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0 (금)

[인사이트] 실험용 원숭이 90% ‘메이드 인 차이나’ … 중국, 영장류 연구 메카 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최근 영장류 연구센터 설립 줄이어

정부 주도 생명공학 발전위해 육성

원숭이 주산지에 동물윤리도 약해

서구, 동물윤리에 영장류 실험 줄어

한국은 원숭이 4000마리 시설 추가

중앙일보

2014년 중국 윈난영장류생물의학중점연구소가 세계최초로 성공한 유전자 교정 원숭이. [중앙포토]


중국 남서부 윈난(雲南) 성의 성도 쿤밍(昆明)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마을에 좀 색다른 ‘동물원’이 있다. 동물이라고는 1500마리 원숭이가 전부다. 이들 중에는 자폐증과 파킨슨병, 근이영양증(筋異營養症) 등 각종 질병에 걸린 원숭이가 절반 이상이다. 동물원 내에 관람객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다. 언뜻 관리가 되지 않은 폐쇄 직전의 동물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니다. 푸른 작업복을 입은 동물보호원 60여 명이 이들을 세계 어느 동물원 못지않게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다.

중앙일보

중국 연구진이 복제한 유전자 교정 강아지 룽룽. [연합뉴스]


이곳은 중국과학원 산하 윈난 영장류 생물의학중점연구소(Yunnan Key Laboratory of Primate Biomedical Research)다. 2011년에 문을 연 중국 내 최고의 영장류(靈長類) 연구시설이다. 2014년에는 세계 최초로 3세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배아세포의 유전자를 조작해 살아있는 아기 원숭이로 키워 내는 데 성공했다. 사람과 유사한 원숭이를 대상으로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교정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성과였다.

중국이 세계 영장류 연구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에는 윈난 영장류 생물의학중점연구소와 같은 영장류 실험센터가 한두 곳이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 중국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지원으로 선전(深?)·항저우(杭州)·쑤저우(蘇州)·광저우(廣州) 등지에 비슷한 연구소들이 연이어 들어서고 있다.

중앙일보

충북 오창의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실험용 원숭이 생산의 9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윈난성 등 기후가 따뜻한 중국 남서부 산림에 원숭이가 집단 서식하고 있기도 하지만, 중국 정부가 생명공학 발전 차원에서 실험용 영장류 육성과 연구에 집중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지난해 4월호의 ‘원숭이 왕국(Monkey kingdom)’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에서 “중국이 영장류 연구에서 세계적 리더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의 세계적 권위자인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중국은 생명공학 분야에서 이미 선진국”이라며 “생명윤리 관련 규제가 엄격하지 않는 데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손쉽게 질환 모델 원숭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생명공학 분야에 앞서갈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반면 세계 최초로 아기 복제 양 돌리를 만들었던 영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에서는 해가 갈수록 영장류 연구가 위축되고 있다. 시민 단체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서 동물윤리가 강조되고, 특히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 실험에 대해 반대 여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하버드의대의 경우 이런 여론 때문에 2015년 5월 자체 영장류 시설을 폐쇄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2015년 12월 자체 연구시설에서 영장류 실험을 줄여나가고, 관련 연구를 위한 기금 지원 역시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중앙일보

실험동물


이 같은 분위기는 유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영장류 연구비용도 서구 선진국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미국에서는 원숭이 한 마리를 사는데 6000달러, 사육하는데 하루 20달러가 든다. 생명공학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의 영장류 전임상실험에서 원숭이 한 마리당 각종 실험 데이터를 얻어내는 데만 최소 1억원이라는 비용이 든다. 반면, 중국에서는 1000달러 가격에 하루 사육비용도 5달러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서구의 생명공학 연구자들은 중국과 공동연구를 하거나, 중국에 직접 가서 실험하는 등의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는 곧 중국이 생명과학 분야에서 급성장할 수 있음을 뜻한다. 프랑스 보르도대학 신경퇴행성질환연구소의 경우 최근 아예 중국 베이징에 자체 영장류 연구기관을 세웠다. 이 연구소의 에르완 베자르 소장은 “유럽과 미국이 여전히 영장류 연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머잖아 세계 신약개발과 치료를 검증하는 중심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 정부와 정치인들이 이처럼 심각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프랑스 생명공학 연구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있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한국에서 급증하는 영장류 수요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다행히 정부 차원에서 바이오 신약과 바이오 장기, 줄기세포 등 다양한 분야의 생명공학 발전을 위한 영장류 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2005년부터 충북 오창에 국가영장류센터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게잡이원숭이 등 영장류 400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다. 생명연은 이 원숭이들을 이용해 국내 각 대학과 병원 등 연구기관과 함께 영장류를 이용한 동물실험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400마리는 국내 영장류 실험수요의 10%만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 등으로 인해 외국에서 실험용 원숭이를 들여오는 것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 때문에 생명공학연구원은 오는 3월 전북 정읍에 최대 4000마리의 붉은털 원숭이와 게잡이 원숭이를 수용할 수 있는 영장류자원지원센터의 문을 열 예정이다. 정읍 영장류자원지원센터는 지난해 중국에서 원숭이 160마리를 들여왔고, 올해는 430마리를 추가로 도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2022년까지 2500마리까지 보유 원숭이를 늘린다는 복안이다. 이후엔 이를 바탕으로 자체 사육해 4000마리까지 보유 원숭이 수를 늘릴 계획이다.

김지수 영장류자원지원센터장은 “현재 국내에서 신약개발과 뇌 연구 등 전임상의 필수자원으로 영장류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매년 700마리 이상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게다가 세계 실험용 원숭이 생산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최근 실험용 영장류를 ‘자원 무기’로 삼아 수출 물량을 제한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국내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자체 영장류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 센터장은 “국내에서는 실험할 수 있는 영장류가 모자라 중국 등 해외에 실험을 의뢰할 경우 우리의 우수연구 성과와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며 “영장류는 기술유출 방지 차원에서라도 국가적 관리가 필요한 미래 전략 생물자원”이라고 덧붙였다.

영장류·유인원
영장류(靈長類)는 생물분류학적으로 영장목(靈長目)에 속하는 포유류를 말한다. 흔히 말하는 다양한 원숭이들이 모두 영장류에 포함된다. 유인원(類人猿)은 종-속-과-목-강-문-계의 생물분류에서 목(目) 아래 단계인 사람과(科)에 속한다. 유인원은 소형 유인원과 대형 유인원으로 나눠며, 대형 유인원에는 고릴라·침팬지·오랑우탄과 함께 사람도 포함돼 있다.



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모바일에서 만나는 중앙일보 [페이스북] [카카오 플러스친구] [모바일웹]

ⓒ중앙일보(http://joongang.co.kr) and JTBC Content Hub Co., Lt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