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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박수찬의 軍] 미지의 심해 누비며 나라 지키는 바닷속 첨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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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서태평양 해역을 항해중인 장보고급 잠수함 나대용함. 미국 해군 제공


깊은 바다 속은 오랜 세월 인간에게 호기심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을 함께 안겨주는 미지의 세계였다. 바다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하면서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해 인간이 고안해낸 것이 잠수함이다. 프랑스 작가 쥘 베른이 쓴 공상과학소설 ‘해저 2만리’(1869)에 등장하는 잠수함 ‘노틸러스’는 잠수함이 심해(深海)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노틸러스 잠수함이 소설에 등장한 지 약 150년이 지난 지금, 잠수함은 영토와 국익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잠수함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대거 투입, 자국의 이익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맡기고 있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 해역이 맞닿아있는 제주도 남방은 각국 잠수함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이 치열하다. 서로의 움직임을 뒤쫓고 감시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비밀임무도 수행한다. 우리나라도 장보고급 잠수함(1200t급) 9척과 손원일급 잠수함(1800t급) 9척으로 구성된 해군 잠수함 부대를 앞세워 주변국 잠수함 활동에 맞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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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일급 잠수함 김좌진함이 경남 진해 잠수함사령부 기지에 정박해 있다. 해군 제공


◆세계 최고 수준의 잠수함 확보

장보고급 잠수함이 처음 도입된 1993년 이래 해군 잠수함부대는 25년 동안 단 한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대기록을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 남대서양에서 실종된 아르헨티나 잠수함 산 후안호처럼 1900년 잠수함 탄생 이후 사고로 침몰한 잠수함이 200여척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25년 무(無)사고 기록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성과다.

해군 잠수함부대의 대기록은 장보고급, 손원일급 잠수함의 우수한 성능에 힘입은 바 크다.

독일제 209급 잠수함을 한국 실정에 맞게 개량한 장보고급 잠수함은 최신 전자장비와 소음감소기술을 적용해 적 잠수함에 쉽게 탐지되지 않는다. 장보고급 잠수함을 209급 잠수함과 별개의 함정으로 분류하는 외국 자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장보고급 잠수함 2번함 이천함과 3번함 최무선함이 건조되던 1990년대 초반에는 훈련시설이 없어 제작이 일시 중단되는 식사시간에 맞춰 훈련을 해야 했다. 하지만 1993∼1995년 초까지 교육훈련대, 수리창, 보급소 등을 건설하면서 잠수함 인프라를 구축했다. 그 결과 1번함 장보고함은 2004년 8월 환태평양훈련에서 미국 해군 핵항공모함 존 스테니스를 비롯한 30여척의 함정을 가상 격침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4번함 박위함도 2004년 4~8월 환태평양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하와이까지 2만5000㎞를 한 번도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항해하는데 성공했다.

장보고급 잠수함은 우수한 잠수함이었지만 축전지 충전에 필요한 공기 확보를 위해 2∼3일에 한 번씩 수면 가까이로 부상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한 잠수함이 손원일급 잠수함이다. 1960년대부터 209급 잠수함을 세계 50여개국에 수출해 잠수함 시장을 석권했던 독일이 해외 수출용으로 개발한 214급 잠수함을 국내에서 건조한 모델인 손원일급 잠수함은 외부 공기를 통해 축전지를 충전하지 않고도 2∼3주간 수중을 항해할 수 있는 공기불요추진장치(AIP)를 갖춰 장보고급보다 수중작전능력이 3~5배 향상됐다. 2020년대 3000t급 잠수함이 도입되면 해군의 수중작전능력은 지금보다 한 단계 높아질 전망이다.

잠수함의 운용을 위한 해군의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잠수함 사고는 다수의 인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사고이기 때문에 유사시 신속한 구출과 안전 운항을 위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주요 잠수함 운영국가들은 심해구조잠수정(DSRV)을 탑재한 잠수함 구조함을 함께 운용하고 있다. 해군도 1996년 12월 잠수함 구조함 청해진함(3200t급)을 건조해 운용중이다. 청해진함에 탑재된 심해잠수구조정은 수심 457m까지 잠항해 1회에 10명까지 구조할 수 있다. 하지만 함미에 설치된 A자 형태의 구조물을 이용해 심해구조잠수정을 바다로 내려보내는 방식을 적용해 파고 2m 이상의 악천후 상황에서는 운용이 어렵다. 방위사업청은 2022년까지 청해진함보다 성능이 개선된 차기 잠수함구조함(5200t급)을 해군에 인도할 예정이다.

◆죽음의 공포와 싸우며 임무수행하는 승조원

“너무 깜깜하지만 감각으로 쓴다. 살 가망은 없을거다. 누군가 이 글을 읽기를 바란다. 모두에게 안부를, 절망할 필요도 없다.”

2000년 8월 12일 러시아 북해함대 소속 핵잠수함 쿠르스크호는 바렌츠해에서 훈련 도중 어뢰 2발이 연쇄폭발하면서 침몰했다. 초당 9만 리터의 바닷물이 잠수함으로 밀려들면서 해저 108m 지점에 가라앉은 쿠르스크호를 구하기 위해 러시아해군은 서방측의 지원까지 수용하면서 총력전에 나섰으나 승조원들은 전원 사망했다. 승조원 중 한 명이었던 드미트리 콜레스니코프 대위가 죽기 직전 남긴 이 메모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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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승조원이 잠수함 내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침대 길이가 짧아 다리를 다 펴지 못하고 있다. 해군 제공


우리 해군 잠수함의 25년 무사고 운항과 우수한 훈련성과는 승조원들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잠수함 안에서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극도의 긴장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승조원들의 정신적 부담은 매우 높다. 바다 속에서 소리에만 의지해 항해하는 과정에서 밀려드는 두려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는 승조원의 의사결정능력이나 사고능력에 악영향을 미친다. 햇빛을 쬐지 못하면서 피부병, 구루병 등의 질병에 노출되어 있다. 공간이 비좁다보니 하루 활동량도 1200~1500보 수준에 그쳐 체력도 떨어지게 된다.

생활환경도 열악하다. 약 66㎡(20평)의 생활공간에 40명의 승조원이 거주하다보니 비좁고 답답한 느낌이 지속된다. 승조원 3명이 침대 2개를 함께 쓰는데 키 큰 사람은 다리를 오므리고 자야 할 정도로 침대 길이가 짧다. 침대가 있는 거주공간은 잠수함 장비들과 별도로 분리되어있지 않아 승조원들은 소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주간 일과시간에는 침대에 누울 수 없어 주간에는 식탁 주위에서 지내야 한다. 침대도 식탁 주변도 비좁고 답답하지만 그나마도 승조원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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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승조원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공간이 좁아 승조원 전원이 한번에 식사를 하기는 어렵다. 해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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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승조원이 갈아입은 속옷, 양말 등을 넣은 비닐팩을 정리하고 있다. 잠수함에서는 세탁이 불가능해 갈아입은 속옷 등은 비닐팩에 넣어 밀봉해 보관한다. 해군 제공


물이 부족해 빨래는 할 수 없으며 갈아입은 속옷은 개인위생 봉지에 담아 보관하다가 복귀하면 집에서 세탁한다. 화장실도 비좁은데다 세면실을 겸하고 있어 아침 시간에는 밀려드는 승조원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때문에 5분안에 모든 용무를 마쳐야 한다. 주간에 화장실 이용이 어렵다보니 저녁시간에 볼일을 보는 승조원, 남들이 자고 있는 시간에 일찍 일어나 용무를 보는 승조원, 참다가 변비에 걸려 고생하는 승조원들이 속출한다.

타국 잠수함에 탐지되지 않기 위해 승조원들은 모든 측면에서 소리를 최대한 줄인다. 밑창이 부드러운 방음화를 신으며,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큰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승조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한다. 세상과 단절된 잠수함에서 승조원들의 가장 큰 즐거움은 식사다. 잠수함에서 음식을 만드는 조리장의 요리 수준에 따라 잠수함 내 분위기가 달라진다. 맛있는 식사가 제공되면 잠수함에 활기가 돌지만, 그렇지 않으면 사기가 떨어진다. 승조원들이 먹는 별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잠수함 스테이크다. 안전문제로 불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전기 오븐에 찌는 방식으로 만든 잠수함 스테이크는 독특한 맛을 갖고 있어 승조원들에게 인기다.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식사는 주린 배를 채우는 의미를 넘어서 승조원들이 서로 소통하면서 인간관계를 끈끈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해 잠수함 함장들은 식사 메뉴와 조리에 많은 신경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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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승조원이 침실 통로에서 아령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 좁은 잠수함 내부 특성상 맨손 운동만 가능하다. 해군 제공


비타민 부족에 의한 질병을 막기 위해 종합비타민제를 정기적으로 섭취하고 맨손운동을 하는 등 건강관리에도 각별히 신경을 쓴다. 공포심을 극복하고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유 시간에 종교 활동을 하거나 독서, 영화감상을 하며 여가를 보낸다. 물을 아끼는 습관을 키우기 위해 ‘승조원 수염 기르기 대회’를 열어 가장 멋있는 수염을 기른 승조원에게 상품을 수여한다.

승조원들간의 대화와 격려는 잠수함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서로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는 승조원들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를 통해 열악한 잠수함 근무환경을 이겨내며 지금 이 시각에도 한반도 인근 심해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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