑을 겹으로 끼고 일한다. 김씨는 “나도 장갑을 끼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손끝 감각이 둔해지고 손놀림이 더뎌진다”고 했다./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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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취재로 전국을 다니지만, 전라도는 특별하다. 뭘 만들어도 특별한 손맛 내지는 깊이를 음식에 담아낸다. 이걸 호남에서는 "개미가 있다"고 흔히 표현한다. 돼지불고기는 전국 어디서나 먹는 흔한 음식이지만, 이마저도 '개미지게' 만들어내는 전라도 식당 다섯 곳을 추렸다.

나주 송현불고기

돼지고기는 연탄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시뻘건 불기운을 받아 기름을 지글지글 내뿜었다. 김안자(70)씨가 석쇠에 놓인 돼지고기를 손으로 뒤집었다. 목장갑조차 끼지 않은 맨손이었다. 김씨는 연탄불 위에 나란히 놓인 석쇠 4개를 차례로 열고 석쇠에 들어 있는 돼지고기를 쉴 새 없이 뒤집었다. 김씨에게 "뜨겁지 않으냐"고 물었다. "기름을 만지는데 어찌 안 뜨겁겠소. 뜨겁지만 손으로 하는 게 수월해요. 집게로 하면 빨리빨리 못 뒤집지."

김씨는 전남 나주 '송현불고기' 주인이다. 식당 자리에는 원래 구멍가게가 있었다. 전라도 중심이던 나주로 몰려든 배들이 정박하는 포구가 있던 곳이라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이들을 상대하던 주막 겸 구멍가게였다. 손님들에게 요깃거리로 돼지불고기를 구워줬더니 이게 맛있다고 소문 나버렸다.

메뉴는 돼지불고기 딱 하나. 목전지와 삼겹살을 큼지막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썰어 사용한다. 불판에 구워 먹는 삼겹살보단 얇고, 대패 삼겹살보단 도톰하다. 간장·고춧가루·참기름·마늘·생강·양파·설탕·배 등을 배합한 양념에 재워뒀다가 연탄불에 굽는다. 고기를 석쇠에 올리는 방식이 독특하다. 고기 2장을 나란히 놓고 그 위에 다시 2장을 직각으로 포개 올린다. 이렇게 구우면 고기를 굽는 동안 육즙이 덜 빠진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고기가 겹쳐진 안쪽은 불길이 닿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고기를 굽다가 석쇠를 열고 고기의 안팎이 바뀌도록 손으로 뒤집어주는 고단한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갓 구운 돼지불고기가 자그마한 사기 접시에 담겨 나왔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게 보기만 해도 배부를 지경. 고기를 자르지 않고 젓가락으로 반으로 접어 입안 가득 욱여넣었다. 연하면서도 적당한 두께가 주는 씹는 맛이 쾌락에 가깝다. 고소한 기름이 달큼하고 간간한 양념과 섞여 침샘을 마구 자극한다. 생강 향이 은은하게 코로 올라온다. 돼지불고기 1만원, 공깃밥(별도) 1000원, 전남 나주 건재로 193, (061)332-6497

조선일보

①나주 ‘송현불고기’ 상차림. 주문한 양의 절반쯤을 먼저 주고 손님이 다 먹을 때쯤 나머지를 내준다. 따뜻하고 맛있게 먹으란 배려다. ②송현불고기 주방. 연탄불에 놓인 석쇠에서 돼지불고기가 쉴 새 없이 구워져 나간다. 3광주 ‘나정상회’ 돼지갈비. 양념에 졸인 고기는 진한 갈색에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④순창 ‘새집식당’ 한정식. 순창 고추장에 재운 돼지불고기를 포함, 30여 가지 음식이 한 상에 올려진다./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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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나정상회

깊고 진한 갈색에 매끄러운 윤기가 흐른다. 돼지갈비라기보다 갈비찜 또는 닭강정에 더 가까운 비주얼. 한 점 크게 잘라 입에 넣었다. 단맛이 강하지만 간장이 밑에서 간간하게 받쳐주니 유치하지 않다. 계피와 후추 향이 강하다.

독특한 비주얼과 맛은 남다른 조리 과정 때문이다. 두툼하게 썬 돼지갈빗살을 양념에 충분히 재워뒀다가 직화로 굽지 않고 프라이팬에 한참 졸인 다음 석쇠에 내온다.

1971년 광주광역시 외곽 장암마을 '점방'(구멍가게)에서 시작했다. 단골들은 "가게 앞 다리를 접었다 폈다 하는 평상에 앉아 조린 갈비를 뜯어 먹었다"고 추억했다. 주인은 "마을이 군부대(광주공항)에 편입돼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식당은 2011년 상무지구로 옮겼다. 대기표 받아 순서 기다릴 정도로 붐비는 건 여전하다.

식사 메뉴는 몇 가지 있지만 다들 '비빔밥'을 시킨다. 고기를 조리던 프라이팬 남은 양념에 밥과 채소 조금 넣어 쓱쓱 비벼다 준다. 돼지갈비 1만2000원, 공깃밥 1000원, 비빔밥 2000원,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자유로 24, (062)944-1489

곡성 석곡식당

곡성군 석곡면에는 돼지불고깃집이 여럿이다. 석곡은 교통 요충지였다. 광주, 여수, 순천을 오가는 차량이 석곡을 거쳤다. 석곡은 돼지고기가 유명했다. 제육볶음을 버스·화물차 기사들에게 팔다가, 언제부턴가 석쇠구이로 바꾸었다.

호남고속도로 개통과 함께 석곡은 쇠락했다. 하지만 석쇠 불고기 맛은 여전하다. '석곡식당'은 이곳 식당 중 원조로 꼽힌다.

고춧가루에 매실 엑기스를 더한 양념을 발라가며 굽는다. 타지 말라고 석쇠에 고기를 여러 겹 겹쳐 올리는 건 나주 송현불고기와 비슷하다. 숯은 가장 품질이 좋고 비싼 비장탄(백탄)을 사용한다. 고추장 양념은 자칫 텁텁한데, 고춧가루를 사용해 훨씬 깔끔하고 산뜻한 매운맛이 난다. 설탕에 절여 물기를 빼고 새콤달콤하게 담근 토마토 장아찌, 짜지 않게 무친 갈치속젓, 3년 묵은 김치 등 딸려 나오는 반찬이 한정식집 수준이다. 몇 명이 가건 기본 3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석쇠불고기 1만5000원·공깃밥 1000원·누룽지 2000원, 전남 곡성 석곡면 석곡로 60, (061)362-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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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나정상회 돼지갈비. ②나정상회 비빔밥. 돼지갈비 졸인 국물에 비벼준다. ③곡성 ‘석곡식당’ 석쇠불고기. ④담양 ‘남도예담’ 돼지떡갈비. 갈지 않고 칼로 다져서 고기 씹는 맛이 살아있다. /김성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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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새집식당

새집식당은 순창에서 손꼽히는 한정식집이다. 온갖 산해진미가 한 상에 나오는데, 그중에서도 순창 명물 고추장에 버무린 돼지불고기가 이름났다. 주인 허경순씨는 "순창에서 고추장 돼지불고기를 처음 내놨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공장표 고추장은 물엿 등 달콤한 첨가제가 가미돼 잘 탑니다. 우리는 설탕류 대신 엿기름을 사용해 잘 타지 않아요."

식당 건물은 지금은 구할 수도 없다는 홍송(紅松)으로 지은 100년 넘은 한옥이다. "그런데 왜 '새집'이냐"고 물으니 "옛날에 새들이 많이 살아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종업원 둘이 포마이카 6인상(床)을 힘겹게 들고 들어온다. 석쇠불고기, 굴, 고기전, 깻잎조림, 조기구이, 된장찌개, 각종 젓갈·나물·장아찌 등 30여 가지 음식으로 상이 좁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맛이건만, 주인공은 역시 돼지불고기. 다른 음식이 담긴 접시 위에 포개져 올려져 있다.

고추장 양념이라선지 확실히 맛의 깊이가 다르다. 너무 달거나 맵지 않고 점잖다. 부드럽고 연한 고기의 감칠맛을 끌어낸다. 어느 하나 튀지 않는 균형감에서 오래된 한정식집의 내공이 드러난다. 한정식 2인 3만4000원·3인 이상 1인당 1만6000원, 전북 순창 순창읍 순창6길 5-1, (063)653-2271

담양 남도예담

돼지고기로 만든 떡갈비를 낸다. 서울 강남에 있어도 어울릴 법한 현대적인 건물에 있는 떡갈비집이다. 음식의 담음새나 접시도 세련됐다. 하지만 맛은 정도를 지킨다. 우선 밥부터. 이 식당에서는 대통밥을 지을 때마다 새 대통을 사용한다. 대통밥은 대나무의 맛과 향이 쌀에 배어들어 맛있다. 그런데 대통을 재활용하면 특유의 풍미가 나지 않는다.

떡갈비도 미리 굽거나 찌지 않고 주문하면 바로 숯불에 구워낸다. 고기를 갈지 않고 전통 방식대로 칼로 다진다. 수고스럽지만 칼로 다져 성형한 떡갈비는 연하면서도 고기 씹는 맛이 살아 있다. 간을 최소화해 고기 자체의 맛을 잘 살렸다. 돼지 떡갈비 한 상 1만5000원·한우 떡갈비 한 상 2만8000원·반반 떡갈비 한 상 2만3000원, 전남 담양 월산면 담장로 143, (061)381-7766

[나주·광주·곡성·순창·담양=김성윤 음식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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